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를 선물 받았다.
단골 편집샵 주인이 주셨는데, 시들시들한 상태로 엄청 작은 화분에 심겨진 채 곧 죽을 거 같은 상태였다. 그냥 안 받고 나오려다 갑자기 죽어가는 베로니카가 딱해서 집에 가져왔다.
넉넉한 토분에 분갈이를 해주고 매일 물을 주었더니 데려온 지 이틀 만에 조금씩 잎이 펴지고 할미꽃처럼 힘없던 꽃봉오리들이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
9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를 병간호하던 때가 생각났다.
나는 증손녀인데 어린 시절 할머니가 나를 키워서 나의 부모님보다 조부모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할머니는 당시 암투병 중이었다. 몸의 면역기능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서서히 힘을 잃었다. 마약 성분의 진통제까지 투약했지만 그저 속도를 늦출 뿐 할머니는 급속도로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병원을 다녀오던 어느 날 내 검지 손이 출입문에 끼어 크게 멍이 들었는데, 3일 만에 딱지가 생기는 것을 보고 지하철에서 펑펑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내가 스스로 내 몸을 치료할 수 있는 젊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괜히 슬펐다.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인생이 생각보다 얼마나 짧은지, 매일매일 우리가 욕망하는 것들이 얼마나 사소한 문제인지,
하지만 그런 사소한 일상이 모여 결국 나의 마지막 순간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도.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꼭 나로서 살아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내가 만든 순두부찌개의 국물 맛으로 할머니를 만나고 아빠의 말투로 할머니와 대화하고 여행지에서 할머니가 좋아할 거 같은 물건을 발견하며 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할머니를 챙긴다.
좋은 흙과 넉넉한 크기의 토분에 옮겨진 베로니카는 이틀 만에 기운을 좀 채리 더니 특유의 향을 방안에 풍기며 감사를 표현하고 있다.
베로니카처럼, 아직 젊고 아파도 며칠만 쉬면 나을 수 있는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향을 풍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잠시 생각했다. 내가 이 세상에 없는 순간이 오더라도 누군가는 내가 남겼던 향기와 행동과 음식의 맛과 말투와 습관을 기억하며 나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비록, 다 죽어가는 베로니카를 준 센스 빵점의 편집샵 주인이지만, 할머니 장례식에서 생각했던 다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어서 갑자기 고맙기까지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모습으로 나는 영원히 기억되어질 테니..
다시 내일부터 살아가는 대로가 아닌, 살고 싶은 모습으로 지내야겠다.
*베로니카의 이틀간의 before, after 사진으로 마무리해본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