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최고 간식
연일 35도를 웃도는 폭염으로 입맛이 없다. 끼니때가 되어도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고민을 하고 머릿속에 맛나게 먹었던 기억도 꺼내다가 문득 어렸을 적 양은솥 단지에 머리들을 박고 숟가락질해댔던 고추장 수제비가 생각났다.
우리 집에서 한참을 돌아 얕은 활석 공장 뒤에는 얼기설기 비닐로 나무받침을 지지대 삼은 대문들이 쪽 늘어서 있었는데 그중에 3번째 문이 내 친구인 효숙이 집이다. 집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는 효 숙이네 집은 무허가 판자촌이라고 어른들은 불렀다. 수돗물도 나오지 않아 검 은호 수를 길 게이어 붙여 구불구불 휘어진 모양새가 구렁이의 형체였다. 수돗물을 받으려면 우리 집에 뛰어가 검은 고무줄에 챙챙감겨진 수도꼭지를 비트는 것이 나의 하루하루의 일상이었다.
효숙이는 위로 언니가 셋이나 있어서 넷째 딸인 효숙이는 막내라 학교에도 다녔다. 세 언니들은 모두 공장에 다니고 화장품 냄새도 많이 품 겼다. 활석 공장 안에는 많은 돌덩이와 흰색의 바위들이 언덕을 이루었는데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지키고 있어서 우리들은 얼씬거릴 수가 없었다. 공장 사이에 골목길은 효숙이와 나의 놀이터였고 언덕 뒤편에서 꺾어온 아카시아 나뭇가지는 놀이기구이며 엉덩이 깔개였다.
세언 너희들의 따뜻한 보살핌은 세 가지로 대충 기억이 나는데 그 첫 번째는 점심 도시락 배달이다. 공장 출근시간이 각각이었기에 세언 니들은 돌아가며 노란색뽀쁘린보자기에 쌓인 도시락을 가지고 왔다
. 두 번째는 더운 여름날 양철통에 앉혀서 빨간 이쁜이 비누로 몸을 씻겨주는 것이고 세 번째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점심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는 날에 고추장 수제비를 끓여주는 것이다. 커다란 양은솥 단지에 어제 받아두었던 물통의 물에 뒷곁중앙에 놓인 손잡이가 부러진 약탕기 속 고추장을 밥숟가락으로 퍼담고 석유곤로에 심지를 돋운다. 우리 둘은 효숙 언니의 진두지휘를 받아 수제비 반죽을 씻지도 않은 손으로 뜯어 넣고 휘휘 젓는 손등을 군침 넘기며 바라보았다. 흙바닥에 너럭나무잎을 대충 깔고 앉아 뜨거운 김이 얼굴을 홀쳐도 솥바닥에 앉은 수제비를 잽싸게 입속으로 몰아넣었다. 아무 양념거리도 그, 무슨 요리 레시피도 필요 없음은 두 말하면 잔소리에 불과하다.
많은 먹거리와 살기 좋은 세상이 자연을 거스를 수는 없나 보다. 추억을 먹고 지나간 시간들의 상념을 꺼이꺼이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