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나름 남부 지방에서 교통의 요충지로 알려진 곳이지만, 규모는 상당히 작다. 물론 이보다 작은 마을도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Stockholm)과 남부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인 말모(Malmö)도 내겐 왠지 도시로써 부족함이 많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살다 왔기에, '스웨덴에 진정한 도시가 있냐?'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작은 도시에서 사는 걸 진정으로 즐기는 나이지만, 가끔은 도시가 주는 밤거리의 여전한 흥과 분위기가 그리운 적이 가끔 있다.
내가 거주하는 곳이 스웨덴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도 작기 때문에, 스웨덴 친구들은 내게 이렇게 묻는다.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
'잘 살아 임마!'라고 생각하고,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런데 이곳은 남들 신경 안 쓰고 살기 딱 좋은 곳이다. 내가 스웨덴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어딜 가도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 때문이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무슨 도시가 이렇게 한적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그 한적함이 스웨덴의 최고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인구를 늘리려고 애를 쓰고 있는지 모를겠다. 한번 늘어난 인구를 다시 줄이는 건 문제지만, 이렇게 작은 인구로 계속 살아왔다면 더 늘리지 말고 적당히 유지하는 게 스웨덴에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 내가 이 적은 인구를 가진 스웨덴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간단한다. 적은 사람들 중에 나는 이방인일 뿐이고, 인맥도 좁기에 나에게 신경을 써줄 인간이 거의 없다는 점이 좋다. 이곳에서 나는 해방감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스웨덴 친구들은 내가 사는 곳을 듣으면, 대부분 이런 말도 한다.
"거기 보수 꼴통과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넘쳐나는 곳인데..."
그렇다. 나는 작은 동양인 주제에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넘쳐나는 동네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스웨덴에 살면서 한 번도 인종차별적인 언행이나 대우를 받은 경험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 동네가 꼴통 보수들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로 인해 세계 각지에서 동양인에 대한 차별적 언행과 폭행이 넘쳐나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미국이나 독일 등지에서 동양인에 대한 폭언을 하는 영상을 소셜 미디어에서 접하면서 혹시 이곳에서도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어 우려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극성이던 시절에도 아무런 차별적 시선조차 받지 않았다. 물론 스웨덴에도 백인 우월주의자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있긴하다.
그럼 내가 인종차별적 대우를 당한 적이 없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스웨덴 사람들이 너무 착하고 깨어 있어서가 아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이 인종차별주의라고 취급받는 것에 상당한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즉, 샤이 인종차별주의가 있는 셈일 뿐이다. 즉 달리 말해, 착하고 못되고를 떠나 교육을 받아 매너를 갖춘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매너적 행동을 통해 진심은 숨기지만 행동에서 차이를 못 발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인종에 대한 차별을 엄청난 금기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교육을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받아왔기 때문에, 그걸 표현하지 않는 것에 대한 매너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 스웨덴에는 선거가 있었다. 스웨덴에는 크게 3가지 선거로 분류가 되는데, 첫 번째가 중앙 국가(Riksdagen) 위원을 뽑는 선거가 있고, 두 번째로 주 단위(Region)로 활동하는 위원을 뽑는 선거, 그리고 마지막 제일 작은 단위인 코뮨(Kommun) 선거가 있다. 스웨덴 국적을 가지고 있다면, 이 3가지 종류에 모든 선거권을 가진다. 나처럼 스웨덴에서 거주한 지 3년이 넘었다면 중앙 국가 위원은 안되지만 이외 나머지 2가지는 선거권이 주어진다. 이런 경우는 국적과 상관없이 얼마나 오랫동안 스웨덴에 거주했느냐가 기준이 된다.
세계적으로 보수정권이 들어서고 있다. 경제가 많이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수정권이 경제에 나을 거라는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이번 선거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웨덴은 장기간에 걸쳐 좌파 정당인 SD(Socialdemokraterna)가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이번엔 우파 정권에게 정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스웨덴은 우리나라와 달리 대통령이 없고, 내각제로 운영되고 있다. 내각제가 어떻게 정부를 결정하는지는 우리나라와 상당히 다르다.
오랜 시간 정권을 잡았던 진보 정권의 시대가 저물고, 스웨덴도 세계적인 트렌드(?)에 따라 보수 정권이 장악한 정부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 일이 생기고, 많은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
한 예로 내가 아는 한 스웨덴 친구는 "현 정부가 나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현 정권에서 살아갈 희망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제가 어렵기도 하지만, 일반 스웨덴 사람들이 정권을 교체하고자 마음을 먹게 된 계기는 무슬림과의 갈등이 크다고 본다. 스웨덴 사람들 중에는 무슬림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얼마 전에 읽은 한 꼴통 보수의 신문에는 '무슬림과 스웨덴 사람은 물과 기름과 같아서 섞여서 동화될 수가 없다. 서구에는 무슬림을 위한 곳은 없다'라는 독자기고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꽤나 있는 것 같다. 또한 스웨덴 사람들 중에 말은 못 하지만 무슬림 사람들을 반갑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영어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무래도 어느 정도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인지라 이런 뉘앙스를 접하기 어렵다. 그러나 스웨덴 사람들과 스웨덴어로 이야기를 해보면 금방 알 수가 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렇기에 이민자가 그 국가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단순이 의사소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에 융화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요즘들어 무슬림과 스웨덴 사람들과의 갈등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기회가 되면 그 이야기를 꺼내서 스웨덴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오랜 시간 지켜온 스웨덴만의 가치가 무슬림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다칠 수 있도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어쩌면 심각할 수도 있다.
한 예로, 내가 스웨덴어를 배우고 있는 과정에는 나를 포함 아시아인이 2명이고, 기독교인인 아프리카인이 1명 그리고 나머지 3명은 무슬림이다.
어느날 다른 날과 별로 다를 점이 없었던 평범했던 수업시간이었다. 시리아에서 난민 자격으로 스웨덴에 거주 중인 한 나이 많은 남성이 수업시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이다. 남성은 일을 하고 경제적으로 가족을 부양하지만 여성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은 경제적으로 일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교육을 많이 받을 필요도 없다."라고 자신의 소신을 너무 당연하게 말한 것이다.
이를 들은 스웨덴 교사(40 정도의 스웨덴 남성)는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해 보였다. 그는 시리아 남성을 붙잡고 스웨덴은 성적 평등을 이룬 국가로 남성과 여성이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한 번도 이 점잖은 선생이 화를 이렇게 크게 낸 적을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내가 놀란 점은 이렇다. 스웨덴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말을 당당하게 꺼낼 수 있냐는 것이다. 나는 그 점이 더 놀라웠다. 그건 자신이 가진 신념을 바꿀 수 없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그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무슬림 전체의 문제라면 이 일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발전시켜온 국가를 몇십 년 전으로 후퇴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이 걱정에 현재 스웨덴 사람들이 가지는 무슬림과의 갈등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런 예를 보더라도, 스웨덴 사람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 수가 있다. 그들은 무슬림인 자체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웨덴에 동화되려하지 않으려는 무슬림의 관습과 가치를 걱정하는 것이다. 스웨덴이 발전시켜온 많은 가치들이 퇴보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보수 정권이 최대로 우선시하는 것은 이민자의 수를 줄이는 데 있다. 무슬림에 대한 혹은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심이 커진 이유는 그들이 지켜온 스웨덴적 가치를 이민자가 해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무슬림 이민자들은 너무 자신만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고집하고 스웨덴에 동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스웨덴 사람들이 1-2명의 자녀를 가질 때 무슬림 가족은 4-5명의 자녀를 가진다는 점도 고려해 볼만 성격이다. 지금은 무슬림 이민자들이 정치적 조직단체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그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강화시켜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특히, 스웨덴에서 무슬림적 가치를 주장하는 무슬림 정치 세력이 힘을 더해간다면, 스웨덴이 지켜오고 발전시킨 국가적 정체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스웨덴에서 살면서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는 상당히 어렵지만, 이번 선거 결과를 통해 그들이 어떤 걱정을 가지고 있는 지를 내심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민자를 배척하는 것을 최대 과제로 삼은 정당이 2번째로 많은 표를 가져간 것을 보고, 스웨덴 사람들과 이민자들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