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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긍 Nov 01. 2020

우리 동네 전문가

면을 다듬고, 코너에 날을 세운 도배 작업

얼굴만 봐도 묵직하고 차분한 이미지를 가진 도배 사장님을 뵈었다.  도배를 하기로 예정된 날의 일주일 전, 퍼티 작업을 하러 오셨다. 지어진 후 한 번도 수리를 하지 않은 집이다. 오는 사람마다 도배지가 두껍다 말을 했다. 세네 번 겹쳐서 무거워진 벽. 30년 된 벽지가 남아 있는 게 싫어서 옆에서 조금씩 옆에서 뗐다. 그런데 사장님이 사장님이 그냥 두라고. 일 만드는 거라고 하셨다. 제대로 떼려면 품이 더 들고 어느 정도 떼다 말면 벽이 더 너덜너덜 해진다고. 도배가 다 끝나고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그때 얘기하라시며 엄한 목소리로 말하셨다. 끝나고 얘기하자는 사장님이 무섭긴 하지만 신뢰가 간다.     


우리 동네의 전문가와 작업하다.


처음엔 무몰딩 도배를 하려고 했다. 몰딩이 없으면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깔끔하게 도배가 된다고. 인터넷에서 유명하신 분께 문의를 했는데, 비용이 일반 도배보다 훨씬 비싸서 망설이는 사이에 예약일자를 놓쳤다. 비용을 아끼려는 셀프인테리어 카페에서는 을지로의 유명한 도배 가게와 전문가들의 연락처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배의 경우 나중에 잘못되던지 부분 시공을 할 수도 있을 텐데, 너무 멀리서 섭외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 동네에서 기술자를 찾아보자 생각했다. 

집 주위의 도배 가게를 돌아보며, 가장 전통이 느껴지는 간판의 도배 집을 찾아갔다. 사모님으로 보이는 분이 (이 부분은 정말 사모님이 맞았다) 반겨주셨다. 사장님은 작업을 나가셨다고. 실크 도배로 도배 견적을 문의했다. 을지로보다 비싼 것은 당연했지만, 인터넷에서 유명한 고급 도배업체의 견적과 비슷했다. 어쩌지 생각하다가 여쭤보았다. “사장님은 꼼꼼하신가요? 제 성격이 여간 깐깐한 것이 아니어서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계속 재시공을 요구할 텐데 괜찮을까요?”

사모님은 웃으면, 사장님이 정말 꼼꼼하니까 아무 걱정 말라고. 오히려 사모님이 대강하라고 해도 안 통하는 분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그냥 이 분들께 맡기자 생각했다. 조금도 에누리하지 않고, 처음 말씀하신 견적으로 진행해 달라고 했다. 


정중하게 대우하라.


사장님은 우리 집 앞 학교 출신이었다면 도배 사장님은 이 아파트가 세워지기 전에 4동 자리에서 하우스를 치고 사셨다고 했다. 당시에 등기 없는 땅들이 많았고. 사장님네는 이주비 200만 원을 받고 나오셨고, 당시 조합장들은 집을 세, 네 채씩 받았다고. 그 당시에 아파트 마감에 들어갈 돈들이 누군가의 주머니로 가면서 결국. 2020년. 내가 살 집이 자갈밭이 되었다는 이야기.  담백하게 당시 이 동네 이야기를 하시는데, 듣는 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시대가 한심하기도 했다. 

이 동네는 손바닥처럼 잘 알고 있다고. 우리 집처럼 낡은 집은 면이 고르지 않아서 퍼티 작업을 할 곳이 많고, 마른 다음 도배해야 그다음 도배가 잘 된다고. 그래서 시간을 내서 일주일 전에 오신 거였다. 도배를 오래 한 사람들은 기술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무조건 싸게 싸게만 하려고 하는 분들에게는 그만큼만 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하시는데 당연히 공감이 되었다. 견적을 깎지 않고 제대로 시공해달라는 내 요구가 사장님께 정중한 태도로 전달된 것 같았다.

워낙에 벽상태가 좋지 않아서 아무리 퍼티를 해도 잘 안 나온다고. 심지어 '자갈밭'이란 표현까지 하셨고, 벽상태가 안 좋으면 웬만하면 하얀색을 추천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난 하얀색  아닌 것은 생각도 안 해봤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말씀은 하시지만 세심하게 해 주신 티가 났다. 작업이 끝난 후에 보니 벽면도 많이 정리가 되었고, 둥글고 어설펐던 모서리도 각이 살아있었다.     

도배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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