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동네서점을 만들어낸 그녀

작가 배지영

by 신은경

내가 한길문고에서 제일 처음 들었던 강연은 ‘배지영 작가’ 강연이다. 작가와 나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지 않기에 당연히 그녀의 책을 먼저 알았다. 4년째 해오고 있는 책모임에서 한 선생님이 책 <소녀의 레시피>를 추천했었다.


부제 ‘요리하지 않는 엄마에게 야자 하지 않는 아들이 차려주는 행복한 밥상’은 매력적이었고 이어폰을 끼고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낯설었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한 번에 읽지 못했다.


내 기준에 그녀는 무책임한 엄마였다.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이 저녁식사를 요리하기 위해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하지 않는 것, 나에게 그것은 ‘방치’였다. 나는 책장을 넘기기가 힘겨웠다.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의 나는 아직도 틀에 갇혀 있었다.


책모임 날짜는 다가오고, 책을 읽어야 모임에 참석해 토론을 할 수 있기에 읽지 않을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책을 펼쳤다. 억지로 페이지를 넘기던 나는 점점 소년 제규가 보였다. 제규는 방치되고 있었던 게 아니가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고 있었다. 그 덕에 나는 제규가 대단했고 제규 엄마 배지영 작가가 더 대단하다고 느꼈다.


모임 날짜에 도서관에 가자 못 보던 분이 있었다. 미모가 상당했다. 책모임 한 선생님이 ‘우리 작가님 책으로 토론합니다. 시간이 되시면 같이 해주실 수 있을까요?’란 부탁에 선뜻 응해주신 것이다. 책으로 읽은 제규의 이야기를 엄마의 말로 들으니 더 생생했다. 나는 그렇게 배지영 작가를 만났다.


2018년 11월 9일, 아이들(강물이와 마이산)은 학교에서 학예회를 마치고 친구 집으로 파자마 파티를 하러 갔다. 여유 있는 저녁시간 마침 한길문고에서 ‘나도 시작할 수 있는 글쓰기’란 주제로 배지영 작가가 강연을 한다고 했다.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간 강연에서 나는 인생이 바뀌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날의 강연은 내 가슴속의 무언가를 건드려주었다. 지금도 그게 무엇이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아무튼 그날 내 가슴속은 늦은 밤까지 간질간질했다.


며칠 뒤 배지영 작가는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번 강연이 일회성으로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5개월 코스로 글쓰기 수업을 만들었다는 내용이었고, 참여 의사를 묻고 있었다. 알고 보니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 작가회의가 주관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사업’ 덕분에 배지영 작가는 군산 한길문고의 상주작가였다.


그녀의 제안은 간지러웠던 내 마음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듯했다. 시원함도 잠시, 과제라는 복병이 있었다. 몇 줄로 시작한 과제는 한 편으로 성장했다. 그에 따른 내 글 솜씨도 같이 성장하면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빠지지 않고 열심히 따라갔다. 일기보다 못한 글을 숙제로 써가다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글이 나아진다고 느껴졌다. 어느덧 5개월이 지나가고 배지영 작가는 수업의 마지막 과제를 내주었다.


“오마이 뉴스에 여러분 글을 보내보세요.”



‘청천벽력’의 의미를 4D로 체험하면 이런 느낌일까. 같이 수업받는 선생님들에게 내 글을 공개할 때는 부끄러움이 없었다. 처음부터 함께였으니까. 하지만 외부 매체 그것도 언론사에, 내 글이 채택이 될지 안 될지는 걱정도 하지 않은 채 부끄러움이 먼저였다.


결과적으로는 작가의 무리한 숙제 요구가 내 글을 더 자라게 해 주었다. 나는 이제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송고하고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도 글을 공개한다.


배지영 작가와는 수업을 통해 만났지만 나는 그녀의 책을 모두 읽었고 강연도 챙겨 들었다. <소년의 레시피>, <우리 독립 청춘>,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 그녀의 책에는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 사라들은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찾는다. 나는 작가의 책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해진다’를 깨달았다.


한길문고의 상주작가로서의 역할이 버거워 보이는데도 그녀는 자신의 책도 계속 썼다. <내 꿈은 조퇴>,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이 중 <군산>은 쌍둥이 아들(강물이와 마이산)이 자신들이 자라서 독립할 때 가져간다고 특별히 주문해 따로따로 구입해주었다. 작가 사인도 직접 받아야 한다며 고이 모셔두었다가 자신들이 찾아와 사인을 받았다.


배지영 작가는 절대로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설명하고 길을 제시해준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그녀의 책도 그렇다. <군산>을 읽을 때도 그랬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지금도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책이 새로울까, 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군산이 더 많았다. 나는 자연스레 그걸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아이들도 기억하고 싶어 한다.


<환상의 동네서점>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다. 서점이 이렇게나 매력적인 장소가 될 수 있다니. 많은 사람들이 꼭 읽어봐야 한다. 작가 강연,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라면 먹고 갈래요, 200자 백일장 대회, 웹툰 그리기, 마술쇼, 한여름의 북 캠핑, 랩 가사 쓰기 등등. 그 환상적인 서점 이야기 속 곳곳에 나도 있었다는 게 너무나 자랑스럽다.

출판기념회.jpg

배지영 작가만 책을 쓴 건 아니었다. 2020년 10월 31일, 그녀에게 글쓰기 수업을 받은 제자들이 모여 출판기념회를 했다. 나 역시 그 제자들 중 한 명이다. 독립출판을 통해 우리는 모두 작가가 되었다. 배지영 작가는 “여러분이 쓸 책이 서점 매대에 서있는 꿈을 꿉니다.”라고 자주 말했다. 듣기에는 기분 좋은 말이지만 현실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우리 책은 한길문고의 매대에 진열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제 나는 더 큰 꿈을 가졌다. 독립출판은 경험해 봤으니 출판사와 정식 계약서를 쓰고 싶어 졌다. 꿈이 이루어지는 경험의 매력은 치명적이다. 한 번 맛본 경험은 더 큰 경험을 갈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