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용기를 내어 본다면

그림책 <용기 모자>를 읽고

by 신윤상

#용기모자 #주관적 현실 #두려움 #망상 #나를 내려놓기 #현실 자각하기 #용기 내어보기


겁이 무척이나 많은 메이슨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메이슨은 매 순간에 겁나는 무언가를 상상해 내어 겁에 질린다. 공원에서 만난 개가 컹컹 짖는 것도 겁이 나고, 노란집을 지나갈때면 창문에서 비치는 그림자의 모양새를 보고 거리행진하는 경찰처럼 보여 겁을 낸다. 또 과자를 먹을 때마다 달려드는 비둘기떼에 잔뜩 겁을 내고, 밤에 창문으로 비치는 빛줄기에도 외계인의 비행접시를 생각하며 겁을 내곤 한다. 밤마다 메이슨은 침대 밑에 사는 악어 때문에 편히 잠을 잘 수가 없다.



메이슨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할아버지에게 고민을 털어 놓는다. 할아버지는 용기 모자가 필요하다는 처방을 내린다. 그리곤 읽고있던 신문을 접어 용기 모자를 만들어 준다. 메이슨은 용기 모자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항상 모자를 쓰고 다니며 당당하게 변화된다. 그는 모자를 쓰고 노란집을 지날 때 용감하게 안을 들여다 본다. 그랬더니 웬걸 무섭게 보였던 그림자가 사실은 가면을 쓰고 노는 아이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 공원을 지나가면서 비둘기들이 몰려오자 용기를 내서 밥을 나누어 준다. 용기를 내어 자세히 보니 비둘기들의 모습은 무섭지 않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용기 모자를 쓴 메이슨은 할아버지와 저녁 산책길에 무서워했던 개를 만나지만 인사를 나누고 용기내어 쓰다듬어 보니 금새 친구가 된다. 할아버지와 메이슨, 개와 주인 아저씨가 모두 공원에 앉아 무지개빛 화사한 불빛과 밤풍경을 감상하는 모습은 전과 전혀 달라진 모습이었다.


메이슨의 변화는 다소 극적이다. 침대 밑에 사는 악어를 두려워했지만 할아버지가 침대보를 걷어내고 보니 악어는 겁이 잔뜩 나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자신이 두려워했던 존재도 알고보니 겁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라는 자각을 얻게 된 것이다. 메이슨은 악어를 오히려 달래주며 힘을 불어 넣어준다. "이제 무서워 하지마. 내가 용기모자를 접어 줄께."라면서.



두려움에 떨며 내 눈에 비치는 세상이 암울하고 추웠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으로 육체노동을 감행하는 용기를 내어 수녀원의 식당일을 했던 시절, 나는 어떤 면에서는 용기내어 선택을 하였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남편이 4년간의 실직기간을 정리하고 사업을 하겠노라 했지만 그 모양새가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가족과 떨어져 지방에서 일을 시작했고 사업 내용을 자세히 알 수가 없었기에 마음은 더욱 불안했다. 무엇보다 불안했던 이유는 남편이 평생 했던 전문분야가 아닌 엉뚱한 일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안 될 일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남편은 3년간 죽어라 마음고생과 몸고생을 하고 빚을 잔뜩 진채 사업을 마무리했다. 그때 급하게 이사를 간 집은 겨울이 되자 너무 추웠다. 보일러를 아무리 돌려도 따뜻해지지 않아 냉골 같다는 말이 무언지 알게 해주었다.


그 시절 나는 두려움과 희망 사이에서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더 바닥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어 남편과 나의 처지뿐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겁이나 부들부들 떨었다. 공과금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황도 있었고 방이 차가우니 가장 따뜻한 큰방에 모여 함께 잠을 자야했다. 그런데도 어떤 행동을 하지 못했다. 보일러를 고칠 생각을 못하고 남편과 속시원히 말을 나누지도 못했다. 두려움이라는 안경을 쓰고 있으니 꼼짝 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해 겨울 나는 마당에 쌓이는 낙엽을 한 번도 쓸지 못하고 봄이 다 되어서야 쓸 수 있었다.


그 겨울이 끝나갈 무렵 슬며시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바닥까지 떨어진다면 올라갈 일만 남는다고 하던가. 바닥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희망을 선택할 힘이 났던 것 같다. 이제 더 내려갈 곳도 없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몽글몽글 솟아났다. 의연한 마음이 들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메이슨에게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좋았을 것이다. 털어 놓을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겠는가. 또 해결책으로 용기모자를 만들어 주시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메이슨은 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용기모자를 이유삼아 자신 안의 힘을 끌어내었을 것이다. 또 두려움이라는 게 실체가 없는 나의 시나리오일지 모른다는 걸 스스로에게 인식 시키며 나를 넘어서고 싶다는 열망으로 한 발짝 나아갔을지도 모른다.


나도 용기를 내어 다른 선택을 했다. 돈걱정도 내려놓고 남편걱정도 내려 놓으려 했다. 거짓희망을 잡으려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두려움과 하나가 되어 매몰되지 않으려 대범한 마음을 먹으려 애썼다. 그러자 삶이 순식간에 변하는 걸 느꼈다. 어렵게 여겼던 일들이 순탄하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보일러를 고쳐야겠다고 마음 먹고 전화를 하자 큰돈 들이지 않고도 금새 집은 따뜻해졌다. 겨울내내 얼기를 반복했던 수도도 이제 얼지 않았다. 나는 나의 의식상태에 따라 주변환경이 펼쳐진다는 생생한 느낌을 받았다.


데이비드 홉킨스박사의 <의식혁명>에서는 의식의 단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부정적이고 개인적인 관점에서 벗어날수록 의식은 진화된다고 한다.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있는 단계를 벗어나는 전환점은 용기를 내었을 때이다. 용기내어 현실을 수용하면 신에게 응답하는 모양새가 되어 포용과 사랑으로의 진화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 수준의 환경이 주변에 펼쳐지게 된다고 한다.


메이슨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힘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먼저 할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용기모자에 기댈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결국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내려놓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메이슨이 두려움의 색안경을 쓰고 자기 안에 머무를 때는 실체가 아닌 그림자만을 보고 새로운 망상을 만들어 냈다. 메이슨이 주관적인 현실을 붙잡지 않고 모자를 썼다는 것은 용기를 선택하는 행위였다. 그렇게 메이슨이 두려움과 분리되어지자 내면에 있던 용기는 자연스레 올라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 안의 용기가 살아 움직이도록 그 길을 내어주기 위해서는 나의 주관을 지키고자 꽁꽁 싸매지 않고 나를 풀어 헤쳐 내려놓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매순간 나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 안의 감정이나 마음을 알아차리고 인정해야 하는 용기, 나의 의지와 판단을 내세우지 않고 내려놓는 용기, 나만이 아닌 우리로 의식을 확장하려는 용기, 그리고 부족한 나의 생각을 드러내고 나누려는 용기까지…


지금 용기를 내어 본다면, 그리고 적어도 두려움과 걱정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조금씩 의식은 진화해 가지 않을까. 그리고 나의 의식은 밝음과 희망,사랑의 세계로 조금씩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택의 순간 다른 삶이 펼쳐졌던 마법을 다시 되새기며 나에게 용기모자를 씌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