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내가 있게 한 것은?

그림책<대추 한 알>장석주 시, 유리 그림

by 신윤상

#대추 한 알#나의현재 #나를성장시킨것 #고마운 존재들 #자서전을 쓰는 이유



건강한 다리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시리얼과 달콤한 우유와

흠 없이 잘 익은 복숭아를 먹었다.

그렇게 못할 수도 었었다.

개를 데리고 언덕 위 자작나무 숲으로 산책을 갔다.

오전 내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누웠다.

그렇게 못할 수도있었다.

...중간 생략...

그러나 나는 안다. 어느 날인가는

그렇게 못하게 되리라는 걸. -제인 케니언 <그렇게 못할 수도>


미국의 시인인 제인 케니언은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기 일 년전 이렇게 노래하고 있었다. 일상 안에서 우리가 쉽게 누리고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며 우리에게 경각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지금 내가 머무는 자리와 이 시간을 우리는 당연히 여기며 관성에 떠밀려 살고 있다. 어제와 판박이인 오늘을 보내고 아무렇지 않게 의미없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곤 한다. 하지만 일상의 소중함과 내가 머문 자리를 인식하는 순간 생생한 삶을 살기위한 소중한 기회가 찾아 오는 것 같다. 지금 나는 어디에 머물며 어떤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나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전인생을 통해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바쁘게만 지내온 지난 시간을 지나 중년에 이르렀을 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머문 자리를 살펴보고 자서전을 쓰기까지 할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축복된 일이다. 중년의 시기의 사람이라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점검해보고 싶은 열망이 들 수밖에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청년시절의 삶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 같다. 외향적인 성공이나 보여주는 삶이 자신을 풍요롭게 해 줄 거라는 환상을 가지고 깊은 내면의 자신과 만나기를 멀리 하는 것이다. 자신을 대면하겠다는 용기를 내는 사람들도 여전히 당혹스런 마음은 있다. 과거를 곱씹는다는 것이 나에게 유익한 점이 있을 것인가? 오히려 아픈 생각을 반추하고 외면의 평화를 깨트리는 것이 아닌가? 이제 죽음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인생의 허무함에 두려움이 밀려 온다면 어떻게 남은 생을 살아야 할 것인가?


중년의 혼란스런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머문 자리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이제껏 나는 어떤 삶을 살아 왔고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스스로와 대화하고 답을 내 보는 것이다. 그러니 자서전을 쓴다는 것이 성공한 사람들이나 하는 과시적인 일이나 거창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건 편협하고 손해되는 일이다. 내게 절실하고 중요한 인생의 문제를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누구나 자서전을 쓰는 시대이다. 소위 개나 소나 그리고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를 잡아야 한다.



그림책<대추 한 알>은 장석주 시인의 글을 예쁜 그림으로 풀어내며 대추나무의 일 년을 보여준다. 대추 한 알이 붉어지고 둥글어지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했는지, 하늘과 땅이 어떤 노력을 해 주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그림책을 읽으며 내가 영글어진 시간들을 돌아보게 된다. 그림책은 봄날의 대추나무 아래 나물을 캐는 어머니와 어린 여자 아이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옆에는 강아지와 뛰어노는 남동생의 모습도 보인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집을 바라보며 논두렁에 자리잡은 대추나무는 봄을 맞아 연두빛 이파리를 생기있게 내밀고 있다. 아버지는 모내기를 하기 전 논을 파고 다듬는다. 대추나무에도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대추나무에 핀 꽃을 벌이 부지런히 오가며 꽃가루를 전해 주고 있다. 모내기를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뒤로 하고 대추나무에는 어느 새 작은 열매들이 맺혀 있다. 아이들이 학교를 오가는 동안 대추는 조금씩 커져 가고, 김매기를 하는 아버지에게 새참을 가져오는 어머니와 아이들 뒤에는 열매가 가득 달린 대추나무의 모습이 보인다. 어느날은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아래 대추나무가 세찬 바람에 흔들린다. 천둥과 번개가 치는 어두운 밤, 비바람을 맞는 대추의 모습은 안쓰럽지만 여전히 굳세게 나무에 매달려 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비가 그친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작렬하는 태양을 비추어 준다. 태양빛 아래 대추는 더 커지고, 더 붉어진다. 또 다시 거친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 대추는 이 시간이 언제까지 계속 될 것 같은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차가운 밤이 지나고 다시 해가 떴을 때, 땅바닥에 내팽개친 대추알들이 보인다. 논의 벼들도 모두 누워버려 아버지와 어머니는 벼를 세워 묶어 주신다. 하지만 시련의 시간이 지난 후 언제 그랬냐는듯 논두렁을 지나는 아버지와 아이들이 탄 자전거 옆에는 대추나무의 말간 모습이 보이고 노랗게 익은 벼들로 들녘은 황금빛 세상이다. 해가 지고 석양이 물들 때 붉은 대추는 타오를 것만 같다. 초승달이 떠 오른 휘영청한 가을 밤, 대추는 황금빛과 붉은빛을 모두 품어 환하게 빛나고 있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볓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잘 익은 노란 벼를 수확하는 날, 아버지가 지나는 트랙터 옆에는 대추나무에 옹기종기 모여 대추 수확을 하는 가족의 모습이 보인다. 대추나무 아래 모인 가족들은 잘 익은 대추나무의 열매를 맛보며 웃음꽃을 피운다. 작은 대추 한 알이 익어가고 둥글어지는 데는 시련처럼 여겨졌던 태풍과 천둥과 벼락이 필요했다. 또 무서리 내리는 차가운 밤과 작렬하는 뜨거운 태양과 은은하게 비춰 주었던 초승달 몇 조각이 필요했다. 빨갛고 예쁜 대추가 되기까지 말이다.



나는 지금의 내가 되기위해 무엇이 필요했을까? 내가 이렇게 예쁘게 익고 둥글어지기 위한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 본다. 내가 겪어 낸 시간들이 참으로 안쓰럽고 버겁다고 생각했었다. 혼자만의 힘겨움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를 위무하는 글을 쓰고 싶었고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장석주님의 시를 읽으며 드는 생각은 아주 작은 대추 한 알이 겪어낸 시간들이 힘겨웠지만 소중한 것이라는 점이다. 안쓰럽지만 필요했던 일이었다. 하물며 생명력을 내뿜으며 끝없이 변화 성장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그 모든 역동성의 정점에 있지 않을까. 나는 살아 움직이며, 끝없이 생각하고, 계속 발전하려는 존재이기에 하늘과 땅과 햇빛과 비바람과 태풍이 나를 찾아올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그런 시간을 거친 지금의 나는 한 가지 길만을 고집하지 않고, 한 가지 생각만이 옳다고 하지 않으며, 어두운 밤을 지나 다시 아침을 맞이하는 희망을 잃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은가 싶다.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과 가족들, 만났던 많은 사람들, 기쁨의 순간들, 슬픔의 순간들, 버겁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모두 나를 키워준 소중한 존재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자기 안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이

왜 이렇게 견디기 어려운 것일까

어차피 사람은

자기 밖으로 나가야 한다

자신을 버려두고 가든지

자신을 끌고 가든지

결국 자기를 자기 밖으로 끌어내어

미지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요시노 히로시<달팽이>


내 안에 머무르지 않고 껍질 밖으로 나가려 애쓴다는 것이 우리의 숙명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에 대한 탐구를 멈출 수 없고 그 사랑의 눈길을 거둘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글을 쓰는 것이고, 또 독자는 이 글을 읽으며 자서전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자서전 쓰기는 자기와의 진한 만남이다. 내 안에 들어있는 과거와 현재의 무수한 기억과 생각들의 파편을 주워 담아보며 내면에 담긴 나의 실체를 만나는 작업이다. 그 시작점은 지금 여기 있는 나를 들여다보는 것에서 부터가 좋지 않나 싶다.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지금의 내가 있게 해 준 시간들을 써 보길 바란다. 자신의 껍질을 벗어나려는 노력만으로도 시작은 충분하고 첫 글을 쓰는 순간 이미 반은 이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