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라 Sep 07. 2021

인스타그램을 끊고 얻은 것

3개월의 시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을 하면 할수록 내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인스타그램을 끊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앞글에)

스마트폰을 켤 때마다 습관처럼 오른쪽 검지 손가락이 먼저 반응해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하루에도 수백 번씩 열었던 인스타그램. 의식적으로 인스타그램을 멀리 할 때는 몰랐는데, 인스타그램 세계를 떠났던 3개월의 시간을 돌아보니 무시할 수 없는 변화가 있었다. 




1. 쇼핑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이라는 게 여간 똑똑한 게 아니라서 어느 브랜드의 웹사이트만 잠깐 들어갔다 나오기만 해도 그 브랜드의 광고는 물론이고, 그 브랜드와 스타일이 비슷한 쇼핑몰을 줄줄줄 보여준다. 마케터라고 하면서도 마케팅의 노예인 나는 나도 모르게 평소 눈여겨보지 않던 제품들도 그 종류를 막론하고 사재 끼기 바빴다. 옷, 신발, 액세서리, 책, 학용품, 엽서, 그림, 식재료, 전자기기 등등 카테고리에 제한이 없었다. 

또 인스타그램에서 핫하다는 인플루언서들이 들고, 메고, 먹는 것들은 뭐가 그렇게 다 있어 보이고 좋아 보이는지 관심도 없던 그릭 요구르트 브랜드까지 알게 되어 마켓컬리 재입고 알람까지 설정해놓고 사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딱 봐도 내 피부 타입에는 맞지도 않을 화장품을 그냥 '있어 보여서' 고민도 없이 사둔 게 수두룩했다. 몇 년을 그렇게 지냈는데 인스타그램을 딱 끊고 나니 불필요한 소비가 확실히 줄었다. 


게다가 이 시국에 집에 머무는 시간까지 많아지니 내가 얼마나 쓸모없는 것들을 많이 이고 지고 살았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정리와 비워내는 것에 관심이 생겼다. 관상용으로 쌓아뒀던 두 번 다시 읽지 않을 책들은 알라딘 중고책 판매로 몇 번에 걸쳐서 처분했고 눈팅으로만 즐기던 당근마켓을 본격적으로 애용하게 되었다. 덕분에 확실히 짐이 많이 줄어 책장 하나를 아예 비워 낼 수 있었고, 짐으로 가득 찼던 베란다도 정리가 되었다. 사는 것보다 비워내는 게 더 재미있다는 걸 배우는 중이다.


2. 난생처음 덕질을 시작했다.

31살에 처음으로 아이돌 덕질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글로 쓰고 싶을 만큼 재미있고, 요즘 내 일상에 아주 소소하지만 분명한 행복을 주고 있다. 


인스타그램만 쳐다보고 살던 시절에는 인스타그램 속 트렌드를 쫓아가기도 버거워서 내가 주체적으로 취향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사람들이 다 하는 거, 좋아 보이는 거를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 굴레를 스스로 벗어던지고 나오니 생각보다 내 취향을 주체적으로 찾을 수 있는 방법과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접해보지 않았던 콘텐츠들을 접하다 보니... "어머, 나 아이돌 좋아했잖아?"


전에는 진짜 이해가 안 됐다. 아이돌이든 누구든 특정 연예인을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그 행위 자체가. 내가 아무리 좋아한다고 부르짖고 매일 밤 그 생각에 잠못든다고 한들 그는 나의 존재도 모를 텐데 그런 행위가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했던 과거의 나 반성한다. 정말. 깊이.



내가 덕질에 빠지게 된 아이돌은 그 이름도 찬란하고 아름다운 BTS. 난 사실 그들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해도 이름이 그게 뭐야~했던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단 한 번도 그들의 무대나 영상을 본 적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BTS 유 퀴즈 편을 보고 그때서야 처음으로 멤버들의 이름과 얼굴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한옥 한편에서 속삭이듯 차분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들이 궁금해졌고 그렇게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다가 이름하야 늦덕 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나. 아이돌 팬덤의 세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넓고 깊고 다양했다. 팬들과 아티스트를 위한 서비스도 정말 많았고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몰리는 시장이 존재했다. 전혀 몰랐던 세계가 펼쳐졌고 그렇게 나의 세계관이 하나 확장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매일 새롭다. 



3. 나를 지켜봐 주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요즘 무슨 일 있니? 인스타그램으로 소식 잘 보고 있었는데 요즘 뜸한 것 같아."


인스타그램을 끊고 나서 생각지 못한 사람들에게 따로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회사를 같이 다녔던 사람,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사람, 강아지 덕에 이어졌던 인연들... 정말 의외인 사람이 연락을 주기도 해서 오히려 내가 미안했던 적도 있다. 그래도 인스타그램 덕에 서로 말하지 않아도 연결되어 있던 인연들이 있긴 했구나 싶다. 


물론 뭐,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매번 인스타그램에 뭔가를 올릴 때마다 좋아요와 각종 응원의 메시지, 너무 예뻐요! 한번 만나자! 를 남발하면서도 단 한 번도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으로 성사되지 않는 인연들. 인스타그램에서 보이지 않으면 사실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하지도 않을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이 더 많겠지.


그래서 일부러 따로 연락을 준 사람들이 더 진하게 남았다. 


4. 돌아온 자존감

인스타그램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늘 뭔가 나 스스로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도 딱히 부족할 게 없는 사람이다. 가끔은 타인이 나에게 부럽다, 대단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고! 그런데 인스타그램 속에는 잘나도 너~무 잘난 사람들이 많았다. 반려견 상수를 잃고 스스로 동굴을 파고 있던 나에게 그런 인스타그램은 독이었다. 


인스타그램을 지우고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 순간순간 집중하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다른 사람을 만나서도 습관처럼 꺼내 보던 인스타그램이 없으니 대화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그만큼 시간이 묵직하게 채워졌다. 또 그 사이 남편이 사업을 오픈하면서 내가 도와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거기에 몰두해서 하나하나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니 매일이 뿌듯함의 연속이었다. 

또, 이 시기에 브런치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고 간간히 브이로그도 찍으면서 더 생산적인 활동도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시간이 3개월 정도 지속되니 확실히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다. 약간 과잉인가 싶을 정도로!


반면에 인스타그램을 끊어내면서 마케터로서의 트렌드를 놓치면 어쩌나 걱정했던 건 기우에 불과했다. 이미 나는 각종 뉴스레터와 마케터를 위한 각종 커뮤니티, 책, 유튜브를 통해서 충분히 정보를 얻고 있었다. 오히려 인스타그램 밖의 세상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면서 그동안 너무 편협한 생각을 했던 거구나 싶을 때도 있었다. 




지금의 나는 다시 인스타그램을 한다. 

다시 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이제는 내가 인스타그램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으니까.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지 않고 일거수일투족을 올리지도 않는다. 여유 시간이 있거나, 특정 누군가가 궁금할 때, 내가 꼭 기록해서 남겨두고 싶은 것들이 있을 때 주로 들어간다.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기니 이제는 더 이상 인스타그램에 이용당하지 않고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며 지내고 있다. 


누군가 요즘 우울하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을 할 때 나는 두말없이 '일단 인스타그램 끊어봐'라고 한다. 확실한 효과가 있을 거다. 분명히. 


몸에 쌓인 독소를 빼내기 위해 일부러 음식을 줄이는 디톡스를 하는 것처럼 

마음과 정신에 쌓인 독소를 빼내기 위해서는 가장 많이 쳐다보고 있던 디지털 디톡스도 가끔은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스타그램 없이 살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