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엘빂샤
격동의 2000년대에 학창시절을 지낸 사람들이라면 아마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그 시절 아이돌들의 팬덤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었는데, 나는 그 카트엘빂샤 중에서 하나로 살았다. 그리고 마치 그것이 해리포터 모자의 선택마냥 그 시절 내 정체성의 전부라고 봐도 무방했다.(개인팬이나 철새팬이 절대 용납이 되지 않는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돌로 만든 팬픽이 아주 유행이었다. 저작권의식이라고는 없는 소녀들은 모든 소설들을 TXT파일로 만들어(aka. 텍본) 공유했다. 덕분에 돈 하나 내지않고 인터넷 검색만하면 '오빠'들의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갑자기 팬픽얘기를 왜 하느냐. 난 학창시절, 성적에 크게 뜻이 없는 학생이었다. 공부를 안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막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좋은 대학에 가고싶은 꿈도 없었고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야망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낼려고만 하는, 지금 생각하면 도파민에 중독된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여러 과목 중, 아무리 용을 써도 성적이 안오르는 과목이 있는가하면 별 특별한 공부를 안해도 좋은 성적이 유지되는 과목이 있었다. 전자는 영어였고 후자는 국어였다. 생각해보면 초등학교때부터 난 이렇다 할 '국어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읽고 풀었다. 그러나 영어는 못 읽어서 못 풀었다.
그래서 그땐 국어 단과 학원을 가는 아이들이 말 그대로 신기했다. 오만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말 그대로 신기했다. 그냥 읽고 풀면 되는데 뭘 공부하는거지?
그래서 궁금해졌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국어 관련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것이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청소년기땐 그닥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지도 않았고,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글만 읽었던 것 같은데 무엇때문에 국어 능력이 유지가 되었을까, 생각해봤는데 불현듯 팬픽이 생각이 났다. 그 메모장 파일들에 미쳐있던 그 시절, 그 시절이 있었기에 나의 독해 능력이 부스터를 달고 우상향 한 것이 아닐까? 내가 생각한 그 이유를 몇가지 꼽아보려고 한다.
첫 번째로, 일단 팬픽을 읽으면 빠르게 몰입되어 제 아무리 긴 글이라도 끝까지 흥미롭게 읽는다. 그 이유는 소설 속 캐릭터에 대한 라포형성이 일반 소설과 상당히 다르다. 물론 팬픽 속에서 우리 오빠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미 난 그 캐릭터를 사랑하는 상태에서 글을 읽는다. 때문에 소설 속에서 해당 캐릭터가 갖은 범죄, 악행을 저질러도 그 캐릭터를 사랑하고 이해하려한다. 반면 일반 소설이나 책은 읽다가 전개가 맘에 안들거나 지루해지면 바로 책을 덮기 쉽다. 하지만 오빠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항상 팬픽은 완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아무리 장편 소설이라도. 때문에 독서에 필요한 끈기를 키울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빨리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도 향상되었다. 왜냐면 그 시절 K-학생들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몰컴, 몰폰의 세대들은 알 것이다. 집에와서 컴퓨터와 휴대폰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결코 많지 않다. 전자사전과 pmp가 등장하며 침대 속에서도, 공부하는 척을 하면서도 읽을 수 있었긴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 기계들이 없었어서 그건 패스하고, 나에게 팬픽을 읽을 수 있는 도구는 컴퓨터와 휴대폰 뿐이었다. 때문에 부모님이 퇴근하기 전, 컴퓨터를 끄라고 방에 들이닥치기전에 난 내가 볼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양의 팬픽을 읽어야만 했다. 인물들이 사랑을 이루는지 아닌지, 죽는지 사는지를 나는 빨리 알아야만했다. 우리 집의 권력자가 들이닥쳐 컴퓨터를 끄라는 명령을 내리기 전에. 그 간절한 마음 때문일까. 덕분에 소설을 읽다가도 넘길 부분은 넘기고 중요한 부분은 천천히 보며 나름 속독하는 법을 배웠다.
세 번째로, 자연스럽게 독서 '양치기'를 하게 된다. 양치기란, 공부를 할때 많은 문제를 냅다 풀어서 유형을 읽히고 푸는 방법을 체화하는 공부 방법으로 쉽게 말해서 양으로 승부한다는 것이다. 국어능력에도 양치기가 효과있다고 생각한다. 한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활자를 읽는 행위 자체가 독서능력을 향상시켜준다고 생각한다. 여러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단어의 쓰임, 묘사법, 서술방식 등을 배우게 된다. 나는 팬픽으로 양치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저작권 격동의 시대에서는 소설 전체 파일을 구하는 것이 정말 정말 쉬웠고, 하나를 다 읽으면 금세 또 하나를 볼 수 있었다. 굳이 도서관에 가서 읽은 책을 반납하고, 다시 빌리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얼마나 손쉬운가, 그것도 공짠데. 때문에 나는 한 소설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소설을 바로 보곤 했다. 자연스럽게 양치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팬픽의 선정성과 관련된 악영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선정성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읽기에는 무리가 있고, 결코 팬픽을 읽어라- 권하는 것도 아니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세월을 지나서 온 나의 입장에서 이런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모든 행동은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