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맥스웰 쿳시, 추락 (Disgrace)
남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 데이비드 루리는 케이프타운 대학의 중년 교수로, 제자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면서 대학에서 쫓겨나게 된다. 자신에 대한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고, 사실 관계만 인정한다. 전형적인 고집불통의 사내다.
이후 그는 시골에 사는 딸 루시의 농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딸이 흑인 청년 세 명에게 성폭행을 당하는데, 그 현장에서 있었던 주인공 아버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 사건이 이후로 루시는 물론 아버지에게도 큰 상처가 생기고, 두 부녀 간의 관계는 갈등으로 치닫게 된다.
대충 이런 내용의 소설인데, 영문 원제는 [disgrace]이고 한국판 제목은 [추락]이다. 어떤 제목이 더 나은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는 것 같다. 추락이 조금 더 직접적인 제목인 것 같고, 불명예가 주인공 중년 남자의 상황을 더 시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도 같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고 책장을 덮었다. 200페이지가 약간 넘는 길다고는 할 수 없는 소설이지만, 그 무게감이 장난이 아니다. 읽다가 정신병에 걸리는 줄 알았다. 읽는 내내 답답했고, 나오는 주요 캐릭터들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성폭행을 당한 딸이 임신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도 모자라 옆집에 사는 기혼의 흑인 남성과 결혼해서 보호를 받겠다는 씬이 나오는 순간, 나의 답답함은 큰 고구마 하나가 목에 제대로 걸려버린 느낌이었다. 당장 소설 속으로 들어가 딸의 머리를 질질 끌고 뺨을 몇 차례 후려쳐서라도 '야, 정신 차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처럼 소설은 나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더니, 결국은 아주 깊어서 끝이 보이지도 않는 나락으로 떨어뜨리고야 말았다. 정신적으로 자학하고 싶은가? 그럼 이 책을 읽으라.
우울한 소설이야 많다. 예를 들어, 스토너도 꽤나 우울하지만, 동시에 아름답고 경건하고 가슴이 따듯해지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냥 우울하다. 그것도 빠져나올 구석이 없는 곳으로 내몰린 것만 같은 느낌이다. 우울에도 온도의 차이가 있고 색감의 차이가 있다. 이 책은 그냥 회색빛에 시종일관 서늘한 그런 우울한 책이다. 배경은 남아프리카지만, 느낌은 어디 히말라야 산꼭대기에 와 있는 것만 같다. 작가는 그냥 상처를 냅다 후벼 파기만 한다. 그걸 다시 호호 불어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작가가 사이코패스인가?
책을 덮고 생각했다. 뭐 이런 책이 다 있나? 정말 마음에 들지 않은 내용이었다. 물론 포스트아파르트헤이트를 겪은 남아공이 백인 중심 사회에서 흑인 중심 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을 한 백인 남성의 추락을 통해서 그리고 있다고 하지만, 딸 루시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지 않았는가? 자신의 농장을 버리고 떠날 수 있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이에 대한 질문은 책을 덮어도 계속 맴돈다. 현상을 바뀌지 못하는 현실을 그린 것일까? 백인 주도 하에서 살았던 흑인의 모습을 한번 바꿔서 생각해 보라는 뜻일까? 나는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겠다.
그런데 다들 이 책이 훌륭하다고 한다. 다들 정신적으로 자학을 즐기는 자들인가? 나처럼 우울한 사람이 읽어도 우울했는데 말이다. 물론, 책은 우리를 아주 불편하게 만들어서 끈적한 생각의 거리를 던져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독특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고, 사회적 문제를 곱씹어 보게 만드는 힘은 있다.
책을 덮고도 상당히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럼 나는 이 책을 추천할 것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아주 답답하고 자학적이고 불편으로 가득한 소설이니, 그걸 감안해서 읽길 권한다.
우리에게 '닐스의 신기한 모험'으로 기억되는 셀마 라겔뢰프의 숨겨진 명작, <포르투갈 황제>가 국내 최초로 완역되어 나왔습니다. 스웨덴의 국민 소설! 아주 아름다우며, 동시에 아주 슬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