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으로 알게 된 너의 고마움
#코로나시국의인간관계#사회적동물#너의소중함#자유허용하기#개별성인정#갈등회복력#내가당신을사랑하는것은
오래간만에 공부하는 지인 둘과 치맥모임을 했다. 몇 번을 미루었던 약속을 다시 정했고, 기어이 만나고야 말겠다는 일념의 결과물이었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초저녁 시간에 첫 손님으로 앉아 이야기를 풀며 맥주잔을 기울이니 셋 모두 들뜬 마음이 되었다. 모두 지난 2년 동안 사람들과 만나 편하게 술 마신 기억이 없다고 했다. 나만 그랬나 싶었는데 모두 그렇게 고립되어 살았구나하고 알게 되었다.
함께 책을 읽는 독서회의 지인은 남편분이 공사 현장 소장인데 확진자가 나오면 공사에도 차질이 생기고 문책도 받는다며 까페도 가지않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지인의 남편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우울하다는 마음을 넘어 진단까지 받은 분의 심정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한 부모님들은 학교가 친구들을 만나 사회성을 기르고, 맛난 점심까지 먹여주는 엄청난 보육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2년이 넘게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바꿔버리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여기고 있었던 사람들과의 만남이 너무도 큰 의미가 있음을 알게 해주고 있다. 한편으론 가서 물건을 사는 것도,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무언가를 배우려 한 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점점 어색해지고 불편해지기까지 하고 있다. 온라인상으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에 지쳐하면서도 적응이 되어 고립된 자신의 무미무취함에 빠져있는 상태라고나 할까.
그림책<오!키퍼>는 외로운 두 영혼 소냐와 키퍼가 서로에게 진실한 친구가 되어주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느날 떠돌이 개 키퍼는 공원에서 소냐를 만나 그녀가 주는 감자튀김을 먹게 되고 그녀를 따라 집으로 간다. 사람들은 소냐를 이상한 여자로 여겼지만 키퍼는 소냐가 들려주는 별 이야기와 고향이야기를 들으며 소냐가 따뜻하고 젊잖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둘은 잘지냈지만 어느날 부턴가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차츰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된다. 키퍼는 밖에서 뛰어 놀고 싶은데 소냐는 종일 그림만 그리며 키퍼를 챙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날 둘은 함께 공원에 갔지만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 소냐를 두고 키퍼는 아이들을 따라 가버린다. 아이들이 주는 개사료와 케익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즐거운 기분에 취해있던 것도 잠시, 다음 날이 되자 키퍼는 자신을 묶어두고 떠난 아이들 대신 소냐가 보고싶어진다. 개줄을 끊고 전력으로 달려간 키퍼는 자신을 찾아 헤매고 있던 소냐와 상봉하고 둘은 힘껏 서로를 안는다. 책 표지의 장면은 반가움으로 소냐의 얼굴을 핥아대고 있는 키퍼와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띠고 있는 소냐의 얼굴로 크로즈 업 되어있다. 그리고 둘은 바닷가에서 뛰어 놀다 집으로 돌아간다.
이야기는 단순한 줄거리이지만 행간에 담긴 둘 사이의 우정과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해 주변에서 놀림을 받고 일년 내내 같은 옷을 입고 다니던 소냐는 혼자만의 삶에 익숙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히퍼가 찾아 와 함께 하면서 밤하늘을 바라보거나 밥을 먹을 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이다. 또 둘은 그림을 그리러 공원을 함께 가고 해가 지면 함께 돌아왔다. 그러다 서로가 다른 점들 때문에 갈등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소냐는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을 때는 키퍼를 잘 돌보아주지 않아 키퍼는 서운한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키퍼는 떠나고 난 후 소냐가 키퍼에게 자유를 허용해주고 구속하지 않았던 넉넉함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소냐도 키퍼가 자신 곁에 머물러 준 소중한 존재였음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외로운 두 영혼이 서로가 있음으로해서 위로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다시 만난 둘의 관계는 이제 예전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시인 로저 맥거프는 <당신과 나>라는 시에서 오해하기 쉬운 우리들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조용조용 설명한다. 당신은
고함치는 말로 듣는다. 당신은
새로운 방법으로 설명한다. 나는
오래된 상처가 들추어짐을 느낀다.
당신은 양면을 본다. 나는
한쪽 눈에 안대를 한 당신을 본다. 나는
달래주려고 한다. 당신은
새로운 이기심을 느낀다.
나는 비둘기다. 당신은
매로 보인다. 당신은
올리브 가지를 내민다. 나는
가시를 느낀다...
한때 사랑했던 사이나 우정을 쌓았던 관계에서도 갈등은 쉽게 생길 수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마음을 드러낸 관계에서 기대치와 실망이 커져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서로가 개별적인 주체인 우리들은 서로가 다름을 경험할 수밖에 없음에도 헛된 욕심을 부리려다가 좋은 관계에 금을 긋고 만다.
문요한 정신과의사는 <관계를 읽는 시간>에서 갈등회복력을 말하고 있다. 상대와의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할 때 최대한 상대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인정해주면 갈등은 쉽게 봉합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를 오해하고 내가 오해했던 서로의 다름을 받아주지 않고 멀어진 여러 친구들이 떠오른다. 씁쓸한 마음이 올라온다. 내가 생존의 문제에 힘들었을 때 그것과 상관없이 본인들의 외국여행이 중요한 친구들의 모습, 학원을 경영하며 겪게된 학부모와 학생들과 교사들의 다른 입장들, 나는 최선을 다해 도왔던 동생이 자기 앞가름을 먼저 챙기는 모습, 그리고 여전히 삶의 지향점에 합의가 되고 있지 않는 남편까지… 사실 이제 사람들과의 관계맺기는 내 마음 속에서 비중이 크지 않게 되었다. 그 마음은 사람들을 싫어하고 멀리하려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 같다. 내가 중심이 되어 살아내고 사람들의 마음에 장단맞춰 흔들리지는 말자고 다짐하는 그런 식이다.
소냐와 키퍼의 관계를 보며 내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였는가 다시 묻게 된다. 나의 기준이나 바람으로 기대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하지는 않았는가. 그의 좋은 점들과 존재해줌의 고마움을 잊고 불편한 면만을 바라보지는 않았는가.
나의 기대치를 낮추고 각자의 개별성과 독자성을 인정할 때 오히려 상대가 주는 선한 영향력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존재만으로 감사하며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시인 로이 크로프트의 <내가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을 보면 그런 충만한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지금 당신이 당신이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당신 곁에서 내가
또 다른 나로 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내 삶의 목재로, 헛간이 아니라 신전을 짓도록
내가 날마다 하는 일을 꾸중함이 아니라
노래가 되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어떠한 신앙보다도 바로 당신이
나를 더욱 선하게 만들었고
어떠한 문명보다도 바로 당신이
더욱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손도 대지않고 말한마디 없이
기적도 없이 당신은 모두 해냈습니다.
당신이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것이
참된 친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에게 지인들에게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었나?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원하는 것이 다르고, 가고자 하는 길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붙잡고 살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지 않으면 존재의 의미를 느끼기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사회 안에서 살며 서로의 체온을 나누려고 한다. 다만 고슴도치의 겨울나기처럼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개별성을 존중하고 자유를 허용하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럴때야 비로소 상대의 소중함이 온전히 나에게 수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