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저출산 문제는 출산을 결심하지 않은 여성들의 탓이 아니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 인구 감소에 대한 다양한 우려가 들려온다. 몇 년 전부터 대한민국이 전 세계 출산율 최저라는 말은 심심찮게 들렸지만 주민등록 인구가 감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2020년 말 기준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는 모두 5182만 9023명으로 일 년 전보다 2만 838명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해외 언론에서는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인구 재앙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도 한다. 출생 인구보다 사망 인구가 더 많은 '인구절벽' 상태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국가적 관점에서 이것은 비상사태임이 분명하다.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게 되면 현재 유지되고 있는 다양한 경제 상황이 급변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이런 위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출산을 결심하게끔 만들까? 다들 저출산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게 될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저출산이 위험하다고 해도 이는 국가적 비상상태일 뿐이니까.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문제는 아니니까.
결혼 3년 차에 접어든 나와 아내에게도 이런 식의 '저출산 위험설'은 멀게만 느껴진다. 출산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도 출산을 하게 되면 떠안게 될 여러 종류의 문제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내와 가끔씩 출산 관련 이야기를 나눠보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확인하게 되는 건 출산을 해야 하는 이유보다 출산을 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들이었다. 우리에게 출산은 넘어야 할 산이 아닌 넘지 말아야 할 산에 가깝다.
아내는 출산의 과정, 그리고 그 이후에 감당하게 될 다양한 상황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아기를 갖게 되었을 때 육아휴직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 뒤로 찾아올 약 2년 여 간의 경력 공백은 또 어떻게 채울 것인지, 그리고 출산 후에 겪게 될 다양한 몸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까지, 모든 일이 막막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밖에도 아내에게는 출산을 꺼리게 만드는 여러 문제가 있었고, 나는 내 반려인이자 동거인인 그녀의 걱정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출산은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닐 뿐더러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가족의 행복이니까. 그 행복 속에 출산이 포함될 날이 온다면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곁에 함께하는 반려견도 출산에 대해 현실적인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과 아기를 키우는 것을 동일시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나 외에 다른 생명을 책임지고 기른다는 점에서 그것은 출산 이후의 삶에 대한 예고편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와 함께 직장을 다니면서 반려견을 키우는 건 생각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아침 출근 전에는 부랴부랴 강아지 산책을 나가고 퇴근 후에는 녀석의 밥을 챙겨주고 다시 산책길을 나서야만 했다. 사뭇 평범한 일과처럼 보이지만 이를 어김없이 매일 완수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평일에는 아내와 같이 저녁 약속을 잡을 수도 없고 두 사람이 모두 야근을 하게 되면 어떻게 강아지를 챙길 것인지 고민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이보다 더 큰 책임과 희생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그 무게를 견딜 만큼의 단단한 마음이, 생활의 여유가 아직은 없다.
무엇보다도 내가 출산을 피하게 된 개인적이고도 명확한 이유는 다름 아닌 거주 환경의 불안정성 때문이다. 최근 전세 재계약 시점이 다가오면서 임대인이 이 집에 실거주를 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우리가 이사를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집 주변 전세 시세는 2년 전과는 달리 대폭 인상되었고 다시금 부동산을 전전하면서 새로운 집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가슴은 연신 쿵쾅거렸다. 전전긍긍 세상을 돌아다닌다는 말의 준말이 전세가 아닌가 싶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두 숨 세 숨이 되고. 자연스레 출산은 시기상조가 되었다.
잠시나마 '영끌'을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턱도 없는 일이었다. 우리 가족의 영혼을 끌어모아 통장 속 10원까지 탈탈 털어내더라도 지금의 집값에는 무리였다. 나와 아내의 영혼보다도 집값이 비싼 현실이라니.
우리의 영혼을 있는 힘껏 합쳐도 내 집 마련이 힘든 상황에서 아기의 영혼까지 우리 가족 구성원으로 덥석 추가시킬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아이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려면 부모에게도 안정적인 보금자리가 필요하다. 2년마다 이사를 가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믿음직한 보금자리 말이다.
내 주변엔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친구들이 꽤나 많다. 일련의 어려움을 겪고 나니 그들의 결심이 결코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출산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족이라는 것이 꼭 아이가 있어야만 완성되는 것도 아니니까. 결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아이가 있거나 없거나, 세상에는 수많은 가족의 형태가 존재할 수 있다. 틀린 가족의 형태는 없다. 제각기 다른 형태의 가족만이 있을 뿐.
출산은 누군가 강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개인들의 선택지 중 하나이니까. 혹자는 결혼을 했으니 아이를 꼭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출산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출산은 응당 그래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유형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우리 집을 리모델링한다고 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 것처럼, 한 개인이 가족 구성원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제삼자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거실에는 반드시 TV를 설치해야 한다는 법이 없는 것처럼 가족의 모습도 그러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내 집을 꾸밀지는 내가 결정할 일이다. 내 가족 구성원을 꾸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출산과 양육에는 개인적 희생이 요구된다. 그런데 사람들의 고통은 어느새 희석되고 출산이 필요하다는 당위만 덩그러니 남게 된 것 같다. 인구절벽의 위험성을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는 개인이 마주한 각기 다른 모습의 절벽은 어쩐지 빠져 있는 것 같다.
건강한 미래를 위해선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 미래는 누구를 위한 미래인 것인지 모호하다. 언젠가 우리 가족이 출산을 결심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당장 위기에 빠지는 것은 아닐 테다. 오히려 지금 당장 출산을 하는 게 우리를 위기에 빠트릴지는 몰라도.
결혼은 출산을 위한 전초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두 사람이 만나 더욱 튼튼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마련한 합법적 제도,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느 누구도 아이를 반드시 낳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 때, 누구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세상이 찾아온다고 믿는다. 지금의 저출산 문제는 출산을 결심하지 않은 여성들의 탓이 아니다. 출산을 그 어느 때보다도 도전적인 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모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