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
하루 종일 비가 온다. 이런 날은 뜨끈한 국물이 당긴다. 텃밭 한편에 호박을 심었다. 고랑 사이를 깻잎 파리가 엉기듯 헐 크러 져 기다란 작대기로 호박밭의 무성한 호박잎을 헤친다. 연둣빛 줄무늬가 선명하고 실한 호박을 가위로 꼭지를 자른다. 마당 끝에 된장 단지를 찾아 된장을 퍼 담은 타파 통이 비에 젖을 세라 허겁지겁 내달린다.
냄비에 물을 넣고 싱크대에 놓인 호박을 보다가 문득 할머니 생각에 의자에 앉았다.
여름방학이면 나와 동생은 할머니 집으로 놀러 갔다. 지금 스치는 생각인데 놀러 간 것은 아니고 보내진 거다. 혼자가 되신 아버지가 세 아이들을 건사하기엔 벅찼을 테니깐.. 선생님인 아버지는 방학에도 할 일이 많으셨다. 학교를 지키는 일부터 앉은뱅이꽃들이 무성했던 꽃밭도, 삐걱대는 걸상에 못질도, 모두 아버지는 도맡아 하셨다.
할머니는 언제나 나와 동생들을 가여워하셨다. 어미 없이 일하는 언니의 손에 맡겨졌다고 애달프게 눈물을 찍었다. 뜨거운 여름 한낮에도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짓고 호박 된장국을 끓이셨다. 펄펄 끓는 솥단지에는 감자 세알과 뚝뚝 꺾인 호박, 그리고 내가 뜯어온 여린 호박잎이 들어있다. 불막을 댕기시며 한 손으론 내 머리를 쓰다듬고 외 눈으로 불살을 살피신다. 할머니는 어렸을 때 눈을 다치셔서 한 쪽 눈은 허연 색이고 까만 동자는 없다. 각각의 퍼런줄무늬의 사기그릇에 감자 한 알은 호박 된장국에 덤으로 먹어도 배가 고픈 우리에겐 특식이었다.
방학책을 나란하게 펴놓고 연필 따먹기 놀이를 할 때면 둘러앉은 밥상에 할머니는 자연관찰 선생님이 되신다. 꽃 이름, 떡잎 개수, 들에 피는 식물, 산에서 볼 수 있는 나무이름, 무서운 호랑이의 먹이 감등.. 모르는 것이 없는 만물박사셨다.
할머니의 부모님은 조선시대, 대한제국을 거쳐 일본의 피식민지, 그리고 6.25까지 그리고 증조할아버지의 자기 연민이 더해진 차별까지 견뎌야 했던 역동의 시대 속에서 살아왔다. 막내 고모에게 들은 얘기로는 할머니 동생은 모여대에 교수라고 했다. 애꾸눈이 부끄러웠던 부모님의 무지가 병신자식이라며 차별을 한 거다. 한 배에서 나왔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이, 사회적 모순에 나는 분기탱천했다. 시절이 어수선하고 어쩌지 못했다고, "옛날에는 다 그랬다."라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할머니와 두 동생들과 나를 펄펄 끓는 솥뚜껑 사이로 푸른 김이 춤추는 그곳으로 데려간다. 덤불에 연기가 한 쪽 눈에 스쳐도 덤덤하게 부지깽이를 놀린다. 한 눈으로 말이다! 자연으로 내성이 되도록 방치 아닌 무관심이 낳은 눈 병신이란 꼬리표까지 듣고 부자였던 증조할아버지의 강압으로 시집, 보내졌다.
날씨 탓인가? 나이 들어서 일까? 부쩍 할머니가 많이 그립다.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의료시설이 아주 좋은 안과병원에 모시고 가겠다. 좋다는 명약보다 최신식의 의료장비로 수술을 꼭 해드리겠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로봇이 음식을 날라다 주고 손 안의 컴퓨터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전쟁을 끝냈다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세상인데,
장애를 가문에 창피로 느낀 부모님의 차별이 할머니의 평생을 열등감으로 몰아가다니... 노안으로 안경을 고쳐 매는 내 두 손이 파르르 떨려 가뜩이나 더딘 좌판은 느리게 느리게 자리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