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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기 May 05. 2022

세번째 수업과 어리굴젓

4월 넷째주

20 | wed

재택 근무하는 김에 내 사무실에서 놀고 가던 친구들도 모두 정상 출근하기 시작했다. 점점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나 혼자 시끌시끌한 일상이 사라진 느낌이 든다. 혼자 일을 하는 날은 의자에서 5번도 안 일어난다. 수업을 핑계 삼아 카페로 출근했다. 좋아하는 라떼를 마시며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니 비로소 편안한 느낌이 든다. 모르는 이들과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일할 기분이 난다. 이번 수업도 벌써 세 번째 시간이다. 이름은 여전히 못 외웠지만, 얼굴이 반가운 걸 보니 익숙해진 모양이다. 수업은 늦은 9시에 끝난다. 자기 전에 속이 불편할까 저녁을 건너뛰려 했는데 엄마가 잔뜩 사다 놓은 젓갈들이 밟힌다.


이번에 사 온 젓갈은 무려 4종류. 오징어젓, 어리굴젓, 낙지젓, 명란젓이다. 덕분에 끼니때마다 접시 하나에 종류별로 조금씩 올려 참기름을 둘러 먹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번 시즌 최고는 어리굴젓이다. ‘조금’이라는 뜻의 얼- 을 붙여 다른 젓갈에 비해 소금 간을 덜 해서 얼간한 굴젓, 어리굴젓이라 부른다고 한다. 젓갈에서 나는 비린 맛이 싱싱한 생해산물의 향긋한 비린내에 비교하긴 뭐하지만 나름의 깊은 맛이 있다. '덜 짜면 많이 먹을 수 있을 텐데', '근데 안 짜면 젓갈이 아니지' 의 반복이다. 물컹 식감 대환영인 입맛이라 굴을 무척 좋아한다. 유난히 계절과 날씨에 예민한 친구라 정확한 제철에 믿음직한 구매처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 그래서 날이 풀리면 굴 특유의 시원한 비린내가 그리워지고는 하는데, 어리굴젓에서 나는 은은한 비린 맛이 기분을 달래준다. 짭조름한 양념이 반가운 마음에 짠맛도 잊고 한 개 더 집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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