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자락부터 막 봄이 시작되는 2월과 3월, 회사를 휴직하고 동생과 제주도에서 한 달을 보냈다.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 일로 빼곡하게 채웠던 일상을 멈추고, 도보 5분이면 바다에 닿을 수 있는 곳에서 생활한 덕분일까. 일상에 틈이 생길 때면 고마운 사람들이 자주 생각났다. 그럴 때면 제주 한 달 살기를 마치고 이들과 육지에서 만날 날을 생각하며 작고 귀여운 기념품을 사두었다. 한 달 살기를 마칠 즘에는 하나둘 사둔 기념품이 너무 많아져 캐리어에 담을 수 없는 수준이 돼서 택배로 보내야 했다.
돌아와 세어 보니 10명이 훌쩍 넘는 친구와 동료를 위한 기념품을 사 왔고, 모두 직장인이라 빠르게 약속을 잡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먹거리는 유통기한이 넉넉한 과자와 티 종류, 작고 귀여운 물건은 엽서와 스티커, 배지(badge), 책갈피 같은 순전히 내 취향의 물건으로 사 왔다. 오메기떡이나 귤 같은 것은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분명 이미 받아봤을 테니 이게 더 좋다고 생각하면서.
제주의 넘치는 기념품 상점 속 특별한 소품 가게들
키리코는 제주시 한림읍에 위치한 소품 가게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사장님(작가님)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상품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것이다. 제주도에는 귀여운 문구와 소품,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많지만 가게 대부분은 여러 업체와 작가의 물건을 구입해 와 판매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키리코의 이런 점은 특별하고, 귀여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행길에 방문해볼 만하다.
나의 경우, 한 달 살기 숙소에서 도보로도 이동이 가능하고 근처에 '다람쥐 식탁'이라는 유명한 밥집이 있기도 해서 키리코에 여러 번 방문했다.
사장님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상품을 제작하는 소품 가게가 키리코 한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제주시 한림읍에 위치한 '가르송티미드'고, 엽서, 스티커, 그립톡, 티셔츠까지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판매한다. 가르송티미드의 매력은 제주의 한라산, 돌하르방 등을 이곳만의 느낌을 담아 캐릭터로 표현하기 때문에 제주 여행 기념품으로 사기에 특히 알맞다. 매장 앞에 귀여운 포토존이 있고, 협재해수욕장과 가까운 것도 장점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제주시 동문시장 청년몰에 위치한 '찰랑'이고, 사장님에게 직접 여쭌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사장님이(혹은 함께 활동하는 작가님 소수가) 직접 촬영하거나 그린 그림으로 엽서, 스티커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드는 듯하다. 특히 엽서 종류가 귀엽고 예쁜데, 이미 다른 소품 가게를 돌며 여러 장의 엽서를 사둔 탓에 딱 두 장만 골라왔다.
동문시장에 방문했지만 먹거리 말고 남들과 조금 다른 기념품을 사고 싶을 때 들르기 좋은 곳이다.
찰랑은 한 달 살기를 마치고 시간이 지나 다시 제주에 갔을 때, 혼자서 들렀고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구경하고 계산하느라 사진이 딱 두 장뿐이다.
제주를 담아 보냅니다.
'제주도에 다녀오면서 무슨 기념품을 그렇게 많이 챙겨?'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태어나 처음 하는 한 달 살기였고, 주변에도 한 달 살기를 경험한 사람이 없었다. 또 모든 것을 멈추고 쉼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져서 휴식하며 얻은 에너지, 제주 곳곳의 아름다움을 담아 주변과 나누고 싶었다.
한 달이 지나고 육지의 집으로 돌아와 택배를 풀었다. 각자에게 줄 선물을 나누었는데, 사 온 기념품 대부분이 크기와 부피가 작다 보니(스티커, 배지 등은 진짜 작다.) 기념품 구입에 들인 돈과 시간, 담고 싶은 마음에 비해 너무 작고 적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육지로 돌아왔으니 비상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포장에 조금의 공을 들여 귀여움을 더하고 마음을 꾹꾹 눌러 담기로 했다. 포장마다 제주에서 사 온 스티커를 붙이고, '제주를 담아'라는 말을 자주 썼다.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제주 곳곳의 아름다움, 내가 제주에서 느꼈던 좋은 감정과 에너지를 진짜로 눌러 담아 전하고 싶어서 그랬다.
사실 받는 사람 입장에선 간식 몇 개와 미소가 지어지는 작은 물건 몇 개일 뿐인데, 친구와 동료들에게 마음이 잘 닿았는지 다들 재미있어하고 많이 웃어서 좋았다.
육지에서 소중한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육지의 친구와 동료를 생각하며 제주에서 사 온 기념품도 있지만 제주에서 만날 사람들을 생각하며 육지에서부터 준비해 간 선물도 있고, 한 달 살기 중 인연이 된 사람들을 생각하며 구입한 선물도 있다.
성인이 되고 대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시간이 드물었는데, 이번에 제주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처음 만난 사람과 며칠을 함께 지내며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등 재미있고 색다른 시간을 보냈다.
이 중 어떤 인연은 앞으로 몇 번 더 얼굴을 보고 반갑게 인사 나눌 수 있을 테고, 어떤 인연은 어쩌면 지난 시간을 끝으로 더 이어지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헤어짐이 곧 영영 헤어지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함께하는 시간 동안 좋았으니, 짧은 편지와 함께 작은 선물로 마음을 전하고 올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친구와 동료에게 줄 선물만 사 온 것은 아니고, 내가 사용할 스티커, 배지, 파우치, 엽서 등 귀여운 기념품도 사 왔다. 육지의 일상에서 이 물건들을 보고 사용할 때면 제주에서의 좋은 기분과 기억이 떠올라 금방 웃는 얼굴이 된다. 사 오길 너무 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