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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Aug 06. 2024

비싼 짜장면.

짜장면. 이 검은색 면이 뭐길래.


친정엄마는 아직도 그게 그렇게 미안하단다.

"너희가 짜장면 먹고 싶다고 했을 때, 그거 하나 못 시켜줬던 게 아직도 마음에 걸려. 자식이 먹고 싶다는 거 그거 못 사줄 때 부모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아냐...."짜장면 한 그릇을 볼 때면 늘 이 말을 단무지처럼 따라 붙인다. 여지껏 그렇게 가슴 아픈 일이라니. 가슴 미어지는 일이라니.


3층 빌라 맨 꼭대기 층. 계단을 내려오다 짜장면 냄새를 맡으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2층 문 앞, 듬성듬성 먹은 빈 그릇을 보며 생각했다. 단무지에 저 남은 자장소스를 듬뿍 묻혀 어금니로 깊게 깨물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하진 못했지만, 집밥으로 채워진 배는 공기만 가득 먹은 듯 허기에 몸부림쳤다. 그놈의 짜장이 뭐라고.




주말 일정을 끝내고 끼니를 때우고 들어가고자 식당을 찾았다. 여러 입맛을 고려해 아울렛 안 중식당에 들어서서 메뉴판을 훑어보니 가격대가 무척 무겁다. 애써 아닌 척, 식사류와 하얀 튀김 옷을 입은 시그니처 메뉴를 시키고 시선을 옮겼다. 아이스크림 이름과 비슷한 가방을 바닥에 툭 내려놓은 여자의 갈색 슬리퍼가 주황색 박스를 생각나게 하고, 유모차에 매달린 가방은 휘황찬란함에 휘청거린다. 뭐 그런 것들은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시선을 깊게 당기진 못하지만 내가 마음 아픈 구석이 딱 하나 있으니, 바로 중후한 노부부가 거리낌 없이 식당 문을 들어설 때다.

우아하게 주름 잡힌 원피스에 단정하고 곱게 빗은 머리카락은 오늘따라 우아해 보이고, 노신사의 깔끔한 신발과 편안한 면바지는 땡볕에 고추 모종을 심고 있을 친정 아빠를 생각나게 했다. 자주 왔던 편안함을 풍기며 자연스레 착석 후 서슴없이 메뉴판을 보는 그 눈빛을 보니, 아직 나오지도 않은 갓 튀긴 튀김에 입천장이 덴 것만 같다.


"아. 저런 데는 비싸겠지? 저런 데 가서 아주 맛있는 짜장면 한 그릇 먹고 싶다."


유명 쉐프가 나와 현란한 웍질을 할 때면 쇼파에 기대 바닥에 앉은 엄마가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럴 때마다 그까짓 것 가서 먹으면 되지 했지만 우리 집 외식은 항상 돼지갈빗집을 넘지 못했다. 멀리 있는 식당에 가려면 각자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고, 대소변 문제로 차를 오래 타지 못하는 아흔의 할머니 컨디션이 일 순위였다. 먹고 싶은 음식보다 가족 모두의 입맛과 시간, 가격을 아우르는 돼지갈비가 우리 집 외식으로 가장 무난했다.




그래서 그럴까. 짜장면을 보면 옛날 그 옛적, 자식들이 사달라는 그 한 그릇을 사주지 못해 목이 막혔을 엄마처럼 나 역시도 쇼파에 기대 티비로만 보고 있을 그녀가 생각나 목이 멘다. 이게 뭐라고. 이 검정 소스 범벅이 뭐라고 우리는 눈물을 흘리는지. 먹기도 전 짜장면 섞다가 불어 터질 일이다.


원형 테이블에 앉아 수도 없이 먹었다. 친구들과 여럿이서, 남자 친구와 데이트에서, 자식들을 데리고서. 수없이 돌렸던 그 원형 판에서 쫄깃한 수타면이 내 목젖을 치고 도망간 적이 몇 번인데. 엄마는 매번 1분 거리에 있는 짜장면집에서 이유 모르게 불어 터진 면만 맛 보았으니, 자식으로서 목구멍이 아려올 만하다. 이리 쉬운 일도 같이하지 못했다니. 일흔을 바라보는 엄마가 짜장면을 정말 맛있게 싹싹 비우는 그 광경이 뭣이 어려워서 아직도 다른 노부부를 보며 할 말을 잃고 마는지. 매번 뒤늦은 후회 속에서도 여전히 내 목젖으로만 그 탱글탱글함을 넘기고 있으니 역시 나는 이기적이다. 그럴 거면 울지나 말지.


나는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을,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의 "됐다"는 그 말을 너무 쉽게 넘겨 버렸다.


할머니 차 오래 타는 거 불편해. 아빠도 모르는 길 운전하는 거 힘들고, 애들도 고기 좋아하는데 그냥 먹던 거 먹자, 거기 맛 괜찮았는데 거기 가지 뭐. 엄마의 이런 사소한 머뭇거림을 기다린듯 "그러던지"라는 말로 곧장 덮어버렸다. '뭐 엄마가 그렇다면'이란 생각으로 이번에도 엄마의 탱글탱글한 짜장면을 기억 속 다음으로 미뤄 버렸다.

이 후회가 사무치게 그리울 날이 올 것을 알면서도 당장은 아니라는 오만함을 부렸다. 기회는 언제든 있고, 뭐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인데 뭐. 고작 짜장면이란 생각으로 또 나만 편한 합리화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엄마는 아직도 면과 소스가 적당한 윤기 속에서 비벼지는 탱글탱글한 식사를 하지 못했다. 어디 칠순 잔치에서 몇 젓가락 먹긴 했겠지만 수십 번 전했을 그 말을 지켜준 딸은 없었다. 엄마는 항상 그랬다. 내가 집에서 키우는 화분의 물까지 다 주고 나면 그제야 뭐 엄마한테 오는 전화 한 번 받을 시간이 나는. 언제나 가장 뒤로 밀리는 존재. 그럼에도 죄책감 없이 살아가다 문득, 짜장면 한 그릇을 마주하면 사무치게 메어오는 목의 시큰거림을 마주쳐야 하는. 그리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한 그릇을 다 비운 뒤에는 생각 역시 비워지는.


우리는 또 그럴 테다.

엄마는 짜장면을 볼 때면 그 시절의 미안함에 벌게진 눈을 보일 테고, 난 중식당에서 노부부를 마주칠 때마다 엄마의 맛있는 짜장면 한 그릇이 생각나 똑같이 벌게진 눈을 할 테다.

그리곤 짜장면을 보며 속으로 또 되뇌이겠지.


짜장면, 이깟 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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