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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비 Sep 02. 2024

내가 쓰는 자서전

작가의 시작, 2

 나에게 철이 없던 시절을 깨닫게 했던 시간들이 시어머님의 죽음으로 많은 시련들이었던 지난 과거의 날들을 회심으로 되어 각인됐다. 아픈 시간, 미운시간, 쓸데없이 부린 오만, 턱없이 부족했던 참지 못함…

 상처만으로 쌓아둔 기억들은 내 글쓰기의 소재가 되었다. 2023년 6월에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쓴 시— ‘당신의 집’ 이 서울교통공사의 ‘사랑의 편지’로 전국 지하철과 도시철도에 전시되기도 했다. 뿌듯하고 행복한 기억이다.


 당신의 집

 당신이 황망히 떠나고 당신의 빈집을 찾았습니다.

 벽에 붙은 달력은 아직 3월입니다.


모든 것이 멈춰버렸습니다.

당신은 없었습니다.

 가는 눈의 표정도 없고 당신의 냄새도 없었습니다.

 아껴두었던 깻잎절임도 신건지 지짐도 보이지 않습니다.

 둥그런 정구공으로 발싸개를 끼워둔 오래된 나무 의자에 앉았습니다.

이 맘 땐, 노란 참외를 손에 드셨지요.

덩달아 노랗게 물든 얼굴빛으로 “고맙구나, 어서 같이 먹자.”하셨습니다.

허접하고 낡은 속옷들, 꿰매진 열쇠 꾸러미,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

꼬깃꼬깃 정리된 가방 안에 두고 온 미련이 보입니다.

당신의 나라가 없어졌습니다.

앞섶 자락 가득한 외로움일랑 모두 두고 오세요.

당신의 눈가에 번진 외로움은 닦고 말갛게 세수합시다.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나 제 밥상을 받아주세요.

당신의 집은 그리움입니다.


 당신의 집을 쓰게 된 건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였다. 췌장암에 걸려 우리 집에 와 병원을 오가던 어머니. 딱 한 번 항암을 받고는 바로 다음 날 돌아가셨다. 너무나 황망했다. 정신이 없었다. 산다는 게 뭘까, 죽음이란 이런 걸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음식도 입에 대질 못했다. 어머니의 죽음은 너무 일렀다. 90세도 되지 않았다. 그게 뭐든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서서히 괜찮아지는 감각이었지만, 아직도 허망한 기분을 감출 수는 없다. 그래, 사람이 살다 보면 다 이렇게 가는 거지, 죽을 만큼 괴로운 일도 아니다, 하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받아들이니 마음도, 생각의 폭도 넓어졌다. 그리고는 다짐했다. 매 순간 열심히 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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