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긍긍 Oct 26. 2020

슬기로운 계단 생활

- 새 집이 될 준비 작업_ 철거

공사 동의서 받기

공사 전 3개월 동안 셀프 인테리어 카페에 매일 드나들었다. 게시판에 철거 공사 때 소음이 ‘장난이 아니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꽤 올라왔다. 주변 분들의 민원에 시달리는 경우는 비일비재하고, 심지어는 공사를 멈춰야 했던 경험담들이 열렬한 공감을 받으며 읽히고 있었다. 현장에서 직접 감리* 를 해야 하는 나로서는 상상만으로도 조마조마.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공사 시작하기 일주일 전, 이웃한 집에는 특별히 쓰레기봉투를 드리면서 공사 동의서를 받았다.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순한 표정과 좋은 이웃이 될 거라는 믿음을 주는 웃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공사 동의서를 받는 일에 알바를 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 정도는 내가 해도 될 것 같았다. 늦은 오후 아파트의 위아래층을 오갔었다. 

독립하고 17년 동안, 적은 예산으로 혼자 살 집을 구해왔기 때문에 매번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다. 현관문들이 줄지어 서 있는 복도로 연결되어, 많아야 다섯 걸음만 걸으면 옆집인데도 어떤 분들이 사시는지 도통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전세를 살면서 언제든 떠날 수도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나를 드러내기도, 누구와 관계 맺기도 애매한 이방인으로 살아왔다. 이웃과 눈을 마주치거나 말을 건넨 기억도 거의 없었다. 1인 가구인 것이 드러날까 봐 불안한 마음도 컸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꽤 오래 살 수도 있는 집이라 생각하게 되니 더 이상 투명 인간처럼 내 채도를 낮추기가 어려워졌다. 당장 공사 동의서를 받으면서 ‘나’를 이사 올 사람으로 소개하는 일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고 나니, 나에게도 이웃이 될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윗집의 젊은 부부는 혈기 왕성한 꼬마 때문에 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인상을 받았다. 아래층의 할머니께서는 최근에 인테리어 공사를 하셨다고 하셔서 공사 상황을 잘 이해해 주실 것 같았다, 옆집의 가족은 다음 달에 이사 가신다며 공사 잘하라 하셨고, 그다음 집의 아저씨는 쓰레기봉투도 받지 않으시겠다며 ‘수고하시라’ 말해주셨다. 이렇게 이웃을 만났다. 어색했지만 기분이 괜찮았다.     


상상 그 이상의 소음철거 공사

공사 첫날은 철거가 진행되었다. 소음에 관한 민원이 들어오면 철거하시는 작업자들이 불편해한다고 하고 작업 반장님께서도 계속 옆에 있기를 바라셔서 하루 종일 현관 옆 계단에서 대기하였다. 결과적으로 현장을 지키고 있었던 것은 굉장히 좋은 선택이었다.                                 

예고된 일이었지만 철거의 소음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거실 확장 공사로 작업자분들은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오함마**를 들고 등장하셨다. 비내력벽인*** 조적벽을 쾅쾅 내리치는데 정말 소리가 어마어마했다. 아파트가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벽이 무너지는 소리를 아래층에서 듣는다는 상상을 하니 정말 괴로웠다. 나라면 절대 견디지 못할 소음. 제발 아래층 할머니께서 댁에 안 계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안절부절못했다. 싱크대 철거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안도를 하자마자 욕실 타거를 제거와 함께 그다음 소음이 시작되었다. 타일 덧방을 하지 않아 욕실  타일을 다 드러내야 했다. ‘드드드드’ 기계음은 단지 전체를 울리는 것 같았다. 이 소음에 아무도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그게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래층 계단에서 천천히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두근두근. 할머니께서 공사 잘하고 있냐면서 운을 떼신다. 

“너무 시끄럽죠? 죄송해요.”

 몸둘 바를 모르겠는 나에게, 할머니께서는 담담하게 욕실 방수를 철저하게 해 달라고 하셨다. '휴우..' 끝인가 했는데,  한 가지 더! 베란다 천장의 페인트 가루들이 떨어졌는데 왜 그런 거냐면서 한 번 와보라고 하셨다. 얼른 할머니를 따라서 내려가 보았다. 아래층 베란다 천장엔 누수로 인해서 페인트가 이미 갈라지고 있었는데,  조적벽을 무너뜨리면서 생긴 진동으로 가루가 떨어져 있었다. 할머니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이런 진동은 더는 없을 것이라고 양해를 부탁드렸다.      


뜻밖의 수확

아랫집을 방문하고,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신발장을 철거하고 나니, 그 아래에 10센티미터 정도 시멘트로 된 턱이 보였었다. 제거해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철거 반장님께서 보일러가 지나갈 수도 있으니 제거하기 어렵다고...... 신발장을 새로 짤 때 띄움을 해서 평소 신는 신발을 넣으려던 내 계획이 또 무산되나 싶었다. 그런데,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아래층에 가 보니 신발장 띄움 시공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아! 철거가 가능하구나! 얼른 작업반장님께 이 사실을 알려 드렸다. 다시 ‘드드드드’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시멘트 턱이 깨끗하게 제거된 것을 볼 수 있었다. 눈이 보배!              

1. 턱 제거전   2. 아래층 신발장 3.턱 제거후

계단에 대기했기 때문에 좋았던 점은 또 있었다. 욕실에 라디에이터를 제거하면서 바닥에 보일러 배관을 연결하기로 한 것도, 에어컨 기사님을 불러 확장 베란다에 에어컨 배관을 매립하기로 한 것도 모두 현장에서 결정한 것이었다. 철거를 하다가 보일러 전선이 끊어진 것을 발견한 것, 작은 방의 문턱을 제거했더니 마루와 방의 단차가 커서 그 사이를 최대한 티 나지 않게 미장하기로 한 것도 현장에서 바로 소통해서 처리할 수 있었다. 가스 배관을 철거하기 위해 오신 기사님의 동선도 조정해야 했고, 폐기물 관련한 경비실 기사님과도 소통해야 했다. 에어컨 콘센트도 확장한 거실 벽으로 이동하기 위해 전기관을 바닥에 배입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 모든 것들이 

현장에서 알고 처리한 일들이었다.       

두꺼운 패딩을 뚫고 들어올 만큼 추위가 매서웠고, 소음으로 인한 압박에 시달린 하루였다. 하지만, 계단에서의 하루는 ‘인테리어 공사’가 어떤 규모로 이루어지는지, 공사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문제와 사안이 계속 생기고 누군가는-우리 집 공사에서는 내가- 이를 해결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배운 날이었다. 



* 주로 공사나 설계 따위에서,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감독하고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 건축현장에서 자주 사용하는 어휘로, 큰 해머의 일본식 표현. 표준어는 아니다. 

***건축물을 구성하는 벽돌은 내력벽과 비내력벽으로 구분한다. 내력벽은 건축물 구조상 위에서 오는 수직하중과 여러 요소에 의한 수평하중을 받는 중요한 벽체로 철근, 콘크리트 벽으로 되어 있다. 비내력벽은 시멘트 벽돌로 쌓아 올린 조적벽과 각재를 세우고 MDF로 만든 목공벽이 있다. 비내력벽은 단순히 공간을 나누기 위해 사용하는 벽체로 임의로 철거가 가능하다. 


이전 05화 첫 번째 고비를 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