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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에피소드, 하하하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 사무원으로 알바를 했다. 

팀장 : ' 땡땡 선생님, 제 2 투표소로 4시 50분까지 와 주세요"

나 : ' 네, 알겠습니다.'

공권력에 약한 나, 남편이 말하는 것은 한번 튕기고 보는데 공권력의 지시 사항에는 순응한다.

돈 준다는게 그래 돈 값을 해야지.

4월 10일, 선거를 앞 둔 후보자들도 떨리고 설레여서 잠을 못 잤겠지만 나도 못 잤다. 이 것들아.

못 일어날까봐...


다행히 걸어서 3분, 앞 구르기로 가도 천 번이면 도착 할 수 있는 학교에 갔다.

나 : '남편, 다녀올게'

남편 : '위험한데 내가 데려다 줘야 되는 거 아냐"

나 : '닥쳐. 당신이 더 위험해'

여성의 참정권이 확보된지 세월이 많이 흐른게 아니다. 그런데 투표 사무원으로 일하는 상황까지 확보했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일이다. 

새로 시작한 NHK 연속 드라마 "虎に翼" (토라니 츠바사) : "호랑이에게 날개를" 

드라마를 보면 일본의 쇼와시대(1926~189)가 배경으로 그 시절의 여자들이 법률적으로 얼마나 보호받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은행원인 아버지를 둔 토라짱은 공부를 잘 하는 여학생이지만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결혼을 우선시하는 모친이 반대한다. 하지만 법학교에 진학하여 법조인 되는 과정과 함께 여자들이 받는 사회적 차별을 극복하는 것을 드라마로 보여주는데 실제 일본의 첫 번째 여성 변호사가 모델이 되었다.


요즘 하연수도 일본 유학생 '최향숙'으로 그 드라마에서 나오는 데 오늘 아침에 하연수가 했던 대사는 '말도 안돼' (ありえない )였다. 


그 당시 일본의 법률책에는 여성은 무능력자라고 되어 있었다. 결혼한 유부녀의 재산은 모두 남편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입고 지내던 기모노조차 이혼하면 두고 나와야 되는 사회였고 여성들이 사법시험을 보는 것 조차 금지여서 토라짱이 학교에 입학할 때 축사에서 '이제 여성들도 사법시험을 볼 수 있도록 법이 바뀔 것이다' 라는 희망회로를 돌리는 축사를 한다. 그런 상황들을 보면서 한국 유학생 '최향숙' (하연수 분)이 하는 대사가 '아리에나이=말도 안돼'였으니 그 당시 일본의 상황이 우리나라보다 여성의 인권이 더 바닥이었는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좀 나을 거라 생각하고 유학 온 일본에서 그런 꼴을 보니 개탄스러워서 나온 말이었는지는 모르나 하여간 여자들이 사법시험조차 볼 수 없었던 시절이 쇼와시대였으니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되고 어제처럼 투표 사무원으로 참여하여 일 할 수 있게 된 시대 상황이 그 시절 일본 여자들이 본 다면 '아리에나이'가 맞다.



투표함 안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각자 일을 배정받았는데 나는 등재번호 찾아주는 일이었다.

네이버에 나의 투표소 찾기 서비스를 통하여 투표소를 잘못 알고 오는 사람들에게 투표소를 알려 주는 일도 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는 유권자로서만 행사하던 권리에게 다른 사람의 권리까지 보장해주는 일까지 열일했다.


등재번호를 모르고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고 나이드신 분 들은 손바닥에라도 적어서 오신 분들이 많았다. 성명순과 주민번호로 찾아 주는 등재번호를 찾아주면서 이런 사람도 봤다.

나 : '등재번호 모르시는 분들은 확인하고 가세요'

투표하러 온 사람 1 : '알아요. 35요 35요'

그 분이 안다고 하고 투표하러 갔다가 다시 돌려보내져서 왔다.

투표하러 온 사람 1 : '똑바로 알려줘야 할 거 아니야. 당신들 돈 받고 앉아서 똑바로 못 해'

아니 뭘 똑바로 알려주지 못했다는 건지, 그 사람이 안다고 35라고 했던 것은 자기 집 주소였다.

집 주소와 등재번호를 착각한 당신이나 똑바로 잘 하고 앞으로는 그러지 마세요.


신분증을 놓고 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신분증을 놓고 왔다고 다시 돌아가서 갖고 오신다고 말씀하시면서 걱정하셨다.

할머니 : "큰일났네, 만날 영감한테 뭐 놓고 다닌다고 구박했는데 집에 가면 한 소리 듣겠네"

나 : "그럴수도 있죠. 하지만 할아버지 오늘만 기다리셨을텐데 가셔서 한소리 시원하게 들으세요"

할머니 : (쿨하게) "그래야겠네. 하하하"


할머니 두 분이 투표하러 오셨는데 그 중 한 분이 신분증을 놓고 오신 분도 계셨다.

할머니 1 " 오메나. 신분증 두고 왔네. 어떡혀"

할머니 2 "야, 너는 장가가는 놈이 그거 놓고 장가간다더니 그 짝이네"

할머니 1, 2 "하하하, 호호호"


어머나 어머니들, 여기서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하지만 함께 하하하.

투표하는 날이 썰렁해서 복도에서 등재번호 찾아주던 나는 추위에 핫팩을 붙이고 남편이 급하게 내려 온 커피로 몸을 뎁혀가면서 열심히 등재번호 찾아주고 투표소 잘못 찾아 온 사람들에게 네이버 검색 '나의 투표소 찾기' 서비스를 통해서 투표소를 찾아 주었다.


5시 30분에 경찰 두 명이 투표함을 이송하기 위해 투표소에 왔고 투표소 설치물들을 분해해서 선관위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빈 교실에 모아놓는 일까지 하고 (뒷정리 하느라 수고비를 따로 받았다) 돈 봉투 들고 집에 와서 저녁해서 남편이랑 밥 먹고 그대로 누워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남편 " 당신이 벌어 온 돈 달라는 말 못하겠어"

나 "뭔 소리여. 지금. 그 돈을 탐내다니, 앨범에 끼워놓고 못 쓸 돈이다. 보기에도 아까워서"


여성의 사회참여가 당연하지 않았던 시절로부터 오늘날까지 우리가 일궈 낸 사회 참여는 당연한것들이 아니었다. 그냥 우리 손에 온 게 아니니 투표는 나의 권리 지켜야 되는 게 맞고 투표 사무원 참여는 선택이지만 한 번은 해 봐도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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