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돼지저금통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이야기

by 여비

엄마가 셋인 나는 마음부자다. 어떻게 셋씩이나 엄마를 두었냐고?...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상대방이 되는 아버지를 먼저 얘기할까 한다.


6.25 전쟁은 울 아버지에겐 아픔과 이별을 주었다. 이북이 고향인 아버지는 1.4 후퇴 때 이남으로 피난을 와 잠시 정착한 곳은 제주 도였다고 한다. 그곳에서 할머니와 이모 내외 그리고 두 누이까지 모두 6 이서 조그마한 콩나물 공장을 하셨다. 이 대목에서 한 분의 엄마가 등장한다. 제주도의 세 가지가 많다는 그것 중의 여인중 한분, 나의 젖엄마시다. 이북에 두고 온 또 한분, 엄마 그리로 나를 길러주신 엄마로 모두 세분이다.



2423423423.jpg


빨간 돼지저금통의 이야기는 길러주신 엄마와 나의 골 깊은, 마음 아픈 이야기다.

국민학교 6학년생이었던 나는 방과 후에 정희 집에서 숙제도 하고 종이인형 옷을 만들고 놀다가 늦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언니와 엄마는 벽장에 넣어둔 빨간 돼지저금통이 없어졌다고 하며 다짜고짜 나를 의심하는 거였다. 휘둥그레 눈을 굴리며 가져가지 않았다고, 본 적도 없다고 강하게 얘기했다. 그러나 엄마는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고 따져 물으며 나를 몰아세우고 급기야 친구인 정희 집을 가보자고 하고 이내 긴 월남치마를 입고 앞장을 서라고 했다. 커다란 산이 내 앞을 가로막고 외등도 켜져있지 않은 음침한 뒷골목에 혼자서 덩그마니 서있는 기분이었다. 눈물이 쏟아지고 보이는 것도 없는 어둠을 가르고 난 박차고 집을 뛰쳐나왔다. 뜀박질로 헐떡거린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려보니 깜깜한 어둠을 뚫고 아버지의 자전거가 보이는 것이었다.


무섭고 말씀이 없으신 아버지는 엄마와 내게는 동등한 느낌이었나 보다. 그 빨간 돼지저금통 사건은 누구도 아버지의 귀로 전해지지 않았으니깐.... 이 후로 난 혼자 있는 아이가 되고 눈치 쟁이가 되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가 되었다. 친구가 필요하면 다락방에 올라가 대학생이던 막내 고모의 책을 보며 나름, 우거진 숲은 아니지만 곁가지가 몇 개 붙은 어설픈 어른이 되었다. 책 속의 글자들은 내게 신선한 우유가 되고 햇빛과 바람이 되었으며 밤하늘의 빛나는 별이 되었다.

이전 02화할머니를다시 볼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