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어담기 May 09. 2022

8년 전 외노자의 첫 번째 기록

기대를 품고 시작한 워킹홀리데이 경험기


2014년 6월부터 12월 31일까지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기억으로만 흐려지기 전에 기록해보는 도전 시작!




먼저 8년 전의 나는 영어와 여행 관련된 전공을 공부했고, 그로 인해 짧은 듯 길었던 7주의 어학연수를 시작으로 해외에 대한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아마 이 시기에 워홀이 한참 붐이었던 시기였고, 덩달아 나도 마음 한편에 담아둔 버킷리스트 중 하나도 '워킹홀리데이'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희망만 존재할 뿐 그 이상으로 노력해서 가겠다는 각오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지인 언니가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로 떠난다는 말에 부럽다는 동시에 뭔가 머리가 띠용 하면서 동시에 나도 가야겠단 결심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인 언니가 떠나기 전부터 떠난 다음까지도 많은 정보들을 접하게 되면서 그 정보에 따라 나도 수월하게 준비를 차근차근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 언니와 그때 그 시절 얘기를 하곤 한다. 같이 간 건 아니었지만 같은 나라에서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많은 것들이 공감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시작된 나의 버킷리스트!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무지 설레고, 두근거리고 실감 안 나는 그런 형용사들로 내 머릿속은 가득 찼다. 뉴질랜드를 가기 위해 1년을 휴학하고, 가기 전 6개월 정도는 약 2달치 정착비용을 벌었다. 아르바이트도 이 때는 두 개였나? 20대 초반에 나는 나를 위해 하고 싶은 건 모든지 해보고 싶었다. 그런대로 20대를 부지런히 보내느라 후회가 크진 않다. 지금은 돈을 모으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 당시에는 돈을 못 쓰면서까지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을 기쁘게 참을 수 있는 정도로 가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그러고 나서 새벽부터 일어나 긴장감 넘치는 워홀 비자 신청을 하고 나서, 손수 모은 생활비와 부모님께서 항공비를 내주시고, 여럿 친척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든든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드디어 떠나게 되던 당일, 실감은 안 나는데 2주 전부터 짐 꾸린 캐리어를 들고 가자니..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부터 작게 조금씩 외로움이 이때부터 찾아온 것 같다. 나름대로 혼자 이것저것 해보고, 어학연수도 가봤으니 이 정도면 독립적이지 않나 라는 생각과 가족과 멀리 떨어져 지내도 괜찮을 거라고 90% 확신했는데? 이미 나고 있는 차 안에서 갑자기 겁이 나버리면 어쩌겠나 싶다마는.


사실은 2주 전부터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살짝씩 겁이 나긴 시작했다. 내가 한국에 없는 동안 어떨지, 혹여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여러 가지 걱정들에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겨있었다. 지만 가야 한다는 현실에 정신 차리자 하며 정신 차린 출국하는 날이 돼서야 기대와 함께 갑자기 밀려온 막막함. 그래서 가족들과 헤어질 때가 다가오면서 눈물이 계속 맺히고, 결국엔 출국장 들어서는 순간 참던 눈물을 터뜨리면서 헤어졌던 것 같다. 직항으로 간 덕분에 번거로움은 없었지만 한 공간에 13시간 동안 갇혀있느라 긴 시간을 잠과 슬픔을 반복했다. 그리고 입국과 동시에 비가 내리고 있던 오클랜드, 한국과 계절이 반대인 탓에 가을과 겨울 그 사이의 쌀쌀함으로 쓸쓸함은 진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공항에서 내가 머무를 백패커를 가기 위해 다시 내 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미리 숙지해두었던 구글맵을 통한 내 숙소 위치와 현지 교통정보 등등.. 의외로 한국에서는 덜렁대더라도 타지에서의 나는 생각보다 철저하고 계획적이다. 심지어 국내든 국외든 떠나게 된다면 현재를 고려한 현지 정보를 다 탐색하고 PPT로 계획서를 만들 만큼 계획적이고 틈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쌓인 내 계획서만 십여 장이 넘는 듯하다. (여기까지 내 근거 있는 자신감!)


쨋든 내가 살 곳을 정했지만 입주 날이  일주일 뒤여서 일주일 동안 숙소 근처 백패커에서 지내기로 했고, 나는 그 백패커를 향해 길을 헤매지 않 도착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백패커는 경사가 논현 고개 그 이상으로 가파랐다. 캐리어 들고 올라간 나 칭찬해..

이만큼의 경사진 거리를 두 캐리어를 끌고 올라왔다. 이런 날을 위해서였던가, 내가 깡이라도 있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체력을 길러온 덕분에 그리 힘들진 않았다. 아주 조금 많이 힘들 정도ㅎㅎ 그렇게 백패커 체크인을 하고 나는 정말 뉴질랜드를 도착했다.


오클랜드에 지인은 원래 없기도 해서 백패커에서 혼자 머물다가 숙소로 얼른 옮겨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키친에서 만난 한국인 언니, 같은 숙소를 머무른 홍콩인 친구 2명, 백패커를 드나들면서 친해진 스페인 친구 한 명을 사귀게 되었다. 낯가림이 아주 살짝 있던 나지만 알게 된 분들이 좋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금세 친해져서 백패커를 머문 날 동안부터 워킹홀리데이 끝나는 시점까지도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많은 도움과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다. 현재는 여기서 스페인 친구 빼고 소셜을 통해 근황을 서로 공유하면서 유지 중이다. 한국인 언니는 뉴질랜드에 정착해 살고 있는데 근황 볼 때마다 부럽다..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쓰고 있는 지금도!


기대가 컸던 준비기간, 하지만 출발할 때의 긴장감과 슬픔으로 그때의 나는 혼자 더 외로움을 느끼면서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연락할 날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느리게 가느라 디데이 계산기를 켜서 D-2xx를 바라보며 막막했었지만, 백패커에 지내면서 알게 된 인연들과 시티 내/외 구경도 하고, 야시장도 선데이 마켓도, 여기서 먹어본 피시 앤 칩스는 맛있다는 것도(정작 영국은 안 가봐서 오리지널은 몰라요.) 알게 되면서 시간은 느리지 않게 제 템포에 맞춰 여러 경험들이 기록되었다.


두 번째 편도 커밍 쑨!


매거진의 이전글 그때의 나는 울보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