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한동안 글 쓰는 게 너무 어려웠다.
주변 상황들과 마음이 늘 너무 복잡하고 모든 게 정리되지 않은 채로 혼돈 속에 있는 시간이 예상이라는 걸 할 것도 없이 시작되었고 길어졌다.
33살에 9년 차 한길만 파온 직장인.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사람으로도, 직업인으로도 안정적인 어른으로 잘 자리 잡고 있을 거라고 어렴풋이 기대했것만. 글을 쓰지 않았던 그 사이에 나는 새 회사로 옮겨서 벌써 1년의 시간을 보냈고 모두가 얼어붙었다고 동굴 속으로 들어간 스타트업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 (중심인지는 사실 모르겠으나, 내 세상은 내 위주니 내가 중심인 거니까.)
1년의 시간 동안 마케터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온라인 프로모션 기획, 퍼포먼스 광고, SNS 콘텐츠 기획, 인플루언서 마케팅, 오프라인 팝업 행사 등등 정말 할 수 이는 모든 걸 했고 우리 서비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때쯤 욕심을 부려서 업무범위를 마케팅에서 비즈니스 영역으로까지 확장했다. 회사의 런웨이라는 것을 계산하고 더 이상 몸집 늘리기만으로는 안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으면서 수익과 성장을 함께 만들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논의하고, 실행하고, 엎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일을 무한히 반복하고 있다. 그 사이에 물론 채용과 사람으로 인한 다양한 이슈와 스트레스를 함께 주고받아가면서.
그렇게 5년 같은 1년이 흘렀는데 문득 모니터에서 눈을 돌려보니 역삼동에서 일하는 '세라'가 한 것들만 가득했다. 역삼동 밖 '슬아'는 텅 빈 채로. 왜 이렇게 비었을까를 생각해 보니 기록이 없었다. 바쁜 와중에도 내가 무엇을 느꼈고, 어떤 것을 배웠는지, 언제 기뻤고 언제 슬펐는지, 내가 듣고 싶은 말은 혹은 진심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고 있는 곳이 없었다. 그 기록이 없으니 슬아가 흐릿해졌다. 그걸 몰랐으니 뭘 쓰고 싶은지도 몰라서 글 쓰는 게 어려웠던 것 같다.
며칠 전 막내 팀원과 나눴던 이야기가 유독 기억에 남아서 여기저기 하고 다니고 있는 말이 있다.
"33살 먹고도, 계속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하게 될 줄 몰랐어요."
"하고 싶은 걸 하세요!"
"하고 싶은 걸 어떻게 알아요?"
"누군가 뭔가를 했는데, 그게 막 배 아프고 질투 날 때.
그게 원래 자기가 하고 싶은 데 못하고 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
댕.
딩동댕.
정답이었다.
난 늘 누군가가 뭔가를 사고 어딜 가고 하는 것보다 자기가 했던 일을 어떤 형태로든 기록해서 세상에 내놓을 때 괜히 '치, 저건 나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뭐 대단한 거라고!' 하면서 무심한 척했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거였으면서.
혼란했던 마음들이 이제 좀 길을 잡아가는 것 같다.
책 속에 길이 있고,
내 글 속에는 방향이 있다.
다시 글을 써야지.
아,
내가 글을 못 쓰고 있던 사이에 브런치는 브런치 스토리가 되었다. 음, 괜히 불안하다.
브런치가 브런치답게 그대로 있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