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의 22가지 스토리규칙
#9
When you’re stuck, make a list of what WOULDN’T happen next.
Lots of times the material to get you unstuck will show up.
스토리를 쓰다가 막히면 다음 장면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사건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라.
그렇게 하면 막힌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생길 것이다.
출처: https://x.com/lawnrocket/status/52776920970051584?s=20
아홉 번째 규칙은 작가들의 영원한 숙적,
Writer's Block 작가의 벽을 다룬다.
신나게 글을 써 내려가다가
갑자기 턱 하니 막히는 순간이 온다.
주인공이 이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해야 할지,
아니면 이 지루한 대화를 어떻게 끝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하얀 모니터 속 깜빡이는 커서만
멍하니 바라보며 괴로워한다.
"도대체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지?"
정답을 찾으려는 강박이 뇌를 더 마비시킨다.
이때 픽사는 아주 엉뚱한 처방을 내린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고민하지 말고,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 무엇인지 적어라.
예를 들어,
진지한 로맨스물을 쓰고 있다고 치자.
두 남녀가 이별하는 심각한 장면에서 막혔다.
그렇다면 '일어날 리 없는 일'을 적어보는 것이다.
갑자기 외계인이 침공해 둘을 납치한다.
남자가 갑자기 탭댄스를 추며 노래를 부른다.
땅이 꺼져서 둘 다 지하세계로 떨어진다.
여자가 갑자기 선녀옷을 입고 하늘로 날아간다.
갑자기 유퀴즈 촬영팀과 유재석이 나타난다.
두쫀쿠 팝업스토어가 열리고 사람들이 두 사람 사이로 줄을 서기 시작한다.
코끼리가 우리에서 탈출해 두 사람에게 돌진한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오답들을 적다 보면,
굳어있던 뇌가 말랑해진다.
킥킥거리며 엉뚱한 상상을 하는 동안,
잔뜩 힘이 들어갔던 어깨의 긴장이 풀린다.
이 방법이 훌륭한 또 하나의 이유는
클리셰 (Cliché 진부함)를 걸러낼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막히는 이유는 대부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일어날 리 없는 일의 리스트에는 아주 엉뚱한 것도 있겠지만,
너무 뻔해서 작가인 내가 절대 쓰고 싶지 않은 전개도 포함된다.
오해해서 따귀를 때리고 헤어진다. (너무 흔하다)
갑자기 불치병임이 밝혀진다. (너무 작위적이다)
한 명이 나가고 남은 한 명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너무 예상한 장면이다)
물론 이런 장면들도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이 클라이맥스로서 독자들의 기억 속에 남기 위해선,
뻔한 이야기는 독이 된다.
이렇게 쓰지 않을 리스트를 지워나가다 보면,
남는 것은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길뿐이다.
역설적이게도 절대 가지 않을 길을 확인해야,
가야 할 길이 선명해지는 것이다.
아직 이 방법을 실전에 제대로 써먹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완벽해 보인다.
나에겐 하라고 하면 하기 싫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가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디자인이나 그림작업을 할 때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색을 선택할 때,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색상들은
무의식 중에 먼저 소거법으로 걸러낸다.
글쓰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다만 그걸 머릿속으로만 하지 않고
직접 글로 써본다는 점이 다를 뿐.
그러니 앞으로 글이 막히면 모니터를 노려보는 대신,
노트에 엉뚱한 소리를 잔뜩 늘어놓을 생각이다.
무조건 반대로 생각하기.
정답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오답부터 치워버리기.
그것이 꽉 막힌 도로를 뚫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테니까.
막혔을 땐,
오답부터 적자.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이 되어줄 거라고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