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현 Mar 28. 2019

따뜻한 우리 엄마 같아

그 다고바 앞에서

따뜻한 엄마 품이 이런 걸까?

스리랑카의 거대한 다고바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이다. 


아누라다푸라의 루완발리 다고바


스리랑카 방문을 계획하는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곤 한다.

"어디가 가장 좋아요?"

보통 인도를 여행 가는 김에 혹은 몰디브를 여행 가기 전에 잠깐 곁들여 들리는 곳이 스리랑카이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에 대한 많은 정보도 없고,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많은 비중을 두고 스리랑카를 여행하지는 않는 것 같다. 대부분이 그냥 2-3일 정도를 스리랑카에 머문다.

그렇기에 그들은 대부분 바다로, 혹은 차밭을 선택하고 이 다고바를 보러 가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기에 이 다고바를 꼭 보러 가라고 말하진 못한다. 멀기도 하기에 굳이 이 다고바 하나만 보러 아누라다푸라라는 곳을 가긴 짧은 여행기간 동안은 무리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나중에 스리랑카를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그것도 조금 넉넉한 시간을 계획하고 있다면, 루완발리 다고바를 찾아보길 권한다.

그리고 그 앞에서 조금의 시간을 가지길 권한다.

루완발리 다고바


이 다고바 앞에 서면,

이 다고바 앞에 서면, 의외로 많은 생각들을 버리게 된다. 신기하게도 많은 생각들을 하는 게 아니라, 많은 생각들을 버리게 만든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다고바를 좋아한다. 나는 너무 쓸데없이 많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다고바가 지어질 당시 전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힐 정도로 큰 규모였으니, 지금 봐도 크긴 크다. 

내 시야를 가득 채우는 느낌, 그 속에는 흰색의 거대한 다고바와 그날의 푸른 하늘만 겨우 담겨 있다. 그리고 다른 존재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시선에는 얼마나 많은 정보들, 얼마나 쓸데없는 풍경들이 비치는가? 그에 비해, 이 다고바의 거대함은 내 시선을 쫒던 많은 잡념들을 순식간에 쫓아내고 만다.


그 다고바 앞에선,

내가 불교를 믿는 신자이던 아니던 상관이 없다.

내가 믿음을 가진 사람이던 아니던 상관이 없다.

그저 나는 거대한 객체 앞에 선 객체일 뿐이다. 가끔 이렇게 생각 없는 물체가 되어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를 안아주는 순간

오리지 이 순간의 찰나를 공간은 담아내고 있었다. 그건 뭐랄까? 정말 따뜻한 느낌이었다. 누군가 나를 안아주는 그런 느낌. 마치 어릴 적 나의 엄마가 나를 안아주던 그 포근함이 느껴졌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할 수 있었던 시절, 엄마의 품 안에서 세상을 비껴갈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었던 그 충격에서 말이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다고바 앞에서 말이다. 


종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신의 존재를 느낄 것이다. 저 거대한 다고바는 신의 영역을 표현하고 인간을 사소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신의 영역이란 작고 힘없는 인간이 언제나 올려다봐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크기에서 전해오는 강렬한 대비는 종교적 관점에서 그렇게 의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없는 입장에서 그 다고바를 바라보면, 시각의 단순화의 극대화를 느낄 뿐이다. 마치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눈을 감고 있는 것만 같은 편안함이 전해져 온다. 밝은 곳에서 눈을 감은 듯한 느낌이다. 


루완발리 다고바, 그 앞에서 나는 몇 시간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스리랑카를 찾을 일이 있다면, 이 다고바를 찾을 것이다. 먼 길이지만, 솔직히 이 다고바 밖에 볼곳이 없는 작은 타운이지만 말이다. 먼 곳을 찾아 그 포근함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블루워터 호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