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내 가슴을 뛰게 했던 개도국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돕는 일을 꿈꾸어 온 것은 아니었다. 첫 여행을 떠난 곳인 인도였고, 같은 아시아권이라고 말하는 인도가 너무나 달라서, 그 다름에 푹 빠져버렸다. 내가 아는 익숙한 세상을 벗어나니, 더 넓은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걸 배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늘 모르는 것은 배워야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었다. 모르는 것을 채우면 내 모자람이 조금 줄어드는 그런 느낌이었다. 혹은 더 똑똑해지고 싶다는 지성에 대한 욕심이었을까? 혹은 남들이 가지 않는 일을 가고 싶은 개적자의 욕심이었을까?
국제개발로 진로를 정하고 싶다고 처음 생각한 건, 건축과 도시공학을 공부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 대한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건축을 공부하면서 나는 한번도 개도국의 모델로 배운 적이 없다. 개도국은 그저 배낭여행으로 가서 싼 물가와 아름다운 풍경만 즐기면 되는 그런 곳일 뿐이었다.
어제 친구랑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 우린 한 대기업에 소속되어 같이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만들어진 봉사를 주제로 한 매거진이 있었는데, 매거진의 마지막 장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End가 아니라 And입니다.
해외봉사를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에게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지속적인 활동과 관심을 두자는 의미로 나는 받아들였다.
그리고 친구에게 말했다.
"너는 국제개발을 향해 여전히 AND이고 나는 이제 END이구나."
그리고 친구는 물었다. 무엇이 국제개발을 그만두게 만든 계기가 되었냐고...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지만 내가 국제개발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된 이유는 이렇다.
국제개발에서 일을 하면서 나는 늘 이것이 역사의 뒷길에서 다른 해석을 받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생각의 시작은 껄끄러운 개인적인 단정에 불과했지만 국제개발에 일을 하면 할수록 우려가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마치 식민지 시절의 개발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는 껄끄러운 느낌을 지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며, 식민지 건설에 가장 성공을 했던 영국이 지금은 국제개발에서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히 식민지를 개발하던 역사에서의 경험이 지금의 국제개발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뿐이 아니다. 나는 늘 국제개발을 하는 사람들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국제개발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일까?라는 심각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국제개발을 하면서 만난 대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고집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런 쉽지 않은 일을 하는 데 있어, 자기만의 고집과 신념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하나의 연료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신념과 고집은 반대로 아주 위험한 요소이기도하다. 이런 흐름이 '저개발 국가의 사람들은 지식이 없고 가난하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고쳐내서 앞으로 나아가게 인도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공여자'의 마음대로 나아가는 길을 택하게 된다. 그건 하나의 폭력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도 그런 폭력을 자각하지 못한 채 휘둘렀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런 폭력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나는 이 일을 멈추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했던 일 중에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지인인 나에 의해서 휘둘렀을 현지인에게 지금은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어차피 떠날 제삼자가 아닌가? 제삼자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이래라저래라 지휘를 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이나 창피한 일이다.
이런 일들이 상당히 잦다. 자기 자만에 빠진 봉사자들에 의해, 그들은 자기가 더 배웠고 선진국에서 왔기에 현지인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물론 그들은 착한 얼굴을 하고, 점잖게 행동하겠지만 그들이 해외까지 가서 국제개발 혹은 해외봉사를 한다는 건 그런 마음이 그늘져 있기 때문이다. 그건 적고 많고의 차이지 전무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만약 국제개발에 일을 하게 된다며,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저런 작자가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사실 봉사자들의 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 모두 마음의 어두운 구석이 있다. 모두 싸잡아 일반화시키는 건무리가 있지만, 개인적인 경험이 비추어 봤을 때, 자신의 의지로 해외봉사를 하는 자들은 마음의 상처가 있다. 이 가설은 나를 포함한다. 봉사자들은 타인을 도왔을 때 받는 사회적 칭찬에 중독되어 있다. 왜 그들은 그런 칭찬에 집중할까? 그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낮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돕는 행위로 즐거운 것은, 그것만으로도 진정한 봉사라고 할 수 없다. 칭찬을 통해 자신을 위로하기 때문이며, 그로 인한 다른 차원에서의 이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해외봉사자들이 착하다. 그런 착한 사람들은 타인의 칭찬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는 마음에 그늘이 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생각해보라. 만약 해외봉사나 국제개발을 생각하고 있다면 말이다. 나는 타인의 칭찬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인가? 혹은 그런 칭찬 따위 없어도 나는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무엇보다, 국제개발은 열정만 강요하고 그에 따른 충분한 보상을 주지 않는다. 국제개발로 일을 하려면 당신은 집이 아주 부자이거나 가난해질 각오를 해야 한다. 국제개발을 제대로 하려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올바른 방법으로 행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단체들이 지식 없는 열정으로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남을 돕는데 지식이 왜 필요한가?라는 식이다. 지식 없이 행해지는 많은 일들이 사실 위험하거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헛발질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건 국제개발을 아무나 해도 된다고 믿는 무식하고 고집 센 자들 때문이다. 타인을 향한 이해할 마음 대신 자신만의 신념으로 가진 자들 때문이다.
열정만 가지고 일은 되지 않는다. 그만큼 많이 배워야 한다. 같은 말을 쓰는 한국에서도 어떤 일을 하더라도 관련 지식이 필요한데, 어찌 타국에서 아무런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무식하게 열정만 가지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헛돈을 썼으며,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을까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UN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그들은 도대체 국제개발을 위해 정말 좋은 일을 하고 있을까? 혹은 비싼 국제공무원의 월급만 받으며, 책상 의자만 데우고 있을까? 국제개발의 많은 단체들이 약간의 사기꾼 기질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운영된다. 언제가 이 일은 터지고도 남는다. 눈먼 돈을 좇고, 좋은 일하는데 뭘 그리 따지냐고 묻는 사람들, 그들은 열정을 가진 노동력을 착취한다. 그리고 의문을 던지면, 이런 말이 돌아온다.
"좋은 일하는데, 너무 깐깐하게 굴지 마세요."
우리는 타인을 돕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국제개발은 그저 보기 좋은 돈봉투 잔치다. 기업이나 국가가 직접 돈봉투를 주기 그러니, 국제개발 자금을 통해 뇌물 같은 돈을 준다. 그 후로 모든 게 기름칠하듯 순조로워진다. 국가 간의 관계는 돈독해지고, 기업의 활동이 보장된다. 뭐, 그런 것을 뭐라고 딴지를 걸고픈 마음은 없다. 그것도 모를 정도로 순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주어진 돈이 과연 필요한 곳으로 흘러갈까?라고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라는데 문제가 있다. 국제개발의 자금은 오히려 돈을 가진 현지 기업에게 흘러가거나 지역의 엘리트들에게 좌지우지되며 사용된다. 실제로 아주 작은 이익이 실제로 그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그런 일에 '나' 자신이 이용된다는 게 너무 꺼림칙했다.
순진하고 열정을 가진 자의 노동을 착취해 식민지와 비슷한 방법으로 활용되는 국제개발은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국제개발을 그만둔 이유다. 내가 올바른 방법으로 할 수 없다면 부끄럽지만 나는 여기서 빠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현지에서 열심히 투쟁하듯 타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여전히 존경한다. 나에겐 END였지만, 우리는 여전히 AND라고 믿는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