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도, 기타 줄도 영원할 수는 없지만
군대에서 기타를 연습한 지 서너 달 즈음 지났을 때였다. 손톱이 부러지도록 열심히 기타를 치다 보니 어느 순간 가장 가는 줄인 1번 줄이 뚝- 끊어져버렸다. 집에 있던 동생의 기타를 덥석 가져온 것이었는데 그는 기타를 구매한 뒤로 기타 줄을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았다. 나 역시 몇 달 동안 이 기타를 치면서 기타 줄을 갈아줘야 한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 했다.
'기타 줄은 처음부터 끼워져서 판매가 되는 것이고, 그러니 기타 줄이 끊어지거나 문제가 생긴다면 A/S를 해줘야 하고, 아니면 교환/환불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던 나였다. 자동차 타이어를 나 혼자 교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당황스러워하며 어쩔 줄 몰라하던 그때,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배우 조승우가 나타났다.
내가 의경으로 군 복무 중일 때, 그는 옆 생활관에서 경찰홍보단으로 활동 중인 전경이었다. 기타 연주는 그의 취미 중 하나였다. 조승우는 입대 전 록밴드 관련 영화인 <고고 70>에서 일렉기타를 멋지게 연주하기도 했고, 영화 <후아유>에서는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배우이지 않았던가.
내가 내무반에서 기타 줄을 열심히 튕길 때면, 그는 길을 지나가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기타 연주에 대한 해박한 조언들을 해주곤 했다. 나중에 기타 줄이 녹슬면 기꺼이 갈아주겠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저기.. 저번에 기타 줄 갈아주신다고 했었는데요..."
새로 산 기타 줄을 들고 쭈뼛거리며 조승우에게 찾아가자 그는 흔쾌히 내 기타를 받아 들고선 익숙한 솜씨로 나의 기타 줄을 갈아주기 시작했다. 그때 그가 여러 설명들을 함께 해준 기억이 난다. 기타는 생각보다 먼지가 많이 끼니까 기타 줄을 갈 때마다 여기저기 잘 닦아줘야 한다는 것도, 기타 줄을 교체한 뒤에 압축되어 있던 기타 줄이 충분히 늘어날 때까지 계속 튜닝을 해야 한다는 것도, 교체 이후에 버리게 되는 기타 줄은 동그랗게 말아 버리는 게 편하다는 것도, 다 그때 처음 배웠다.
그렇게 새로운 줄로 교체된 나의 기타는 어쩐지 더 대단한 기타처럼 보였다. 아니, 진짜, 조승우가 내 기타 줄을 갈아주다니... 나는 이제 기타 연습 따윈 그만두고, 이 기타를 나의 가보로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순간 고민했다.
그는 나에게 새로운 줄로 탈바꿈한 기타를 건네면서 자주 기타 줄을 갈아주는 게 기타를 아껴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모든 악기는 관리가 필요하다. 기타도 예외일 수는 없다.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습도와 온도에 민감하고, 기타 줄의 장력 때문에 언제든지 기다란 넥 부분이 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적절한 타이밍에 기타 줄을 교체해주고 기타의 이곳저곳을 체크해보는 게 생각보다 중요하다.
요즘도 기타 줄을 갈 때면 가끔씩 조승우를 떠올린다. 끊어진 기타 줄처럼, 그와의 인연도 제대 이후로는 뚝- 끊어져버렸으니까. 영원한 기타 줄은 없다. 사람도 그렇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기타를 칠 수 있게 된 건, 기타 줄을 능숙하게 교체할 수 있게 된 건, 그때의 기타를 지금까지도 보관할 수 있게 된 건,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기타 줄은 끊어져도 기타는 남는다. 인연은 멀어져도 따뜻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기타를 샀거나, 가지고 있지만 치지 않거나, 구매하고 싶거나, 아니면 언젠가 장만하게 될 사람들이니까.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 기타리스트인지도 모릅니다. 10년 넘게 방구석 기타리스트로 살면서, 기타가 있어서 알게 된 새로움과 기타가 없었다면 몰랐을 유쾌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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