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너였구나!

그녀에게 ‘루저’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이들 나이가 같아 친해진 가족이 있다. 부모의 개인 성향과 상관없이 영유아 시절엔 종종 아이를 따라 부모를 만난다. 그 인연이 이어져 친해지기도 하고, 때론 어긋나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번에 알게 된 지인들은 부모들 간에 배려, 이해, 적절한 선을 유지할 수 있는 성품 능력자들이다. 온 가족이 모여 아이들과 함께 놀고, 부모들도 함께 이야기꽃을 피운다. 겉의 모습으로는 평범하고 편안한 대화를 오가며 시간을 잘 보낸 것 같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정리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되니 스멀스멀 되씹기 시작한다.

'나는 분명 그런 사람이 아닌데. 왜 그들의 말에 맞춰 연기하듯 행동했을까'

'웃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렇게 웃어 줬을까?'


참담하기라도 한 듯 스스로 내면 밑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결국 이렇게 중얼거린다.

"늘 누군가에게 이렇게 맞추려고만 하는지… 답답하다. 나 루저구나..!"


순간, 그녀의 생각을 끌어내리고 움츠리게 만든 무의식의 소리를 구체적으로 직면한다.


"아! 너였구나!"


-나는 가치 없어

-넌 젊어서 왜 더 준비하고 나아가지 못했니? 그러니까 네가 실패한 거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스럽다는 말을 믿으면 안 돼! 사회는 그렇게 따뜻한 곳이 아니야!

-네가 더 많은 지식이 있었다면, 너의 자녀들은 아마 더 많이 성장했겠지.

-네가 더 했어야지!


세상 누구도 ‘루저’(불충족하는 사회적 낙인)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연약함과 어리석음, 어설픈 관계들에도 불구하고 ‘루저’라는 단어만큼은 자신과 닿지 않기를 바라는 무의식의 경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녀 안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이 목소리는 습관처럼 자신을 위축시킨다.

그 경계선 위에서 그녀는 감사로 덮어도 보고, 긍정의 주문으로 눌러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녀의 웃음은 웃음이 아니었고, 우울감만 깊어져갔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회피하듯 숨지 않고 ‘루저’의 모습을 펼쳐보기로 한다.

'왜 스스로 가치 없다고 하니?'

'무엇 때문에 자꾸 실패했다고 믿는 거야?'

'네가 정말 완벽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그리고 사람이 완벽할 수 있을까?'





그러자 다른 말들이 마음속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네가 다 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정말 괜찮아!"


그녀는 ‘사랑을 받을 줄 모르는 루저’가 나를 파괴하려는 적이 아니라, 보듬어야 할 연약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루저’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게 되었고,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의 행복이 늘 한결같지 않다. 가끔 ‘루저’가 찾아와 우울감을 가져다준다 해도 이제 그녀는 웃으며 인사를 건넬 수 있다.


“내 안에 루저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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