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
지독한 시간들이 있었다. 어쩌지 못하며 견뎌야 했던 힘든 시간이었다. 누구도 나를 위로해주지 못하고 누구도 나를 구원해 줄 수 없었다. 그 시간들을 지나며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건 가족도 하느님도 아닌 나 자신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나를 지키고 사랑해주어야 한다는 마음을 느낀 것 같다. 자기사랑은 살아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에 떠오른 구원의 메시지였다.
내 삶이 외부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상태였다는 걸 자각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 삶의 주도성을 찾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 삶의 주도성을 찾는다는 건 누군가를 핑계대지 않고 누군가를 의지하지 않고 삶을 책임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무 죄의식없이 나의 삶을 향유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나는 삶이 즐거운 것이라는 생각에서 멀어졌을까?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인생은 고(괴로울 고)이고 잠시 잠깐의 즐거움을 느낄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의 몫의 인생을 왜 이렇게밖에 취급하지 않고 살았던 것일까? 아주 오래전 어느 순간, 나의 인생이 내 손을 떠나 망망대해로 떠난 것처럼 여겨졌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레 운명론자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생이 흘러가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운명에 몸부림치면서도 꼼짝하지 못하는 습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그랬을까? 나와는 상관없는 인생이 나를 성장시킨다는 미명하에 계속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을까? 공망이 길었고 여건이 어렵게 돌아가고 있었다지만 나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을까? 이제 나는 조금 정신을 차리게 된 것 같다. 그래서 과거의 고정된 생각들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모습을 자각하게 되었음에도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 되기를 망설인다. 내가 진정 바라는 걸 고민하기를 망설인다. 내가 진정 버리고 싶은 걸 고민하기를 망설인다. 지금 현재를 벗어나고 내가 전면에 나서기가 겁이 난다. 운명이 나를 흔들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러니 나는 즐거움을 모르고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으로 어둡게 머물고 있다.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나에게 짐지우기를 멈추고 닥달하기를 멈추고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나는 운명이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을 오랫동안 한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스스로에게 가혹한 시간을 허락한 건 나 자신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스스로에게 좋아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말해주지 않으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기사랑이 없다면 일을 할 수도 사랑을 할 수도 없음을 알게 된다. 이젠 나에게 삶을 선택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허락해야 함을 안다. 나의 삶이 운명이 아닌 나의 몫이라는 것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