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렇게 멋진 날>

모든 날은 멋진 날

by 신윤상

글을 쓴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게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독자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혹시라도 글을 기다리는 분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당장 눈앞의 일들이 숙제로 여겨지면 옴짝달싹 못한다. 누가 나에게 숙제를 던져주고 해내라고 누르고 있느나하면 사실 그런 존재는 없는데도 말이다. 난 참 모든 게 빡빡한 인간이다. 새로운 공부를 하는 것도 즐거움 보다는 버거움이 크다. 타인을 만나는 것도 내가 편하지 못하면 버겁게 여겨진다. 그리고 자유롭게 타이핑 하는 즐거움 누리기를 포기하고 답답한 내 안에 갇히게 된다. 내 사고의 논리성과 선명도가 흐려진 상태로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림책 <이렇게 멋진 날>을 읽고 수업준비를 하면서 그런 불안증세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럴 땐 무엇을 해도 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고 무엇을 안해도 쉬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해야 할 일의 리스트가 머릿속에 가득한데 할 수 있는 역량이 너무도 작다는 생각에 자기비하의 감정이 올라온다. 다리를 덜덜덜 떨게 되고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도 얼굴은 무표정하고 심장은 빠르게 뛴다. 그럴 때 나를 진정시키는 방법은 주로 드라마 보기이다. 마음을 편하게 이완시켜야 하므로 로맨틱 코미디가 적당하다. 드라마 세 편을 연달아 봤지만 마음이 그대로인 걸 경험하고 나니 그제야 나를 들여다 보게 된다.


<이렇게 멋진 날>의 앞표지는 새까만 구름이 땅까지 내려오고 비도 굵게 내리는데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아이가 등장한다. 아이의 표정은 평안하다. 은은한 즐거움을 담고 주변과 어우러진 모습이랄까. 무슨 일이 있길래 저런 날씨에도 아이는 미소를 짓고 밖을 걷고 있으며 '이렇게 멋진 날'이라고 하는 걸까하는 궁금증이 올라왔다.


이야기는 깜깜한 하늘에 장대비가 내리는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여자친구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곁엔 그림을 그리다 지쳐 엎어져있는 다른 여자아이가 있다. 맞은 편에 있던 남자아이가 음악을 켜는 순간 분위기는 반전된다. 모두의 표정이 밝아지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렇게 멋진 날이면 우리는 춤을 춰.'라며 뱅글뱅글 쿵쿵거리기를 몇 번. 마침내 남자아이가 먼저 장화를 신고 우산을 들고 문을 열고 나선다. 삼형제와 강아지가 빗길을 뚫고 씩씩하게 걸으며 '이렇게 멋진 날...'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들이 들판에 이르렀을 땐 동네 친구들도 모두 우산을 들고 몰려든다. 마침내 비가 멈추었을 때 모두가 숨박꼭질, 미끄럼 타기, 나무타기를 하며 신나게 논다. 엄마가 가져오신 간식을 먹으며 아이들은 '오늘은 정말 날씨가 좋아. 오늘은 정말 멋져!'라고 외치며 달려간다.




이수지 작가는 뒷표지에 '먹구름이 몰려오든 폭우가 쏟아지든 다 멋진 날인 아이들, 오늘이 즐겁고 오늘이 전부인 모든 아이들에게'라고 한 줄 글을 써두었다. 감동적인 멘트이다. 흐리고 천둥번개 치는 날에도 햇살이 쏟아지는 파란 하늘 아래서도 항상 '오늘은 정말 멋져. 이렇게 멋진 날~'이라고 말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서였다. 하물며 우리네 인생 날씨를 생각해 본다면 천둥치고 번개치고 차가운 비바람이 몰아쳤던 겨울날에 나의 꼴은 어떻했던가. 아니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고 방해요인들이 많이 없어졌다고 할 수 있는 지금에 오히려 불안증이 도져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건 무어란 말인가. 오늘 나는 '오늘은 정말 날씨가 좋아. 이렇게 멋진 날~'이라고 들떠 말할 수 없는 꼬락서니이다.


아이들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힘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나도 아이들처럼 즐기며 살고 싶은데... 나는 매몰된 감정상태에서 조심스레 발을 빼보려 한다. 적어도 불안하고 초조한 나의 상태에 빠지지 않기위해 이유를 조사해야 했다. 나에게 걱정되고 두려운 일이 있는가? 공부를 정확히 해내지 못하는 것? 사회적 지위를 얻지 못하는 것? 아님 끝내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하는 것? 남편이 경제적인 성과를 만들지 못하는 것? 등등. 하지만 그런 고민들은 예전부터도 있었는데 고민들이 강화된 이유는 무어란 말인가. 가만히 이런저런 이유를 뒤지다가 최근 몸이 급격히 힘들었고 의욕까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랬다. 몸이 너무 힘드니 모든 게 의미가 없고 버겁게만 생각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번 방향성을 잃어버리니 흔들흔들 표류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내면의 나는 성실하게 일을 잘 해내고 싶은데 현실의 나는 몸과 마음이 자신이 없어져서 불안에 이른 것이었다. 언제 몸이 아파 아무 일도 못하게 될지, 이제 좀 나은 컨디션이라지만 내가 해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자니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크게 부풀려지며 나를 누르게 되는 것이었다.


나의 역량에 대한 의심이라고만 하기엔 이유가 다소 약하지 않은가 생각을 하다 어쩌면 이게 마음의 습관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잘 해야 돼'라는 억압의 습관과 '잘 될까?'라는 의심의 습관, 마음이 과거 실패의 기억들에 익숙해져 있는 습관, 미래의 해야 할 일에 부담감과 두려움을 갖는 습관 말이다. 그리고 이를 자각하지 않고 계속 키워가고 있다보니 온통 생각에 점령당해 휘둘리고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마음챙김과 명상을 배우다 보면 과거와 미래가 모두 허상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현재라는 짧은 순간만이 있으며 순간에 충실할 때 영원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찰나의 현재 뿐이지만 그 순간에 빠져 즐기게 될 때 고민도 두려움도 심지어 지독한 고통의 기억도 사라지게 되기에 순간은 영원이 되는 것이다.


그림책에서 보았던 아이들의 모습은 나의 예전 모습이기도 하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싶어서 안달이 났고, 동생들과 마당에서 비누거품으로 미끄럼을 타기도 했고, 친구들과 뒷동산을 오르며 너무 신나했었다. 날씨가 어떻든 오늘은 즐거운 날이 될 것을 확신했던 아이가 이젠 날씨가 좋아도 걱정을 하느라 하늘을 보지 못한다. 그건 어쩌면 인생 목표가 흔들리거나 삶의 자리가 불안해서가 아니라 오늘을 살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내가 만들어낸 허상의 압박들로 누릴 수 있는 하루마저 잃고 있지는 않았을까.



내 안에 가득한 압박이 사실은 욕심이고 욕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나에 대한 기대와 욕심을 버리는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융통성있고 여유로운 모습을 허락해 주자고 나를 달랜다. 예전에 내가 누렸던 멋진날의 기억을 다시 되살려 봐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때의 생각이나 느낌을 연장해 본다면 나의 모든 날은 멋진 날이 되지 않을까. 아이들을 전환시키고 즐거움으로 이끌어 주었던 음악처럼 내 인생에도 음악이 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만히 음악소리를 알아차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