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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Apr 17. 2024

학교 상담을 받고,  문제집을 찢었습니다.

제 교직 생활에서 본, 미래가 기대되는 아이 중 한 명 입니다.
제 아이도 이렇게 컸으면 좋겠어요.
어머님, 지금 어머님이 하시는 게 맞아요.



    연년생 아이들을 연달아 상담하고 교실 문을 닫은 뒤, 울컥한 마음이 차올랐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지만, 내가 해온 방식이 맞다는 확언을 듣고 그간 흘렸던 수많은 눈물과 고단함이 위로받았다.

'이게 맞구나.. 우리 잘하고 있구나, 나 정말 애썼구나.'

하교 후 맞이한 아이를 바라보는 눈은 이미 사랑이 한도를 초과해 달콤함이 공기를 바꿨다. 너와 내가 세상의 소음을 차단한 채, 서로의 몸짓과 눈짓만 바라보며 집중하는 몇 초는 달달한 허니문 기간을 생각하게 했으니깐. 학교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존재감을 위해 발버둥 쳤을 아이가 대견해서 흡사 첫걸음마가 떠올랐다. 이 작은 몸으로 얼마나 많은 애씀을 이루고 있니, 그저 고맙고 고마울 뿐이었다.




    허니문 이후 이혼하는 신혼부부가 많아졌다. 서로의 본모습이 나타나며 하나둘 튀어나오는 상대방의 낯선 불편함은 이내 지끈거림과 질근거림을 선사하게 되니. 밖에서 받은 인정만큼 아이를 위한 프리데이를 만들어줄까, 생각했지만 고쳐먹었다. 정답지를 안 이상, 하루의 성실성을 지켜야 한다는 단단한 조임이 생겼다. 대신 좀 더 느슨하게 놀이시간을 배려하고, 정리 정돈을 하지 않았지만 잔소리하지 않고, 공부 시간을 뒤로 미루고 싶다는 말에 그렇게 했다. 혼자 착각한 배려 속에서 아이들 태도가 하나둘 눈에 거슬리자, 표정은 점점 굳어졌고 각종 협박성 말투가 쏟아졌다. 그리곤 결국, 문제집을 찢고 말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문제집이 망설임 없이 잘 찢어질 줄도 몰랐고, 아이가 그렇게 슬피 내 목을 감싸고 울음을 토해낼 줄도 몰랐다. 모든 게 내 예상 시나리오를 벗어났다. 조금 전 허니문에 젖어 있던 우리는 서로를 향해 서슬 퍼런 칼날을 세우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사랑의 배신을 소리쳤을 뿐이다.




    화가 났다. 내 이중인격에. 그리곤 모순에 소스라치게 경멸감이 들었다. 몇 시간 전, 교실 안에서 바른 자세로 경청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현명한 어른 뒤에는 먹잇감을 노려보는 굶주린 사자가 있었을 뿐이다. 숨겨진 자아가 우리를 벗어나 주변 사람들을 할퀼 것만 같아서 무서웠지만, 이미 아이 마음속에 테이프로도 붙여질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후였을 뿐이다. 찢어진 문제집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테이프로 붙이면서 눈물이 차올랐다. 이 문제집을 볼 때마다 서로의 날카로운 상처가 주홍 글씨처럼 생각날 것 같아서 눈앞에서 치우고 싶었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것의 매끈한 표지를 쓰다듬고 싶었다. 우리의 지난 감정이 있긴 있었니, 거짓이었다고 아니 일어나지 않은 상상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이가 말했던 "어떻게 내 문제집을 찢을 수가 있어!"라는 외침은 "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찢을 수 있어!"라는 절규로 들렸다. 하기 싫은 문제집조차 '내 물건'이었건만 "함부로 내 물건을 찢어버리다니, 난 엄마를 용서할 수 없어"라는 절망이 함께 들려 아이를 똑바로 마주 볼 수 없었다. 이 정도로 바닥이었다니, 한순간의 치솟는 분노를 참아내지 못했다는 뒤늦은 후회와 죄책감에 아무런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 unsplash


    얼마나 많은 모순을 지나가야 할까. 너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드는 하이에나의 작은 소곤거림을 어떻게 지나칠 수 있을까. 무시할 수 있을까. 사악하게 반짝이는 그 분노를 잠재울 방법이 있긴 할까. 하필이면 왜, 내 가장 연약한 아이에게 화살이 향하는 것인지, 그것이 정말 너를 향한 일그러짐인지, 나는 또 온전치 못한 마음을 들여다보며 글을 쓸 뿐이다.

    현명하고 성숙한 열매가 되고 싶다. 알맞게, 옹골차게, 야무지게 익어가는 과실이 되고 싶지만, 나뭇가지 끄트머리에 있는 아슬함이 결국 바닥으로 떨어지고, 뭉개지고 만다. 언제쯤 탐스럽게 익어갈 수 있을지, 과연 가능키나 한 일인지 모순된 엄마 역할에 오늘도 발버둥 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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