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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Aug 07. 2024

유년 시절

어렸을 적, 곧잘 열이 나던 나는 고열이 나면 바로 엄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몸조리했다. 뭐 여기서 극진함이라 해봤자 안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두세 시간에 한 번 엄마 손길을 느끼는 것과 오렌지 주스 한 병, 그것뿐이었지만.

열이 나서 입안이 싹 다 말라버리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잘 먹질 않았다. 지금 와 생각하니 곡기를 잊을 만큼 힘들었다기보단 아픔을 호소하기 위한 애절한 수단이었던 듯하다. 네 남매 속에 사랑을 갈구하던 둘째 딸은 펄펄 끓는 이마가 식을까 이불을 목까지 끌어안고 고열 속 지속되는 눈길을 얻고자 모든 세포의 발열을 지휘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남은 세 명 중 한 명에게 꼭 심부름을 시켰다. 얼른 슈퍼에 가서 델몬트 오렌지 주스 한 병 사 오라고. 냉장고에서 볼 수 없는 이 개나리색 음료는 목욕 후 얻어먹는 바나나 우유와 같았다. 이 한 모금을 먹기 위해 숨 막힐듯한 사우나를 버틴 것처럼, 고열 속 비타민 주스의 청량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주스의 참맛을 알기 위해서라도 39도 이상의 고열을 거쳐봐야 하는걸까.


현재는 과당 덩어리라고 기피하는 그 오렌지 음료를 먹이면 비타민C가 자식의 아픔을 싹 낫게 도와주리라는 모성이었을 테다. 빠듯한 살림 속 속상함이 불러온 새콤한 처방이었을 테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학습 코치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군지에서 영유를 다니는 5세 아이의 학습과 돌봄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엄마 아빠는 맞벌이 부부셨고, 상주 이모님(할머님)이 살림을 도맡아 해주셨다. 아이의 어머님은 산부인과 의사였고, 그날 아이가 할 일을 수첩에 적어두시고 하나씩 지워나가면 된다 했다. 그러면서 당부하셨다. 이 할 일을 모두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 부담 갖지 말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달라는, 아이의 놀이상대를 해달라는 얘기였다.

돈을 받으면 돈값을 해야 한다는 철칙이 있던 난 마냥 놀고 싶어 숨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의자에 앉혔다. 각종 캐릭터를 그려주며 마음을 열고, 유치원 영어 숙제를 같이 외웠다. 연산 문제는 아쉽게 틀리는 방식으로 아이 기를 세워줘야 했고, 각종 워크지를 함께 풀어야 했다. 그러다 아이는 배가 고플 때면, 이모님에게 라면을 요구했다. 안 되는데 하면서도 아이의 떼를 어쩌지 못했던 이모할머님은 '튀기지 않은 면으로 만든 라면'을 끓여주셨다. 한사코 거절해도 내 그릇까지 챙겨주셨던 할머님을 돕기 위해 냉장고 속 물이라도 따르려던 눈에 유기농 라벨이 박혔다.


오렌지 주스다. 우리 집엔 고열이 나야만 맛볼 수 있었던 그 오렌지 주스. 유기농이란 글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열하는 태양 속 과즙이 흘러넘치는 새콤함을 표방하고 있었고, 난 어린 시절의 내가 되어 상비된 주스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가 먹는 튀기지 않은 라면과 유기농 오렌지 주스, 방목된 소에서 짜낸 1등급 우유는 시리얼 광고 속에서 보던 그 모습이었다. 내가 가져보지 못한 결핍이었다. 지금에서야 주스, 우유, 시리얼 모두 미디어가 만들어낸 가짜 영양이라고 고발하고 있지만 난 아직도 광고 속 단란한 아침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호텔 조식 뷔페를 가면 꼭 시리얼을 먹는다. 적당한 유리 볼에 각종 시리얼을 담고 흰 우유를 찰랑찰랑하게 담는다. 비싼 돈 주고 왔으니 이는 그저 넘겨도 그만이지만 나에게 만큼은 풍요로운 시리얼 만찬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렸을 적 결핍을 채우는 시간일까. 어렸을 적,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혼자만의 사소한 부러움을 어른이 된 내가 채워준다.

어른이 되어 각종 피규어를 모으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와 비슷하다 들었다. 나 역시도 미미 인형 하나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빌라 맨 지하에 사는 어린 동생네 집에 가면 각종 미미의 화려한 옷들이 있었는데 한참을 갖고 놀다 아쉽게 내려놓아야만 했다.


주스와 시리얼 만찬을 먹으며 생각한다. 지금 나이의 오렌지 주스와 시리얼은 무엇일까. 몇십 년이 흐른 뒤, 과거의 나에게 어떤 보상을 해주고 싶어 할까. 그땐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괜찮아'라는 안쓰러운 눈빛과 '수고했어'라는 인정의 손길이지 않을까. 지금의 부단함으로 그래도 꽤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고마움'도 추가되었으면 좋겠다. 덕분에 내가 있다고.

그 시절, 오렌지주스와 시리얼로 결핍을 느낀 감정을 통해 글을 쓰고, 또 이 순간을 기록함으로써 조금 멀리 있는 내가 지금을 추억할 수 있으니...결핍은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말, 그 말이 오늘따라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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