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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입시생 부자 엄마

1.2018년 4월 유학 자녀의 유학 말고 나 자신만의 유학을 결심했다.

2018년 4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년에 혼자 일본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어"라고 결심했다.


우리 집은 아이가 셋, 남편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음식은 김치찌개 한 개에 밥은 할 줄 아는 정도

그리고 2017년 4월 현재 스코어 둘째는 재수생 셋째는 고3이었다.

나는 둘째가 앞으로 이미 겪었던 지긋지긋했던 입시생 노릇을 일 년 더 해야 된다는 게 안쓰러웠고

내가 또 그 힘든 입시생 엄마의 노릇을 일 년 더 해야 된다는 것 때문에 우울해졌고

음대 입시생의 총알인 "렛슨비"가 또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가겠구나라는 현실적인 걱정이 앞섰고

한 번의 실패를 겪고 나니 재수 다음에 삼수하지 말라는 법도 없겠구나라는 기우가 생겼다.

재수생이 된 둘째는 본인이 아직 재수생이라는 자각도 없이 목표를 상실한 채 방황하던 4월이었다.

체육고등학교 3학년으로 단거리 육상을 전공하고 있던 셋째는 기록이 나오지 않아 좌절하던 4월이었다.

"엄마 다시 열심히 해 볼게"라는 비장의 출사표를 던져도 시원찮을 판에 재수생이던 둘째는 악기 연습도 하지 않은 채 머리색 바꾸기가 전공이 된 것럼 일주일에 한 번씩 머리카락 색깔을 바꿔댔고 고등학교 때는 슬쩍슬쩍

하던 화장을 아예 노골적으로 진하게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으면 저러겠어 좀 봐줘 저러다 또 정신 차리고 하면 잘할 거니까"

"비싼 미용실에 가서 염색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염색약 사서 혼자 자기 스트레스 풀려고 저런다는 건데 저걸 못 봐주냐"

옆 집 딸이면, 친구 딸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지만 문제는 내 딸이 그렇고 다니는 건 봐주기 힘들다는 거다. 잠시는 꾹꾹 눌러 이해를 하나 4월쯤 되자 내 인내의 그릇도 안에서 차오르는 수증기에 저절로 뚜껑이 열릴 지경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가게 되는 레슨도 고3이었을 때처럼 열심인 것 같지도 않았고 "저러다 맘 잡고 다시 잘할 거예요"는 레슨 선생님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눈에 안보이니 고3 입시생이었어도 체육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던 셋째가 오히려 효녀였다.

힘들지 않은 입시란 없지만 큰 애는 바이올린 둘째는 클라리넷 셋째는 거리 육상 전공

어떻게든 둘째가 대학에 들어가 주면 렛슨비 걱정을 우선은 덜 수 있고 입시생은 이제 셋째 한 명이니

인생이 좀 홀가분해질 거라고 혼자서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키던 걸 도로 토해내고 2018년 나는 "입시생 부자"가 되었다.

스트레스 게이지가 100이 최대치라면 2018년 4월쯤 나는 이미 100을 찍었다.

뭔가 인생이 허무해지는 것 같은 우울감이 찾아왔고 둘째가 머리카락 색을 바꿔가면서 본인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때 나는 나 만의 처방전을 궁리했다.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그냥 내 마음에도 쓱 하고 "나 혼자 유학을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왜 그랬는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마음에 들어올 때 예고 없이 들어오는 게 아닌 것처럼 내 마음에도 "유학"이라는 두 글자가

예고 없이 훅하고 들어왔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를 살려줄 구원의 동아줄처럼  내 마음의 하늘에서 점점 내려오던 "혼자만의 유학"이라는 동아줄

그 줄을 잡고 올라가 하늘에서 해가 될지 달이 될지 아니면 호랑이가 잡은 썩은 줄이어서 수수밭에 떨어지든지

어떤 줄이 될지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모르지만 나는 진심으로 우리나라를 떠나서 오롯이 나 혼자 지내고 싶었다.

"엄마가 뿔났다" 김혜자 아줌마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적로는 둘째의 렛슨비를 걱정하면서도 내가 유학을 가는 상상을 하다니

땅은 발에 딛고 있으나 정신은 나간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그 생각을 하고 나니 갑자기 세상이 달라질 것까진 아니지만 2018년이 견뎌질 것 같은 희망이 생겨나기는 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유학"이라는 프로젝트를 가족의 동의 없이 혼자서 테이프 컷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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