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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국제고등학교 야구부

-진짜 하극상 야구 소년들이었습니다.

감동적인 순간들이 있다. 우리 아이가 첫 뒤집기를 했을 때, 첫걸음을 뗐을 때, 눈 맞추면서 옹알이를 하더니 엄만지 맘만지 본능적으로 불러줬을 때가 그랬다.

셋을 키웠어도 아이의 그런 행동들은 첫째부터 셋째까지 늘 감동이었다.


감동(感動)이란 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인데, 생각해 보니 마음이 움직여지는 감동은 우리 아기의 첫 뒤집기라든가, 엄마라고 불러 주던 순간, 나랑 눈을 맞추며 웃어줬던 아주 작지만 소중한 일들에서 느꼈던 것들이었다.



내 마음에, 신선하게 감동이 찾아온 게 참 오랜만이었다. 이젠 걸음마할 아기도 없고 오히려 술 취해서 걸음마할 때처럼 가끔 들어오는 아들이 있으니 그걸 보고 감동을 느낄 수는 없고 등짝을 때리고 싶지만 다 큰 자식 그것도 쉬운 건 아니니, 그저 집에 들어오는 게 감사고 감동이다 끼워 맞추고 살았는데 교토 국제 고등학교 야구부가 일본 여름 야구 고시엔에서 우승한 게 나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0-34로 대패한 적이 있는 학교가 고시엔에서 우승을 했다. 

내가 올 초에 재미있게 봤던 하극상야구소년 일드가 마치 교토 국제 고등학교 야구부원들의 이야기 같다.

이기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에츠잔 고등학교의 야구부가 미에현 대표로 선발되어 고시엔에 진출하게 되는 드라마였다. 실화가 바탕이 된 드라마라고 했다.


드라마에서는 에츠잔고등학교가 감동을 주더니, 실제로는 교토 국제 고등학교 야구부가 감동을 줬다.

교토에 있을 때 아르바이트 하던 '밤부'라는 일본 음식점의 요리사 김진 씨가 바로 교토 국제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할머니가 한국 사람이라 그 학교를 갔었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는 한국말을 꽤나 했는데 졸업하고는 많이 잊어버렸다며 나에게 자기의 비밀을 이야기하듯이 학교 이야기를 해 줬었는데, 김진 씨가 다녔던 교토 국제 중, 고등학교가 고시엔에서 우승을 했으니 교토에서도 사람들이 우승한 날 맥주 꽤나 마셨을 것 같다.


지금은 일본 학생들도 다니는 사립고등학교가 되었지만 원래는 교토 조선 중고등학교였었고, 이후 한국학원이라고 이름을 바꿨다가 10년쯤 전에 교토 국제 고등학교(사립)가 되었다.

그래서 교가가 한국어인 것이다.


보로니아 빵집에서 만났던 재일교포 알바 아줌마, 오노상 실제 이름은 강 경미였다.

제주도가 고향인 아버지 엄마가 교토에 와서 재일교포로 살았지만 학교는 교토 조선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나에게 말해줬었다. 나한테는 털어놓을 수 있었던 그 말 "저도 한국 사람입니다'를 함께 일하던 빵집 아줌마들

한카이상이나 나카무라 아줌마한테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었다.


내가 교토에서 있었던 해가 2018년이었는데 그때도 한국사람이라는 걸 숨기고 싶을 만큼 경미 씨는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 함께 웃고 떠들며 지내는 동료에게 차마 본인이 근본은 한국 사람이라는 걸 말하지 못했지만 처음 본 나에게는 선뜻 말을 해줬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나카무라 아줌마에게 경미 씨도 한국 사람이었대요 소리는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경미 씨, 아니 오노상은 나이는 나랑 동갑이었지만 결혼을 아주 늦게 해서 결혼하면 남편의 성으로 바뀌는 일본 가정법으로 오노 경미가 되어 아이사라는 딸을 낳고 살고 있으니 이제 그녀는 거의 일본 사람인셈이다.


오노상도 김진 씨도 모두 같은 학교를 나왔고 둘 다 학교 다닐 때는 한국말을 썼기 때문에 한국말도 그때는 잘했지만 졸업하고 많이 잊어버렸다고, 그건 둘 다 나에게 했던 말들이다.


그래서 교토 국제 고등학교가 고시엔 결승에 올라간 날, 나는 교토에 있을 오노상과 김진 씨가 생각났다.

그리고 나도 뭔가 나랑도 조금 관련이 있는 것 같은 교토 국제 고등학교의 결승전을 응원하느라 직장에 1시간 지각까지 쓰고 7회까지 보고 출근을 했다.

0-0이었다. 두 학교 모두 우승하면 첫 우승이었다. 고시엔은 일본에서 야구를 하는 고등학생들에게는 꿈의 구장이다. 준결에서 진 학교의 학생들이 울면서 고시엔 구장의 흙을 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다. (진 팀의 야구부원들이 주머니에 고시엔 운동장의 흙을 담아가는 것은 그들만의 전통이다)


4,095개 학교가 지역 예선을 거쳐 49개 학교만 고시엔 운동장을 밟을 수 있으니 야구부원이라면 고시엔 땅을 밟아 보는 게 그들의 희망이고 '하극상 야구 소년'에서 에츠잔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그랬었다.


청춘의 성장 드라마여서 재미와 감동이 있었고, 교토 국제 고등학교의 우승은 드라마를 찢고 나온 소년들의 이야기여서 뭉클했고 내가 알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같아서 나는 진심으로 교토 국제 고등학교의 학생들을 응원했다. 운동장에 한국어로 교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을 못 봐서 아쉬웠지만 집에 와서 몇 번을 반복해서 봤어도 감동이었다.


교토에 있는 김진씨도, 경미씨도 그랬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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