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는 것. 창작에 대한 욕구,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은 욕구, 인정의 욕구.
왜 만들까, 왜 글을 쓸까. 이것 또한 창작물이라 할 수 있을까. 세상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들도 '창작'이라는 프레임을 씌울 수 있을까.
글을 쓰면서 다수에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처음엔 내 감정을 토로하는 게 목적이었다. 머릿속에서만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들을 활자로 남겨본다면 조금 정리가 될 듯했다.
'그래서, 대체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무언데." 명확하지 않은 것들을 글로 남기자, 단어라는 것들도 나열되었다. 그러나 두서없는 나열이 문장이 되었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고찰을 넣지도 않았고, 문단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적는 것밖에 없단 생각으로 그저 시간과 생각을 한 방향으로 적어 나갔을 뿐이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을까. 70여 편이 넘는 글을 적어 오면서 마음에 드는 글을 쓰기도, 다시 휴지통에 버리고 싶은 글들도 있었다. 다른 사람이 읽을까 마음 졸이는 글도 있었고, 마음을 다해 쓴 글이 읽히지 않아 씁쓸했던 적도 있었다. 혼자만의 만족은 더 이상 글쓰기를 이어 나갈 동력이 되질 못했다.
'나만 읽을 거라면 일기장이 낫겠어. 뭐 하러 시간 들여서 다시 생각하고 고쳐 쓰고 더 나은 낱말들을 찾는 거야?'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생각을 던져주고, 나란 사람에 대해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글을 썼을까. 물론 긍정적인 평가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인간적으로 궁금한 사람이 되고 싶다. '잘 모르겠지만, 좀 더 알아보고 싶다. 저 사람, 뭐지?'라는 생각을 전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전 직장에서도 창작에 대한 고통은 있었다. '조금, 새로운 것' 너무 앞서나가서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지 못해도 안 되며 정체돼도 안 된다. 조금만 새로울 것. 이 난제를 생각하며 스타일링 하면서 점점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타일링 된 모습만 봐도 누군지 감이 왔다. 음식을 배치하는 방법, 그릇과 소품의 사용, 어디에 포커스 된 스타일링인지에 따라 특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나는 어떤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었던가. 지금 생각해 보니, 정적인 페이지 속 이야기를 원했다. 흡사 렘브란트나 얀 판 에이크의 작품 같달까. 사진으로 전해지는 한순간의 정적 속에 그들의 소란스러움을 담고 싶었다. 누군가 먹고 나간 흔적, 소박한 한 접시에 담긴 이야기 등 당장이라도 관계가 넘쳐나는 페이지를 장식하고 싶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이야기'에 꽂혀 있다.
전혀 다른 직업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정반대의 직업군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겹칠 수가 없다.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것,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받고 싶다는 것,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
그렇다면 나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은 걸까. 그렇다면 또 그건 아니다. 내 안에 속삭이는 어떤 간지러움과 명명되지 않은 것들을 굳이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랄까.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을 보장받고 싶은 이기적 내향인은 또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제발 들어줘, 이걸 나누고 싶다고!'라며 외치고 있었다. 때론 '궁금하지 않니, 내 사적인 생각들이.'라며 은근히 속삭이고 있었다. '아마 너도 공감하게 될 거야.'라며.
공감. 굳이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며 공감을 끌어내고 싶었다. 내가 글로 썼지만, 너도 이런 적이 있잖아. 우리 같은 생각을 하고 있잖아. 전혀 다른 이물감들의 소속 속에서 굳이 같은 점 하나를 찾아 돋보기를 들이대고 있는 모습이랄까.
그리고 공감해 주는 이가 하나둘 늘어날수록 새로운 거리를 찾아 또 헤매고 방황하고 있다. 이전의 것은 매우 흔했기 때문에 새로운 무언가를 흡수하기 위해 떠돌고, 방황하고, 가라앉고, 침수됐다가 이내 물에 뜬다. 후 숨을 내뱉고 난 뒤 헐떡이며 잠시 생각을 고르고 이내 적기 시작한다. "있잖아, 내가 느낀 감정을 한번 들어볼래?" 이런 상황을 반복하다 보면 시무룩해지기도, 의연해지기도, 뾰로통해지기도 한다. 적어도 시간과 마음을 들인 것에 대해 내 생각만큼의 공감을 받지 못하면 의기소침해질 뿐이다. 그게 사람이고, 그게 쓰는 사람이다. 오늘도 타인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내 안의 나를 만나 면밀히 살펴본다.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타인의 끄덕임이 없다면 이건 그저 혼자만의 일기장에 불과하기에, 우리의 날실과 씨실을 글로 엮고 있다. 부디, 창작자의 부끄럽지 않은 창작물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