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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용 Jan 07. 2020

기타는 헤어진 사랑을 싣고

20대, 나의 첫기타를 문센에서 배웠습니다.

기타! 하면 생각나는 사람 중 한 명은 LA 출신의 하드록 밴드 '건즈 앤 로지스(GunsN'Roses)'의 기타리스트 슬래시였다. 그가 장발의 파마머리를 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일렉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은 중학생 시절의 나에겐 큰 충격이었는데, 무엇보다도 가장 멋있었던 건 그의 담배였다. 그는 입에 담배를 문 채 기타 솔로를 연주하고, 심지어 기타의 헤드 부분에 피던 담배를 꽂아두기까지 했다. 그래, 이 사람은 기타를 치는 진짜배기 멋쟁이 형님이다! 나도 저렇게 기타를 치고 말 거야!


대략 이런 비주얼?  ⓒunsplash


내가 처음 꿈꾸던 기타리스트의 모습은 그런 것이었지만...


나에게 다가온 현실은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나의 첫 기타는 슬래시 형님이 치시던 레스폴 형태의 일렉기타가 아닌 어쿠스틱 기타였고, 생애 첫 연주곡은 강렬한 하드록 음악이 아닌 양희은의 포크송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고, 헤어스타일은 장발과는 거리가 먼 3mm 스포츠머리였으며, 처음으로 담배를 피우며 기타를 연주하려고 했을 땐 담배연기가 눈에 왕창 들어간 나머지 눈물을 질질 흘려야만 했다.


문제는, 내가 군대에서 처음으로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2년 정도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제대를 네 달 정도 남겨둔 의경이었다. 헤어지기는 했고, 마음은 헛헛하고, 할 수 있는 건 없고, 그래서 기타를 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휴가를 나왔다가 동생이 집에서 방치해놓은 기타를 부대로 덥석 가지고 왔지만 어떻게 배워야 할지가 막막했다. 방법은 온라인 콘텐츠를 활용한 독학뿐이었다.


그때가 2009년 12월이었다. 지금처럼 유튜브 방송이 국내에서 대중적인 시절도 아니어서 괜찮아 보이는 기타 강의에선 대부분 외국인이 영어로 설명을 하고 있었다. 나는 4년제 대학교에서 영문과를 다녔지만 기타까지 영어로 배우고 싶지는 않았다. 기타도, 영어도 다 어려웠으니까...


한국어로 기타를 알려줄 것, 정말 초보를 위한 강의일 것, 간단한 코드로 쉬운 곡들부터 연주할 수 있어야 할 것. 내가 정한 좋은 기타 연주 강의의 기준은 위와 같았고 숱한 검색 끝에 나는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모 통기타 카페에 올라온 10강 정도 분량의 영상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슬래시 형님이라면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 어느 문화센터에서 진행된, 어머님들을 대상으로 한 기타 수업을 녹화한 비디오였다. 기타를 든 어머님들의 파마머리와 중간중간 손을 들고 질문하는 분들의 모습이 영상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unsplash


기타 선생님이 다룬 첫 곡은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빅뱅의 '거짓말'과 원더걸스의 'Tell Me'와 주얼리의 'Baby One More Time'에 열광하던 나에게 '아침이슬'로만 알고 있던 양희은 선생님의 다른 노래란 참으로 생경하고도 먼 것이었다. 그녀의 포크송을 연주하면서 건즈 앤 로지스의 하드록을 꿈꾸는 일은 산정호수 통기타 라이브 카페에서 우드스톡 록 페스티벌을 그리는 일처럼 느껴졌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나는 군대에 있었으니까.
 

50대 중후반에 푸근한 인상과 체형으로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쓴 기타 선생님은 기타를 '키타'라고 발음하는 분이었다. 그는 'C-Am-Dm-G7' 네 가지 코드만 익히면 이 노래를 연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말 쉽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하지만 C 코드를 잡는 순간 내 손가락은 씨...로 시작하는 욕이 나올 만큼 찢어질 듯이 아팠고, 코드를 시시각각 바꾸는 건 말도 못 하게 힘들었으며, 오른손으로 기타 줄을 튕기면서 왼손으로 코드를 잡는 건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왼손으로 네모를 그리는 일처럼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소리가 정말 최악이었다. 선생님의 기타는 '촤라랑~'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반면 나의 기타는 돌부리 가득한 논밭을 달리는 소달구지처럼 '드륵, 드르륵, 드르르륵' 괴랄한 소리만 냈으니까. 아... 나는 지금 기타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꿈꾸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만 들었다.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발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욱
돌아서는 나~에게 사랑한단 말 대신에
안~녕 안~~녕 목메인 그 한마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양희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가사 中


절망적인 마음으로 영상 속 어머님들과 함께 선생님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는데, 문득 가사가 너무 절절했다. 군대에서 여자 친구에게 차이고 난 뒤 기타를 배우려는 구질구질한 남자에게는 슬래시 형님의 강렬한 기타 리프보다 양희은 선생님의 주옥같은 가사가 더 필요했던 걸까.


이별을 겪으면 노래 가사에 감정이입이 많이들 된다고 하지 않나. (당시 내 친구 중 한 명은 군대에서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애프터스쿨의 '너 때문에'를 들으며 울었다고 했고 나는 그런 친구를 보며 비웃었던 적이 있다...) 'C 코드 때문에 왼 손가락들이 너무 아파서요'라고 핑계 대고 싶었지만, 나는 그냥 울고 싶어 졌다. 어머님들이 합창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지나치게 애절했다. 저기요, 문화센터 통기타 강의가 이렇게 가슴 사무칠 일인가요.


그때부터 기타를 계속해서 연습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문화센터에서 어머님들과 함께 통기타를 배우더라도, 군대에서 홀로 궁상맞게 기타 줄을 튕기더라도 상관없었다. 기타는 내 마음을 울리는, 나를 울리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악기이자 친구처럼 느껴졌으니까. 비록 연인과의 사랑은 차갑게 끝이 났고, 슬래시 형님에 대한 나의 동경도 어느새 사라져 버렸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기타를 치고 있다. 그렇게 기타에 대한 나의 사랑은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중이다.




<누구나 한 번쯤 기타리스트>

우리는 기타를 샀거나, 가지고 있지만 치지 않거나, 구매하고 싶거나, 아니면 언젠가 장만하게 될 사람들이니까.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 기타리스트인지도 모릅니다. 10년 넘게 방구석 기타리스트로 살면서, 기타가 있어서 알게 된 새로움과 기타가 없었다면 몰랐을 유쾌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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