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빨간 나무>

절망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희망

by 신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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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오는 동안 계속 부정적인 생각에 시달린다. 이런저런 걱정들, 앞날에 대한 두려움,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원망, 잘되는 일이 없을 때의 위축감과 절망... 어쩌면 잠시 잠깐의 기쁨과 행복감을 제외하면 계속해서 어둡고 불안한 상황과 감정들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현자는 우리의 본성인 존재성과 우리에게 끝없이 찾아오는 감정들을 바다와 파도의 비유로 말하고 있다. 깊은 심연 속 나의 본질은 흔들리지 않는 평화의 상태이지만 파도인 여러 감정들이 일어나 나를 흔들어 댄다는 것이다. 이때 감정에 집중하며 나의 본성을 잊어버리면 고통과 번뇌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림책<빨간 나무>는 이런 우리의 힘겨운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표지에는 작은 배를 타고 있는 소녀가 등장한다. 파스텔빛의 강 위에 떠있는 작은 배에는 부정적인 언어가 잔뜩 적혀있다.

'nothing, trouble,dark,worse...' 어두운 낯빛의 소녀는 물위에 떠 있는 빨간 단풍잎을 바라보고 있다. 페이지를 넘겨 보면 소녀는 넓은 벌판에서 커다란 메가폰을 들고 말을 하는듯 보인다. 하지만 소녀의 말은 땅으로 떨어져 음절도 되지 못한채 알파벳으로 흩어진다. 하루가 시작되어 해가 떠올라도 아무런 희망을 느끼지 못하는 소녀는 밀려오는 어두운 생각에 집을 빠져 나온다. 으례 혼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두운 마음은 커지는 법이니까. 밖으로 나와 걷고 있는 소녀에게 여전히 세상은 버겁고 어둡기만 하다. 태풍이 칠 것만 같은 바닷가에서 병속으로 들어가 앉아 표류하기 직전의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은 소녀가 얼마나 외롭고 고립되어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세상은 나의 말을 들어주지도 않는 귀머거리 기계이고 마음도 몸도 없는 기계라고 느끼게 된다. 소녀의 기다림은 하염없이 이어져 느림보 달팽이 위에서 달라질 무언가를 기다리는 모습은 애잔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러 태풍치는 바다에서 큰 배들에게 끼어 휘청이는 작은 배에 탄 소녀의 모습은 극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소녀의 창가에 날아든 나비의 모습에 안도감이 들었지만 창은 자물쇠로 채워져있고 노란 구름과 예쁜 나비들은 소녀와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렇게 힘든 상황이 계속 될 때 끔찍한 운명은 찾아든다. 소녀가 6이라는 수로만 쓰여진 주사위를 들고 높은 외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 길의 끝에는 무서운 용이 모래시계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나에게 덮쳐오고 외길 위에서 하나의 수로 된 주사위를 던져야하는 극한의 상황에 쳐한다면 도데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때는 무엇을 해야 할지도 내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릴 것이다. 소녀는 자신을 조정하려는 여자와 남자와 자신을 지켜보는 관중 앞에 서서 그저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새장을 들고 서있는 여자는 소녀를 가두고 싶어하는 엄마이고 종이 봉투를 뒤집어 쓰고 나팔을 불고 있는 남자는 아빠라고 여겨졌다. 이토록 절망에 빠졌다고 느낄 때 나약한 영혼은 자신을 탓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소녀는 동굴에서 빠져 나와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다. 소녀가 방문을 빼꼼히 열었을 때 뜻밖에도 빨간 단풍잎은 잎을 더 피워 마침내 나무가 되어있다. 그것도 소녀가 바라는 바로 그 모습으로 말이다.



그림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빨간 단풍잎은 늘 소녀와 함께 한다. 페이지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빨간 잎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빨갛고 예쁜 나무가 된다. 빨간 잎은 어려운 시간에 우리와 함께 해주는 희망으로 느껴졌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만나게 되는 극적인 변화가 얼마나 반갑고 다행인가. 그런데 어떻게 소녀가 막다른 길에서 돌아왔을 때 빨간 나무는 자라나고 있었을까?


고통스런 시간이 가져다 주는 축복이 있었던 것일까? 감정이라는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던 자아가 본래적인 힘을 깨닫게 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자기 안의 긍정성이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회복탄력성이 소녀를 희망으로 이끌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속된 말로 '바닥을 치면 올라간다'는 말도 떠오른다. 내가 남편의 실직으로 수녀원 주방일을 하고 있을 때 함께 일을 했던 영양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생각해보니 첫째가 중학교에 가서 첫시험을 치른 후 남편과 내가 했던 말이기도 하다. "너는 오를 일밖에 없으니 얼마나 좋냐? 꼴지에 가까우니 넌 희망밖에 없는 거다."


부정적인 생각과 절망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나만의 빨간 나무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임상심리학자이자 불교명상가인 타라 브렉은 <자기 돌봄>에서 무엇보다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설령 그것이 나에게 고통을 주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친절하게 해결을 위한 모색을 하면 동일시에서 벗어나 또다른 자기 감정을 보태지 않게 된다고 한다. 도피나 우울감에 젖어들어 자기 혐오나 무기력증을 얻게 되는 2차 화살이 훨씬 우리를 힘들게 하므로 고통에 맞서며 새로운 시각으로 보라고 한다.


세계적인 명상가이자 영성가인 그렉 브레이든은 그의 저서 <디바인 메트릭스>에서 관계의 다섯가지 거울을 말하고 있다. 현실은 자신의 믿음이 투영되어진 거울과 같은 것이기에 자신에게 닥친 일을 다섯가지의 거울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중 자신이 비판하는 것들이 투영된 경우와 나의 두려움이 투영된 경우가 힘겨움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판단하고 비판했던 문제들에 대한 강한 믿음이 그런 일을 현실에 투영해내는 결과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상황이 그런 믿음들의 투영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자신이 했던 판단과 비판, 믿음들을 점검해 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자신의 그림자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표면의식으로는 허용되지 않고 비난하지만 실상은 억눌린 욕망은 다른 이들을 비판하는 모습으로 드러내 보여질 수 있지 않을까.


또다른 거울은 자신의 내면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내면이 변화되고자 하는 갈망이 강하고 결핍에 사로잡혀 있기에 일어나는 필연적인 일이다. 하지만 일단 자신이 두려워한 일이 일어난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면 이 경험은 새로운 의미를 띄게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답을 낸다면 어두운 밤의 경험을 반복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루이스 글릭의 시<눈풀꽃>을 읽으며 추운 겨울 눈 속에서 꽃을 피우려고 애쓰는 나 자신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어떻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빗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추운 겨울을 맞서 이겨냈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두렵기에 절망과 희망의 가운데에 서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외부와 내부의 나 자신과 싸우며 나아가고 있다. 나 자신이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려 애쓰는 눈풀꽃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나는 스스로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희망을 마음에 품고 잊지 않기로 먼저 다짐해 보지 않을까. 언젠가 나무가 되어 줄 수도 있는 작은 씨앗 하나를 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닥쳐오는 일의 의미를 되돌아보아야 하겠다. 그렉 브레이든이 제시해준 현실의 거울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부정적 경험을 맞서 바라보고 그것을 느끼는 나의 감정도 묻어버리거나 지나치지 않고 잘 들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반복해서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나고 똑같이 아픈 경험을 하게되는 사슬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