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를 위한 열정 한 잔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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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명성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바로 글쓰기가 아닐까? 나의 ‘살아있어’가 글쓰기라면 앞으로의 나는 작가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처음으로 진지하게 글 쓰는 나를 그려봤어요. 생각과 상상만으로도 부끄러워 감히 꿈꾸어본 적도 없는 ‘작가’라는 두 글자를 조심스레 꺼내든 거예요.
하지만 그걸 제대로 만져보기도 전에 코웃음과 빈정거림이 날아왔어요. ‘네가?’, ‘’말도 안 돼!’, ‘네가 무슨!’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려 해도 도저히 봐줄 수가 없는 착각. 헛물도 이런 헛물이 있나, 네 주제와 분수를 알아라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 내가 무슨' '미쳤지 미쳤어.' 고개를 흔들어 댈 때, '언니 언니!' 불러대며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고 싶은 누군가가 찾아왔습니다. 한껏 움츠러든 제 어깨에 손을 올려준 그녀의 이름은 나탈리 골드버그. 전 세계에 글쓰기 붐을 일으킨 소설가이자 시인, 수행자입니다.
그의 대표작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부터 가장 최근에 나온 <구원으로서의 글쓰기>까지 무엇 하나 인상적이지 않은 책이 없었지만 가장 강렬했던 만남은 <글 쓰며 사는 삶>이에요. 글쓰기 책이지만 글쓰기 책이 아니기도 한 책으로, ‘글쓰기’ 대신 어떤 일을 넣어도 무방한 책. 요리하며 사는 삶, 바느질하며 사는 삶, 영업하며 사는 삶, 연구하며 사는 삶, 판매하며 사는 삶 등등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꿈꾸는 일이 무엇이든 적용 가능한 이야기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글쓰기를 하려는 사람이 가진 건 그게 전부다. 내가 마크 트웨인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나탈리 골드버그일 뿐이다.
‘나는 나일뿐이다. 나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자.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순 없다. 나에게는 나만의 마음이 있다’ 작가가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들처럼 쓸 수 없는 내 모습에 낙담하던 제 가슴에 푹푹 꽂혔어요. 나는 왜 늘 그들을 기준으로 생각했을까요?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인데… 내가 그들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그들 역시 내가 될 수는 없는 데 말이지요.
저는 늘 작가들을 동경했어요. 뛰어난 글을 읽으며 감탄한 뒤에는 ‘나는 이렇게 쓸 수 없다’는 절망감과 ‘이렇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부러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어요. ‘에이, 이런 건 타고 나는 거야. 작가는 뭐 아무나 하나? 평범한 나랑은 아예 다른 종족인걸.’
한 권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어요. 누군가를 질투하고 존경하는 나의 감정에는 그들이 가진 것을 욕망하는 나의 소원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요. 언제나 책을 읽고, 열심히 감탄하고, 뜨겁게 질투하며 내가 갖지 못한 것을 한탄했던 시간들 속에는 글쓰기를 사랑하고 소망하는 나의 간절한 열망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참 모습이 어떤지, 자신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잘 모른다.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지도 잘 알지 못하며, 끝내 자신의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가 깨닫지 못한 이 빈틈을 알고 나면 글쓰기를 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이런, 또 본래의 나보다 뒤처지고 말았군." 이렇게 깨달으면서 말이다. 열정을 가져라. 당신의 진짜 가치를 안다면 자학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녀가 이야기했어요. 당신은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당신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당신의 참 모습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고요. “열정을 가져라. 당신의 가치를 깨달아라!” 숱한 자기 계발서에 등장하는 뻔하고 뻔한 말이 조금도 뻔하지 않게 가슴을 울렸습니다. 오랜 명상과 선 수행 끝에 깨달은 바를 솔직하고 따뜻하게 전해주는 그녀의 목소리에 완전히 빠져들어 다짐했어요. 내 귓가에서 ‘너는 능력이 없어, 너는 재능이 없어, 너는 할 수 없어’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훼방꾼을 쫓아버리겠다고요.
내가 글을 쓰든 말든, 작가를 꿈꾸든 꿈꾸지 않든, 이 세상 어느 누가 신경을 쓰겠어요. 신경은커녕 관심도 없는 일에 나 혼자 지레 겁을 먹고 눈치를 보고… ‘더 이상 나를 평가하지 말자. 그냥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쓰고 싶으면 쓰자. 쓰고 싶은 걸 쓰자. 내가 쓰는 글은 나만 쓸 수 있는 나만의 글이다. 그건 그거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내 맘대로, 내 멋대로, 화끈하고 당당하게 자신감 충전!!
나를 불타게 하는 삶의 동력
온종일 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바로 간절하게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신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그런 간절함이다. 그 일이 당신의 나머지 삶에 얼마나 어울리느냐에 달린 게 아니라는 말이다. 뭔가를 간절히 원하고, 열정으로 불타오르게 하라. 그것이 삶의 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결혼 전에야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지만,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후에는 무엇 하나 쉽지가 않잖아요. 언제나 빠듯한 외벌이 살림에 보탬이 되는 경제적 활동을 하기는커녕 시간만 축내는 글쓰기를 하겠다니! 이게 지금 제정신인 사람의 생각인가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찾아오는 비판자를 몰아내고 나의 간절함을 지키기로 했어요.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 씻기고, 챙기고… 하루 24시간 종종거리며 움직여도 한없이 커져만 가는 마음의 구멍을 채워야 했거든요. 사라져가는 나를 되찾아줄 시간, 말라비틀어진 내 삶을 불태워줄 시간, 바닥에 쓰러진 나를 일으켜 움직여줄 시간을 기꺼이 할애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작가다. 나는 작가다.” 나에게 주문 걸기
나탈리 골드버그는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나는 작가다.”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그 말을 믿든 안 믿든 상관없이, 내가 바보처럼 느껴질지라도 씨앗을 심는 기분으로 말하기! 우연인지 운명인지, 북극곰 출판사의 대표이신 이루리 작가님과의 만남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어요. 작가를 꿈꾸는 분들을 위한 조언을 주셨는데, 작가는 별게 아니라고, 작가는 자기가 작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작가가 되는 거라지 뭐예요?
‘오늘부터 나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 그게 바로 작가 되는 방법이고, 그렇게 완성된 글을 끊임없이 투고하면 된다는 말에 힘입어 그날 바로 [책 쓰기] 폴더를 만들었어요.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정하고, 콘셉트를 잡고, 개요와 목차를 설계해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채워 블로그와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는 결과물이 바로 이 글입니다.
내가 이렇게 쓰는 글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지 저는 자신하지 못 합니다. 부지런히 발송한 투고 메일은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거절의 답장으로 돌아오지만 멈추지 않고 묵묵히 갑니다. 실패는 없다고, 떠돌아다닐 드넓은 벌판이 있을 뿐이라고,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당신이 원하는 것과 실제의 당신이 만나서 하나가 될 거라고 응원해주는 한 권의 책이 있으니까요.
불안을 자극하는 세상과 맞서기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순간, 나만의 ‘살아 있어’를 갖고 계시나요? 나의 운명, 나의 길. 이것만은 반드시 하고 싶다 생각하는 무언가가 있으신가요? 저는 이런 질문 앞에 서는 게 힘들고 당혹스러웠어요. 서른이 넘도록 내가 정말 무얼 좋아하는지, 무얼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우리 사회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아요.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 묻는 대신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고, 그걸 얼마나 잘 하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관심을 두는 교육을 받지 못 해요. 그저 공부 공부 성적 성적!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가고, 스펙에 맞춰 직업을 갖고, 학자금 대출에 결혼 자금, 아이들 교육비에 노후 자금까지 벌어도 벌어도 밑 빠진 독의 물처럼 사라지기만 하는 돈을 벌기 위해 24시간 아등바등 바쁘게 살아갈 뿐이지요.
세상은 우리의 불안을 끊임없이 자극해요. 노후 생활비로 한 달에 218만 원은 있어야 한다고, 지금의 저축으로는 한 달에 28만 원밖에 받을 수 없다고 말하지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사회는 우리를 쉴 새 없이 채찍질합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면 돈을 벌어라! 성공하고 싶다면 돈을 벌어라! 편안한 노후를 누리고 싶다면 돈을 벌어라!"
우리는 그들의 명령에 따라 돈과 땅에 무섭게 집착합니다. 벌고 또 벌고, 모으고 또 모으고. 그런데 그렇게 평생을 바쳐 돈을 벌고 난 뒤에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운 좋게 성공해야 간신히 집 한 채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허무함. 인생에 대한 회의와 우울, 견딜 수 없는 고독 아닌가요?
전에는 돈과 건강만 있으면 편안한 노후가 펼쳐질 거라 생각했어요. 이 얼마나 단순한 생각인가요? 우리는 먹고 살 수 있다고 해서, 크게 아프지 않다고 해서 마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닌데 말이에요. 크게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에 지장을 주는 심각한 질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자살을 선택하는 어르신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먹고사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해요. 인생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아픔과 세월의 배신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무언가, 성취의 기쁨과 즐거움을 전해주는 무언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무언가. 나만의 그 무언가를 찾아야 합니다.
10년 가까이하던 일을 그만둔 뒤에야 발견한 나의 길이 진짜 나의 길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걸어 봅니다. 나의 무언가를 고민하며 찾아볼 수 있게 도와준 경력단절의 시간에 감사하면서요.
애 딸린 아줌마가 꿈을 꾸는 게 부끄러워질 때, 이제 시작해서 뭘 할 수 있을까 불안해질 때. 그럴 때, 그런 순간 저는 모지 스 할머니를 떠올립니다. 75세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까지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국민 화가 모지 스 할머니. 할머니의 인생과 그림을 담은 책 <모지 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는 이야기해요.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이야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지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
물론 진정으로 추구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아요. 사실 그게 당연한 일이겠지요. 자신을 돌아볼 잠깐의 여유도 없이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완전히 잊고 있던 내면의 나, 고민해 본 적 없는 나의 길이 그렇게 쉽게 보이겠어요? 어디 가 길인지 알아볼 수도 없게 뒤덮인 잡초를 베어내고 정비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겠지요.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며 천천히 고민해 봐요. 일과 아이를 놓고 고민하는 대신 삶의 동력이 되어줄 무언가를 찾아보기! 나의 일, 나의 길은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도,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은 너를 위해 모두 버린 엄마가 아니라 내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엄마이니까요.
경력단절 여가 된 절망의 순간, 경력단절 여가 될 위기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