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의 매력을 가진 그녀

작가 김지연

by 신은경
“밤길에 널 만난 사람이 놀라지 않게 길가로 걸어. 깜깜한 데서 너를 보면 얼마나 무섭겠니?”


남편이 내게 이런 말을 한다면 서운한 마음에 100% 다툼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김지연 작가는 이런 남편과 같이 있으면 편하다고 한다.


내가 김지연 작가를 만난 건 2017년 봄이었다. 당시 군산교육지원청에서 학부모 대상으로 독서교육을 했고 그때 만났던 강연자 중에 김지연 작가가 있었다. 김지연 작가는 그림책을 쓰고 그린다. 당시 초등 3학년이던 아이들에게 해줄 독서지도에 대해 배운다는 생각으로 나는 모든 강연에 참석하려고 노력했다. 모든 강연에는 그림책 강연도 포함된다.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편안함이었다. 이 첫인상은 2021년인 지금까지도 변함없다. 2017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없던 시절, 마스크를 쓰지 않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그녀는 강연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 놀란다고 밤길에 길가로 걸어야 한다고 말하는 남편, 그녀를 지우개라고 부르면서 반말을 하는 학생들. 하지만 그녀는 이들 모두에게 화를 내지도 않고 서운해하지도 않는다. 진정 자신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애정이 느껴진다면서. 한 번만 만나도 팬이 되고 만다는 마법의 그림책 강사. 이 타이틀이 어쩌면 그렇게 딱 들어맞는지. 출석률을 위해 참석한 그림책 강연에서 나는 그림책에 또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하며 강연을 듣고 그녀가 소개하는 그림책 제목을 적어두었다가 구입해 읽었다. 절판된 책은 도서관, 중고서점을 이용했다.


이때부터 나는 그림책을 읽을 때 그림을 먼저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전에는 글부터 먼저 읽었었다. 내가 그림책을 읽어주면 그림을 보며 듣던 아이들이 그림에서 무언가를 찾아낼 때 아이라서 그런 줄 알았었다. 그녀의 강연을 듣고 나서는 나도 그동안 보지 못했던 그 무언가를 볼 수 있다.


작가와의 만남은 단 한 번을 만나도 끝이 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작가 중 단 한 권의 책만 쓴 작가는 없다. 첫 책을 쓴 작가는 시간이 흐르고 또 다른 책을 쓴다. 요즘엔 책을 쓰는 중간에 칼럼이나 여러 플랫폼을 통해 그들의 글을 읽을 수 있다. 김지연 작가와의 인연도 이렇게 이어졌다.


2017년 여름 군산교육지원청의 독서 교육이 끝나고 학부모들끼리 모여 책모임이 결성됐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만 용기 내서 들어갔다. 이 모임은 2021년 현재에도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 책모임에서 책 <아무도 외롭지 않게>를 통해 김지연 작가를 다시 만났다. 책 겉표지를 벗겨내면 주방 싱크대의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책 읽는 여자가 나타난다. 동질감을 느끼며 나는 책을 열었다.


동질감의 이유는 겨울이면 내가 책을 읽는 장소가 이곳이기 때문이다. 보일러를 틀면 바로 옆 주방부터 따뜻해진다. 집 전체가 데워질 무렵에 이 곳은 찜질방 바닥처럼 뜨끈뜨끈하다. 책 읽는 내내 내 엉덩이는 뜨끈뜨끈하고 그 열기는 마음 깊숙한 곳까지 전해졌다. 부제 ‘내가 만난 엄마들’인 이 책에는 여러 엄마들이 나온다. 작가는 그녀만이 가진 특유의 이해심으로 엄마들을 이해하고 위로한다. ‘난 외롭지 않은데’란 생각을 가지고 읽다가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위로만 받은 건 아니었다. 나보다 더 큰 아이들이 있는 엄마인 그녀에게는 세계에서 손꼽힐 멋진 그녀만의 육아방식이 있다. 아이가 혼날 짓을 했으면 혼나야 하고 스스로 자기 입장을 말할 기회를 줘야 하고, 아이 키우는데 꼭 필요한 도구는 그릇과 책이라고 말한다. 백반증을 앓고 있는 둘째 아이에게 ‘내일의 불안과 공포로 오늘의 행복을 미뤄 두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며 용기 있는 삶을 열어준다.


“눈이 너무 예쁜데, 다 녹고 있어.”라며 눈사람과 눈을 가득 채운 봉지를 가져오면 그녀는 잘 받아 냉동실에 넣어둔다.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다음 줄을 읽는데 그녀에 대한 존경심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그녀는 이사하면서도 이 눈덩이들을 챙겨갔다.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눈덩이는 그녀의 냉장고 안에 있다.


나와 아이들 모두 재밌어하는 에피소드도 있다. 현금 100만 원이 있던 어느 날 김지연 작가는 아이들을 작은 방으로 불러 돈을 뿌려보고 그 흩어진 돈 위에 굴러보도록 했다. 아이들은 물론 그녀도 신나게 놀고 난 후 돈을 주웠는데 96만 원이었다. 몇 번을 세도 여전히 96만 원이었다. 이때 그녀는 명언을 내뱉는다.


“이제부터 찾는 돈은 모두 줍는 사람이 임자!”

눈에 불을 켜고 찾은 결과 그녀와 큰아이, 작은 아이 각자 만원씩 찾았다. 남은 만원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얘들아, 돈이 그렇다. 아무리 큰돈도 의미 없이 뿌리고 가지고 놀면 장난감이고 쓰레기야. 그런데 애써서 노력한 만큼 얻는 돈은 적어도 아주 기쁘지. 또 이 방 어딘가에 있는 건 알지만 다 가질 수 없는 것도 돈이야. 돈을 쫓지 말고 너희가 좋아하고 즐거운 일을 하면 돈이 너희를 따를 거야.”


얼마나 멋진 엄마인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또 다른 에피소드는 생일에 대한 내용이다. 작가의 큰아이가 열세 살 생일을 맞았을 때 그녀는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물질에 넉넉한 요즘 아이들이 가지기 힘든 기회. 바로 24시간 야자타임. 이날 하루 종일 아이는 엄마에게 반말로 엄마는 아이에게 존댓말로 대화했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동생도 선물을 미리 받고 싶어 했다.


나는 이 두 에피소드를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재미나게 듣던 아이들에게 “어때? 너희도 다음 생일선물 야자타임으로 받아볼래?” 물었더니 바로 좋다고 했다.


아이들도 그녀를 만나볼 기회가 생겼다. 2020년 6월 비 내리던 날, 동네서점이 ‘예스트서점’에서 그녀와 재회했다. 첫 만남은 큰 강연장에서였고 두 번째 만남은 작은 서점이다. 작은 서점에서 작가 강연을 듣고 나면 나는 그 작가와 지인이 된 듯 착각에 빠진다. 이날 강연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소외된 계층과 역사 그림책 <백년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공공시설 이용이 금지되면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시설을 이용해야만 하는 그 시설이 없으면 다른 선택지가 없는 소외계층을 걱정했다. 그녀의 남다른 이해심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백년아이>는 아이들이 더 좋아했다. 책에 있는 모든 그림이 판화로 만들어졌다는 설명을 듣고 놀라워했다. 아이들은 그림책에 있는 그림들은 컴퓨터를 이용해 그린 그림이라고 여겼다고 했다.


또래와 어울려 노는 걸 점점 좋아하는 아이들은 PC방에 가보고 싶어 했다. 거실에 각자의 컴퓨터가 있어 내가 보기엔 거실이 PC방인데.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PC방에서는 라면을 비롯한 여러 간식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게임하던 컴퓨터를 이용해 주문할 수 있다며 가보고 싶다고 간절히 말한다. 그래서 고민 끝에 결정한 생일선물은 바로 ‘생일 PC방’. 일 년에 단 하루만 영업하는 PC방이다.


이날 아이들은 마음껏 게임을 하고 카카오톡을 이용해 간식을 주문했다. 게임하고 라면 먹고 게임하고 음료수 마시고 게임하고 과자 먹고 그렇게 아이들이 하루를 보내는 동안 내 안에서는 사리가 나올 듯했지만 나는 잘 참았다. 그 덕에 이런 선물을 되돌려 받았다.


“오늘 정말 좋았어.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어.”

“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빨리 일 년이 지나면 좋겠어.”


코로나바이러스로 뒤덮인 지구에서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날이라니. 김지연 작가 덕분이다.


작가는 자신의 책을 읽고 모인 사람들에게 얼마나 멀리 있든지 달려간다고 했다. 공부에 지친 아이에게, 친지들이 모였을 때, 엄마들이 모였을 때 누구에게든지 진심을 담아 책을 읽어준다. 단 한 번의 만남에 작가의 팬이 되어버리는 비밀은 바로 이점인 것 같다. 작가의 목소리를 들으면 위로받고 힘이 난다. 그래서 나도 책을 읽다가 한 두 꼭지는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읽어 준다. 아이들도 나도 힘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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