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는 처음이지?> 명로진 작가 강연 첫 번째 이야기
오랜만에 한길문고에 갔다. 코로나19 방역조치가 많이 완화되어 인원 제한 없는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듣는 사람이 가득한 강연, 오랜만이다.
강연자는 명로진 작가였다. TV에서 보았던 그를 처음 만났던 때는 2020년 봄이 시작하기 전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그가 작가로 활동한다는 걸 전혀 몰랐었다. 탤런트라고만 알고 있던 그가 쓴 어른을 위한 책부터 아이들을 위한 책까지, 특히 고전에 관련된 책이 많았다. 심지어 내가 아이들을 위해 사주었던 책에도 그의 이름이 있었다. 그의 책 <전지적 불평등 시점>을 읽고 강연을 듣고 위트와 냉소를 겸비한 그의 어휘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논어는 처음이지?> 역시 명로진 작가의 책이다. 지금까지 논어를 접해본 건 여러 번이었지만 끝까지 완독 하지 못했다. 어려웠고, 이해하지 못하니 지루했다. ‘옛날 책인데, 아무리 좋은 말이 있어도 현재의 실정과는 맞지 않겠지’란 생각에 책장을 다시 닫은 경험이 여러 번이었다. 명로진 작가의 논어는 다를 거라고 기대했다. 그의 어휘로 설명된 논어는 확연하게 달랐다. 기대에 찬 그의 논어 강연은 2020년 11월 강연을 마지막으로 잠정 중단되었다. 이번에도 코로나바이러스가 그 원인이다. 강의가 중단된 후 나는 이 책을 나름 열심히 읽었지만 텍스트 이상의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은 특히 <논어>를 처음 읽는 분들을 위해 썼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보나 마나 <논어>는 지루하고, 고리타분하고,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쉽고 재미나게 읽으실 수 있도록 애썼습니다. <논어>를 읽는 시간은 힐링의 시간이었습니다.”
<논어는 처음이지?>의 들어가는 말에 있는 구절이다. 그때까지 나는 힐링의 시간을 갖지 못했고 그렇게 이 책은 내 책장 한 켠에 지금까지 꽂혀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피하려고 노력한 지 벌써 3년째, 나는 결국 확진 판정을 받았다. 자가 격리하던 중 집에 있는 책장을 찬찬히 살펴볼 시간이 있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긴 글은 읽기 어려운 상태에서 <논어는 처음이지?>가 보였다. 한 장씩 읽기에 무리 없는 책, 나는 이 책을 침대에서 읽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점령된 몸이 힘들어서였는지, 자가 격리하던 현실이 슬펐는지 이유는 확연하게 알 수 없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졌다. 작가의 말대로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한 번 확진되었다가 회복했고, 백신도 여러 번 접종한 나의 활동반경이 약간은 넓어졌다. 운명인지 한길문고에서 강연 소식이 쏟아졌다. 4번에 걸쳐 <논어는 처음이지?>를 들을 수 있는 명로진 작가의 강연에 스케줄 생각도 하지 않고 일단 신청했다. 일정은 나중에 변경하면 된다. 내 일정의 중요 순위는 직장 다음으로는 한길문고 강연이다.
강연 당일, 약 17개월 이후의 만남인데도 변함없는 모습의 명로진 작가를 만났다.
“공자 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란 질문으로 강연이 시작되었다. 나도 질문을 받았는데, “예를 중요시하던 분"이라고 대답했다. 질문을 받으면 항상 긴장된다. 예기치 못한 질문에는 더 그렇다.
질문에 대한 명로진 작가가 해 준 답은 <논어는 처음이지?>를 읽어야 하는 이유처럼 느껴졌다. 공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먼 거리도 괘념치 않는 Romantist이며 복지와 배려가 부족한 옛날 사회에서 맹인을 대하는 방법을 아는 Humanist이고 옷의 소재에 따라 속옷을 갖춰 입고 깔맞춤을 할 줄 아는 Fashionista였다. 공자에 대한 3대 선입견이 산산이 부서지며 공자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강의에서는 15개의 공자의 말씀을 공부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밑줄을 자주 긋는다. 같은 책을 읽어도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사람마다 다른 곳에 밑줄을 긋는다고 한다. 같은 강연을 들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15개의 말씀 중 공자가 수많은 제자 각자에게 각각 맞는 가르침을 준 대목이 가장 와닿았다. 공자는 제자의 가정사와 성격 나아가 부모와의 사이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각자에게 알맞은 가르침을 줄 수 있었다. 나도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
두 번째로 마음에 와닿는 부분은 ‘효’에 대한 부분이었다. 조선의 왕의 생모, 즉 대비의 회갑연에는 왕이 재롱을 떠는 공식적인 차례가 있었다고 한다. 왕도 부모 앞에서 재롱을 떠는데 무뚝뚝한 성격의 나는 엄마 아빠 앞에서 재롱을 떨어본 기억이 없다. 아마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던 아주 어린 시절에나 했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공자는 제자 자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주 쉬운 것이었다. 부모를 대할 때 웃는 낯으로 대하면 된다. 이 쉬운 걸 나는 강연 날에도 못했다. 겉으로 티 나지 않게 속으로 반성하면서 내 아이들에게도 이 구절을 꼭 읽어주고 싶어졌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미간에 주름을 잡는 횟수를 좀 줄이고도 싶고 그들의 웃는 얼굴을 지금도 자주 보고 싶고 나중에도 보고 싶어졌다.
강연을 들을수록 공자에게 매력을 느꼈다. 내가 남편 다음으로 좋아하는 남자는 다산 정약용인데, 좋아하는 남자가 한 명 더 늘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나는 공자 생각에 푹 빠져있는데 식구들 누구도 알지 못했다. 좋은 건 같이 하고 싶은 마음에 사춘기 아이들에게 용감하게 부탁했다.
아이들은 ‘또 엄마가 뭘 하자고 하려고 저러지?’하는 눈빛으로 잔뜩 경계하며 나를 바라본다.
“엄마가 오늘 이 책 강연을 들었는데, 그동안 보았던 <공자>하고는 많이 달랐어. 아주 쉽고 풀이도 잘 되어있는데, 내용이 너무 좋아. 그래서 너희들하고 같이 읽어보고 싶은데, 하루에 한 구절씩만 읽으면 돼. (책을 펼쳐 보여주며) 봐봐, 한 구절은 얼마 되지 않지? 하루에 10분도 걸리지 않을 거야.”
너무 비굴하다. 아이들이 어릴 땐 이렇지 않았는데,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 비굴하다. 나는 남편한테는 한 번도 이런 위치에 있어보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효에 관한 구절을 읽고 나선 내가 좀 덜 비굴해지면 좋겠다. 아직 3번 남은 강연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다음 강연을 듣고 나면 나도 좀 더 성숙해지고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