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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Apr 26. 2023

출판 계약서 작성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많은 책도 아닌 총 4권을 출판했을 뿐인데, 그 중 절반에 해당하는 2건의 출판계약서에 문제가 생겼다. 1건은 저자인 나의 동의 없이 어이없이 전자책이 출간되어 한바탕 싸움을 벌였고, 나머지 한 건은 출판계약이 엎어져 서로 마음이 상할대로 상한 경우였다.

유명하지 않은 작가가 그것도 출판시장에 어떠한 영향력도 존재하지 않는 작가에게 보내온 출판계약서는 황송하기 짝이 없는 오퍼다. '이런 무명 작가에게 선뜻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라는 마음으로 출판계약서를 작성하다보니,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출판계약서를 꼼꼼히 쓸 걸...'이라고 후회하게 된다. 물론 문제가 터지고 나면, 초라한 계약서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혹은 출판계약에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도, 더 명백하게 선을 그어 놓았더라면 좋았을 법한 일들이 후에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각은 '계약은 그냥 서류상의 형식일 뿐이고 사람 좋게 그냥 악수하면 된다.'라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단순히 말해 을이 갑에게 세뇌당한 것과 같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 좋은 사람인 것만 같았던 출판사는 얼굴을 싹 바꾸고 만다. 나만 당하지 않으려면 나부터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해두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내가 당한 일들을 바탕으로 출판계약서를 작성하는 방법에 조금 조언을 주고자 한다.


1. 표준 출판계약서는 정말 아무 정보도 없는 초라한 계약서일 뿐이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표준 출판계약서를 들고 와서 사인을 하자고 제안하는데, 이 표준 계약서는 당신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해 주기엔 너무 터무니 없이 빈약하다는 것을 잘 알아야한다. 

정말 기본보다 못한 것 같은 표준 출판계약서가 왔다면 좋다. 그냥 표준에 더해서 이것저것 자신이 원하는 바를 꼼꼼히 보태어서 적어서 작성하면 된다.


2. 계약은 서로의 동의 하에 원하는 것을 적는 대화록이다.

계약서라고 하면, 왠지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사용하는 언어들이 상당히 건조하고 사무적이라 꼭 그 어법에 맞게 작성을 해야할 것 같지만 꼭 그럴 필요가 없다. 그냥 자신의 언어로 차분하게 원하는 바를 더해 작성하는 게 좋다. 계약서는 언어의 쉽고 어렵고를 떠나, 어떤 서로간에 어떤 동의가 있었느냐를 보여주는 자료라고 생각하면 쉽지 않을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꼼꼼히 생각해 보고, 그것을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계약서에 더하는 게 좋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혹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꼼꼼히 예상해 보고 하나하나 보태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이런 사항들이 출판계약서에 들어가 있으면 좋다. (인세와 같이 이미 표준계약서에 반영되어 있는 내용은 생략했음)

* 어떠한 경우에도 저작권은 저작자(작가 이름을 명기)에게 있음. 

* 원고 작성의 마감일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는 날).

* 원고 작성 후 편집에 글쓴이가 참여하고, 최종 동의를 얻어 출판할 것.

* 본 계약은 종이책 출판으로만 한정하며, 전자책 등 어떠한 다른 형태로써의 출판이 될 경우 저자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할 것.

* 출판사는 저자의 동의 없이 다른 이에게 어떠한 권리도 양도할 수 없음. (예, 해외 판권은 저작자에게 있음)

* 본 계약은 종이책에 대한 출판의 건에 해당하며, 이외 어떠한 형태로 변형되거나 재제작되거나 일부 이용되는 등 일체의 행위를 금함.  

* 출판물의 판촉에 필요한 광고 외에는 저작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음.

* 선입금은 000원으로 함. 지불은 2023년 0월 00일로 정함.

* 출판사의 판단으로 출판이 취소될 경우 저자는 선입금을 돌려줄 의무가 없음. 그러나 원고를 지정한 마감일에 출판사 측에 전달하지 않아 출판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선입금 전부를 돌려 줄 의무가 저자에게 있음.

* 출판물의 판매실적 보고는 매월 말(혹은 선택에 따라 분기별, 반기별, 혹은 년말 등 정하기 나름) 저자에게 따로 이메일로 할 것(의외로 보고 안해주는 출판사 많음)

* 인세는 실적보고 후 매월 말(혹은 선택에 따라 분기별, 반기별, 혹은 년말 등 정하기 나름) 저자에게 할 것.

* 원고를 제출 받은 출판사는 6개월 안에 출판할 것, 이 기간이 넘어가게 되면 저작자와 협의 하에 진행할 것.

* 최종 원고를 전달 받은 후에 출판이 어렵다고 최종 판단될 경우 이를 저작자에게 자세히 통보할 것.



3. 계약서의 글은 최대한 단순하고 짧게 하여 이중적으로 해석되거나 모호하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법적 지식이 없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고 솔직하게 작성하면 된다. 따라서 굳이 어려운 문구를 쓸 필요도 없다. 다만, 문장이 길어지면 해석이 이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주 짧고 간결하고 정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적는 것이 좋다. 


4. 저작권에 대해 어느 정도 법률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저작권은 의외로 저자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졌지만, 이상하게 이 저작권도 제대로 모르는 출판사가 많다. 특히 중소형 출판사의 경우 법적 인력을 고용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이런 경우가 심할 지도 모르겠다.

저작권을 잘 알고 있으면, 출판사에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기가 쉽다. 법에 그렇게 적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5. 저작권법에 의해 당현히 보호되는 권리라도, 계약서에 명확하게 다시 적는 것이 좋다.

관련 법률에 따르면 출판사는 저작권을 가지는 게 아니라 출판할 수 있는 출판권을 가진다. 그런데 상당수의 출판사가 출판계약을 하면 저작권이 출판사로 이속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표준계약서를 들고 법정에 가더라도 저작권을 찾을 가능성이 높지만,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다"라고 계약서에 명백히 적어 두는 것이 더 안전하다. 즉, 법에서 알아주는 당연한 권리라도 계약서에 명백히 적어두는 것은 법적 지식이 없는 출판사가 나중에 딴 말을 할 수 없도록, 혹은 나중에 딴짓을 하지 않도록 명백하게 해주자는 데 의미가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법에 무식한 출판사가 많다. 


6. 저작권에 분쟁이 생겨 법적 다툼으로 끌고 가기가 상당히 어렵다.

예를 들어 나같이 해외 거주자는 우선 접수부터 어렵다. 고소접수를 하려면 직접 경찰서를 찾아가야 하는데, 해외거주자가 이 때문에 직접 한국으로 들어가긴 어려운 일이다. 혹은 변호사를 고용하면 가능하다. 

여러모로 법적 분쟁이 생기면 고소를 통해 법정 다툼을 하기엔 무리가 많다. 책이 엄청나게 많이 팔린 경우가 아니라면 고소를 통해 얻게 되는 이익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을 사전에 예방하려면 내 손에 꼼꼼하게 적힌 계약서가 있는 것이 당연히 유리하다.


7. 한국저작권위원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작권에 문제가 생겨 법적 다툼 전에 보통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요청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쓸모가 별로 없다. 왜냐면, 전문가 자문이 구성 되지만 '저작권이 침해가 되었다 안되었다'에 대한 어떠한 전문적 견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거면 왜 전문가 집단이 구성이 되어 조정에 참여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이런 견해를 주지도 않고 출판사와 내가 같은 자리에 앉아서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 한국저작권위원회를 통해 분쟁이 조정되려면, 출판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바로 잡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경우일 뿐이다. 그렇지 않고 출판사가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기관에 불과하다. 


8. 책 판매처를 통해 저자는 직접 판매실적을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 참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책을 쓴 사람임에도 예스24와 같은 판매처에게 내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줄 수 없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즉, 출판사만이 이러한 정보에 접근이 가능하다. 문득 드는 생각 하나가 이렇다. 만약 출판사가 고의로 판매 부수를 나에게 낮춰서 말해줘도 나는 그것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마지막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출판이 진행되는 순간에 이렇게 계약서를 가지고 딱딱하게 구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우리네 정서가 왠지 계약서는 계약서이고 일은 좋게 좋게 하자는 그런 얼렁뚱땅식 사고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개의 출판사를 겪고 보니 차라리 처음부터 시간이 걸리더라도 딱딱하게 정확하게 짚고 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나중에 출판사에게 뒷통수를 맞지 않으려면 말이다.

다르게 생각해 보자. 출판사가 내 책을 출판하고자 한다면, 내 책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럼 내가 원하는 조건이 시간이 조금 걸리는 계약서 작성이라면 그것을 당연히 응하지 않겠는가? 그럴 의도도 없는 출판사라면 책을 출간할 자세도 없는 출판사이니 그냥 계약을 다른 곳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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