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きていける場所を求める"
"ふとうこう (不登校) 후토우코우"는 아동이 어떤 이유로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다는
일본 단어이다.
ひきこもり 히끼코모리-틀어박힘. 자택이나 자기 방에서 장기간 틀어박혀서 다른 사람이나
사회와 접촉을 하지 않고 생활하는 상태로 1990년대에 청소년 사이에서 증가하여 일본의
사회문제가 된 히키코모리는 나도 알고 있었지만 부등교(후토우코우)라는 말은 일본어학교에
다닐 때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심각한 문제여서 수업 시간에 청해문제 주제로 나왔는데 그때 처음 들은 단어였다.
히키코모리나 후토우코우나 학교에 가지 않는건 같으나 히키코모리는 집에만 쳐박혀 있는것
아니 자기 방에만 쳐박혀있는 상태이고 후토우코우는 학교, 교실을 거부하는 상태이니
둘 다 조금은 다를까 싶지만 사실 이 둘은 사촌, 아니 형제간 쯤 될것이다.
히키코모리가 후토우코우가 되고 후토우코우가 히키코모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관관계가 아주 높은 두 현상은 일본의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히키코모리를 소재로 한 드라마도 있었다.
히키코모리 센세-
11년차 히키코모리인 성인 남자가 부등교 아이들을 모아놓은 학교의
비상근 강사로 출근하게 되는 줄거리였는데 토요일 저녁 NHK에서 5부작으로 작년에 종영했다.
드라마를 보고 알았다.
부등교란 자기 교실을 거부하는 것이지 학교를 거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부등교 아이들은 학교와 학습을 거부하는 것일뿐 이상한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드라마 메세지로
보여줬고, 마음붙이고 살아갈만한 곳을 찾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이야기였다.
마음붙이고 살아갈 곳을 찾는게 힘든 사람들이 히키코모리가 되고, 부등교 아동이 되고
금쪽이들이 되는 것이다.
오은영 박사가 상담해주는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 덕분에 상태가 다른 금쪽이들을
tv로 봤지만 실제로 내가 tv에서 탈출한 금쪽이들을 보게 될 줄이야-.-
11시부터 근무시간이지만 취미가 일찍 출근, 정시 퇴근인 내가 한 시간 전, 한 시간 반전에
출근해서 돌봄교실에 앉아있는 시간은 나에게는 해방일지가 되는 시간이라
혼자 있는 그 시간을 위해 일찍 출근했는데
건너 편 1학년 4반 교실에서 선생님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눈물을 눈에 달고
1학년 4반 선생님이 돌봄 교실 문을 열고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했을 때
나는 마음만은 오은영 박사가 되어서 1학년 4반으로 출동, 금쪽이 두 명을 양 손에 잡고
돌봄교실로 왔다.
그게 시작이었고, 수업중에 상담실로 보내져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상담 선생님을 힘들게 하던
두 금쪽이들은 이상하게 우리 돌봄교실에만 오면 순한 아이들이 되어서 내 말을 어찌나 잘 듣는지
교실 난동 후에는 돌봄 교실로 오는 패키지를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한 것 같다.
"당신, 그러다 오은영 박사 되는 거 아냐" 남편이 말했지만 내가 한마디로 딱 정리했다.
"머리숱으로 그 여자한테 이길 수 없어"
어디 머릿수뿐이겠는가, 이길 수 없는게 백가지도 넘는다는 걸, 내 주제를 너무 잘알고 있는 나는
딱 내 수준에서만큼 금쪽이들을 볼 뿐이다.
가지고 논 놀잇감은 스스로 정리하기, 둘이 사이좋게 놀기, 놀이 후에는 약간의 학습을 할 것
그리고 교실에 돌아가기가 내가 두 금쪽이들과 정한 약속이었고 교실에서는 교과서를 찢고 앞 문을
정신사납게 열어서 아이들 학습을 방해했던 아이들이 우리 반에서는 앞 문은 사용하지 않고 뒷 문으로만
다니는 순둥이들이 된 것은 내가 뭘 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들에게도 "비빌 언덕이 필요해서"이고
두 금쪽이들에게 우리 교실은 비빌 언덕이기 때문에 나한테까지 와서는 난리는 피우지 않는다는게
내가 내린 정답이다.
경력이 이십년차라는 1학년 담임 선생님이 나한테 그랬다.
올 해 같은 최악의 해가 처음이라면서 두 아이들이 자기를 꼬집어서 생긴 멍을 보여주며
내가 도와줘서 너무 고맙고 앞으로 세 번 정도 더 울면 여름방학이 올 거니까 참아보겠다고 하셨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 석달 열흘 쏟아지는 비는 없고 세 번 아니라 열번을 울어도
여름방학은 온다는 걸 그 선생님도 나도 잘 알지만
가끔은 확실히 정리된 말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히키코모리 선생 드라마 홈페이지에 있는 "生きていける場所を求める"라는 문장이
직역으로 하면 살아갈수있는 장소를 바란다는 뜻이지만 의역으로는 비빌 언덕이 필요해라는
뜻 정도로 해석하면 딱 좋을 것 같기도 하다.
학교 오기를 거부하지는 않으니 우리 반으로 오는 금쪽이들이 부등교보다는 낫다 싶고
그 애들과 담임에게 돌봄 교실이 잠시 비빌 언덕이 되어 주는 것으로 일찍 출근하는 보람이 있는 것도
다른 의미의 해방일지일것이다.
"여기서 놀 수 있어요?"
아이들이 나한테 오고 싶을 때 하는 암호같은 말이다.
다음 주에도 몇 번이나 그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지만 기꺼이 와라, 와
(환영까지는 못해줘도 말없이 내주는 등짝 정도는 돼주마)
내가 아는 두 금쪽이가 온쪽이가 되는 날이 올 것이고, 그 애들도 나중에 군대도 가고
어른이 됐을 때 교실 문을 열어주던 나를 따뜻하게 기억한다면 그걸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