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장르에는 노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내가 기억하는 2010년은 바야흐로 기타 전성기였다. 그 중심에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가 있었다. 장재인과 김지수가 함께 부른 '신데렐라'나 강승윤이 부른 '본능적으로'와 같이 기타 연주를 곁들인 노래가 인기몰이를 하던 때였다.
홍대 거리에선 기타를 등에 멘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낙원상가에서는 기타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문도 들렸다. 주변의 친구들은 방송을 보고 난 뒤에 기타를 덥석 사기도 했다. 자신들의 로망을 이루겠다는 다짐과 함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기타는 장롱 면허처럼 장롱 기타로 전락하곤 했지만.
그때 나는 장재인의 열렬한 팬이었다. 수줍게 기타를 들고 슈스케에 처음 등장한 그녀. "의자 하나 드려야 될 것 같은데요." 이승철이 말하자 "아니요, 괜찮아요." 털털하게 대답하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던 그녀. 예상치도 못한 허스키 보이스로 이내 프로듀서의 마음을 빼앗아 버린 그녀. 심지어 자작곡을 부르며 싱어송라이터의 면모까지 보여주던 그녀.
당시에 기타를 열심히 연습하던 나는 장재인이 불러서 화제가 됐던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방구석에서 종종 기타로 따라치곤 했다. 양반다리를 하고 바닥에 앉아 기타를 치면 왠지 그녀처럼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 채.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우리 과의 노래패 학회에서 공연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좁은 방구석을 벗어나 보다 큰 무대에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부를 기회가 그곳에 있었다. 나는 학회원도 아니면서 동기들에게 떼를 썼고, 결국 한 친구와 함께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공연장은 학교의 작은 소강당이었다. 대략 60~70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메웠고 우리는 거의 마지막 순서였다.
집에서 나 홀로 꽤나 연습해 본 곡이었으니까. 친구와 과방에서 한두 번 합을 맞춰본 게 우리 연습의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방구석과 과방을 벗어나 보다 큰 무대에 올라서는 게 그렇게 떨리는 일인 줄은. 나의 양손에선 줄줄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기타 줄을 차례대로 튕기는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연주를 시작했는데 관절에 기름칠이 부족한 것처럼 손가락들이 점점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건가요. 어느새 친구가 노래를 부르던 앞부분이 끝나고 내가 부르기로 한 첫 번째 코러스가 다가왔다.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가사를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나는 공연 도중에 정말로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말았다...
가사도, 코드도, 멜로디도,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슈스케에선 경연자들이 무대에서 자신의 실수에 능숙하게 대처할 때마다 이승철이 종종 칭찬을 해줬는데, 그것도 능력과 실력과 연습량이 뒷받침돼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멈췄다. 무대 위에서 가만히 기타를 든 채 마이크 앞에서 20초 정도 멍을 때렸다.
옆에 선 친구가 제일 먼저 당황을 했고 그 뒤로 관객석의 모든 사람들이 당황을 했다. 보통 실수를 하면 '괜찮아! 괜찮아!' 같은 멘트들이 응원의 개념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침묵을 지켰다. 박진영이 경연 프로그램에서 늘 강조하는 '공기 반 소리 반'이 아닌, 무거운 공기 순도 100%의 무대였다.
나도 놀라고 관객도 놀라고 모두가 놀랐다. 정신을 차리고 이상한 코드로 기타를 두드리면서 이상한 멜로디로 노래를 부르다 보니 모든 것이 끝난 기분이 들었다. 아름다운 세상도 끝났고, 가로수 그늘 아래 서는 것도 끝났고, 다시 없을 나의 첫 무대도 그렇게 끝났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사람들의 연습은 엄청나다. 제한된 시간과 기간 안에 자신의 기량을 뽐내야 하는 만큼 어떤 노래라도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실수를 한다. 120%를 연습해도 100%의 실력이 나올까 말까 하는 게 무대의 진실이니까.
악기는 정직하다. 무대는 소중하다. 노력은 필요하다. 연습은 당연하다. 이것은 지금도 맞고 그때도 맞는 진리다. 적당한 연주 실력은 스테이지 위에선 불편한 연주가 된다. 그럭저럭 하다 보면 그럭저럭도 못하게 망할 확률이 높다.
그 뒤로 나는 어떤 무대도 쉽게 웃어넘기거나 무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하철 역사의 작은 무대에서 통기타로 '무조건'이나 '어머나' 같은 트로트를 연주하는 아저씨 아주머니를 보거나, 한강 벤치에 홀로 무대를 꾸려서 '비 내리는 호남선'을 색소폰으로 부는 할아버지를 볼 때면 마음 속으로 그들을 힘껏 응원한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같은 구간을 반복 연습했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고 자신만의 무대를 위해 수백 번씩 노력했을 무수한 시간들을 떠올려 본다.
트로트든, 포크송이든, 지르박이든, 대중가요든, 모든 장르에는 노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처럼 대충대충 힘들이지 않는 'NO력' 말고.
우리는 기타를 샀거나, 가지고 있지만 치지 않거나, 구매하고 싶거나, 아니면 언젠가 장만하게 될 사람들이니까.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 기타리스트인지도 모릅니다. 10년 넘게 방구석 기타리스트로 살면서, 기타가 있어서 알게 된 새로움과 기타가 없었다면 몰랐을 유쾌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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