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발의 고장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에 와서 삼발을 처음 먹고 너무 맛있었다. 고추장 하고는 다른 것이 매콤 달달 짭짤하니 삼발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을 다 비울 수 있었다.
하루는 삼발이 너무 먹고 싶어서 친구에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작은 그릇 하나 가득 만들어 준 초록 삼발이 얼마나 맛있던지. 맵다 매워하면서 밥 두 그릇을 뚝딱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평소에 위장염에 자주 걸리지 않던 나는 매운맛 때문에 그렇게 몸져누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웬만한 매운맛에 위장염 따위는 걸리지 않았었는데.. 이놈의 삼발이 내 속을 다 뒤집어 놓았던 것이다.
며칠 뒤 친구에게 삼발을 먹고 배가 아프다고 말했더니 그 삼발을 한 번에 다 먹으면 어떻게 하냐고 어이없어하는 것이 아닌가. 그저 반찬 한 그릇도 안될만한 양이었는데.. 그걸 한 번에 다 먹으면 안 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맵부심 하면 한국을 빼놓을 수 없다.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엄청난 맵부심을 자랑하는 나라다. 그런 맵부심을 가지고 인도네시아에 와서 삼발을 먹었던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인도네시아의 고추는 말도 못 하게 맵다. 크기는 2cm도 안 되는 작은 녀석이 얼마나 매운지 첫 만남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다. 그 작은 고추로 삼발을 만드니 고추가 몇 개 안 들어가도 엄청 맵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삼발은 필수 양념이다. 삼발을 먹는 내 모습을 보면 현지인들은 인도네시아 사람 다 됐다며 참 좋아라 한다. 두부를 먹을 때도 삼발을 같이 먹고, 고기를 먹을 때도 삼발을 같이 먹는다. 그저 밥하고 삼발 하고만 먹는 경우도 있다.
삼발은 한 가지가 아니다. 삼발 트라시, 삼발 히조, 삼발 토맛, 삼발 공소, 삼발 바왕, 삼발 망가 등등 그 종류는 셀 수 없다. 지역에 따라 다르고 넣는 재료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고추와 다른 재료들을 넣고 쪼백과 울르깐이라고 부르는 도구를 사용하여 고추와 재료들을 으깬다. 그리고 뜨거운 기름을 넣어 그 맛을 더한다. 이렇게 기본에 망고를 넣어 망고 삼발을 만들거나, 새우를 넣어 새우 삼발을 만들기도 한다.
삼발은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양념이고 고추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양념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보관일 것 같다. 고추장은 몇 년 동안 보관해 놓아도 먹을 수 있지만, 삼발은 그날 만들어 그날 먹는 것이 보통이다. 처음에는 삼발을 고추장처럼 생각해서 덜어 먹거나 냉장고에 넣고 먹었는데, 인도네시아의 기름은 저온에서 굳어버리는 특성이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 만들어 그날 먹어야 한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음식을 비교하다 보면 날씨가 참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 년에 딱 한번 고추 수확이 가능한 한국은 고추를 말려서 갈아 놓고 고춧가루로 사용하지만 인도네시아는 고추를 말려놓지 않는다. 왜? 언제든지 수확이 가능하니까!! 1년 내내 어딜 가도 고추밭이다. 굳이 마당에도 있는 고추를 사다 쟁여놓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 보니 마른 고추를 사용하지 않고, 늘 생고추를 사용한다. 그리고 이 고추는 어디에나 다 들어간다.
삼발은 그냥 먹기도 하지만, 요리와 함께 먹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치킨 그프렉은 치킨 위에 삼발을 넣어 버무린 음식이고, 떼롱 발라도는 발라도 삼발을 사용해 가지를 볶은 요리이다. 대부분의 달걀요리는 삼발과 함께 버무려 먹는다. 오믈렛 위에도 삼발을, 달걀 프라이도 삼발에 넣고, 삶은 달걀도 삼발에 다시 한번 버무린다.
이렇다 보니 고춧값이 오르면 엄마들이 운다는 얘기가 나오나 보다. 고추 없으면 못 사는 나라인 것처럼 인도네시아는 고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가끔은 야채나 과일을 잘라 고추양념과 버무린 루작이라는 음식이나, 튀김 위에 올려있는 고추 하나를 볼 때면 매운맛을 못 먹는 사람은 도대체 뭘 먹고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맵부심 있는 한국인인 나에게는 그저 매콤하고 맛있는 인도네시아 음식이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