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깨닫는다.

정여울 작가

by 신은경

어릴 때 책꽂이에 꽂혀있던 위인전에서 고흐를 처음 만났다. 그 당시 나는 어렸고 위인전에 서 그를 묘사한 글과 그림은 무척이나 괴팍했다. 때문에 어린 나는 고흐가 정신이상으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그 모습을 자화상으로 그린 무서운 화가라는 선입견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었다. 그의 그림들도 덩달아 어두워보였다는 기억도 함께 가졌다.


어른이 되어 다시 보게 된 해바라기와 밀밭을 비롯한 그림은 내 마음을 흔들었다. 노란색인데 마냥 밝지가 않았고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팠다. 후에 여러 전시전을 다니면서 그의 그림들을 접하고 그것들을 그릴 당시의 고흐의 상황을 알게 되면서 그의 마음이 어렴풋하게나마 이해되었다.


나는 책 <빈센트 나의 빈센트>를 아픈 마음을 가지고 읽었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는 정여울 작가가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며 여행하고 쓴 에세이다. 고흐의 살았던 모든 장소에 대한 사랑(topophilia)이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녀가 이 책을 완성하는데 십여 년이 걸렸다고 했다.


2019년 7월의 어느 날 정여울 작가를 한길문고에서 만났다.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다니고 그 사람이 쓴 글을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경험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경험을 직접 전달받을 수 있으니. 나는 그렇게 고흐를 만날 수 있었다.


“작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삶, 그의 인생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그녀가 그 오랜 시간 고흐를 쫓아다닌 이유라고 했다. 그녀는 고흐의 그림을 보며 너무 행복해서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회적 자아(ego)가 원하는 행복이 아니라 내면의 자아(self)가 꿈꾸는 희열(bliss)을 찾으라고 강조해 말했다. 그녀는 힘들지만 자신만의 꿈꾸는 희열을 찾는 과정을 고흐를 통해서 이야기했다.


책 속의 고흐는 살아있는 동안 지독하게 외로웠다. 부모도,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에게도 철저히 외면당했다. 내면의 희열을 느끼게 해 준 그림이 있었기에 그 힘든 삶을 견뎌냈을 것이다. 그가 그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물감과 캔버스를 사주고 편지로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 동생 테오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고흐와 그의 그림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미술 중개상 일을 하던 테오는 형을 세상과 연결시켜주었고 형의 작품세계를 누구보다 이해하고 격려해 주었다. 평범한 사람들보다 섬세하고 감수성이 뛰어났던 고흐는 늘 우울증, 공황장애, 정서불안, 신경증 등이 있었다. 믿었던 고갱이 고흐의 여린 마음에 난도질을 하고 떠난 뒤, 남을 해치지도 상처 주는 법도 모르는 고흐는 자신의 귀를 칼로 자른다. 이 때문에 고흐는 정신병동으로 가게 되었고 세상과 고립되었다. 그림만이 그의 곁에 있었다. 동생 테오의 지원으로 고흐는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어느 날 고흐는 충격적인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형, 나는 더 이상 형에게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수 없을 것 같아. 미안해.” 편지를 보낸 동생 테오도, 편지를 받은 형 고흐도 너무나 안타까웠다. 고흐는 이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고도 전해진다. 형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형의 작품으로 회고전을 준비하다가 동생 테오는 반년이 채 안 돼서 함께 세상을 떠났다. 그 6개월여의 시간 동안 테오는 어떤 심정으로 살았을까.


서른셋 테오가 세상을 떠났을 때 테오의 아내 요한나는 29살이었다. 졸지에 과부가 된 요한나는 갓 한 살이 된 아들과 세상에 남겨졌다.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뒤로한 채 그녀는 묵묵히 고흐의 그림과 스케치를 수습했다. 형제의 우애를 옆에서 지켜본 그녀는 테오를 형 옆에 묻어주었다.


형제가 세상을 떠나고 여전히 무명이었던 고흐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것은 요한나였다. 고흐가 죽고 그의 모든 유작은 테오의 것이 되었고, 테오도 세상을 떠나자 그것들은 아내 요한나의 것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요한나에게 돈도 안 되는 작품들을 태워버리라고 했다. 하지만 요한나는 고흐의 그림은 물론 형제의 편지를 소중히 여기고 세상에 알리려고 힘썼다. 그녀는 형제의 668편의 편지를 공개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남달랐던 형제의 우애를 세상에 알리고 결국 고흐를 세계 미술의 정상의 자리에 올려주었다.


예민한 감수성과 그림에 대한 열정, 당시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그 열정을 혼자서만 지니고 살아온 고흐, 자신의 가정과 형의 열정을 동시에 지켜주고 싶었지만 힘에 벅찼던 동생 테오, 힘든 상황 속에서 형제의 우애를 지켜주고 싶었던 요한나. 이들의 서로에 대한 사랑이 나를 벅차게 했다.


다시 강연으로 되돌아가서, 질의응답 시간에 “글을 쓰고 싶은데 막상 노트북을 켜면 다른 관심사가 생깁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어느 분이 질문을 했다.


작가는 “목차를 만들어 보세요. 그러면 글을 쓸 때 방향을 확실히 잡을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강연을 들을 때 이 대답은 뜬구름 잡으라는 말로 들렸었다. ‘목차는 글을 다 써야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닌가?’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강연을 들은 2019년 7월부터 18개월 뒤 나는 아직 쓰지 않은 글의 목차를 만들 수 있었다. ‘아, 그때 정여울 작가가 이렇게 해보라는 것이었구나.’란 깨달음은 몸소 체험하면서. 가르침은 그 자리에서 바로 깨우치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깨닫는다. 나는 그걸 경험했다.

매거진의 이전글마성의 매력을 가진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