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승철 Feb 24. 2023

인간의 존엄성을 철학으로 가지고 있는 나라 9-5

인간의 존엄성을 국가철학으로

3개월 정도의 수업동안 나는 수업에서 처음으로 덴마크의 복지 시스템에 대해 수업에서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덴마크 복지에 대한 궁금증을 바로 덴마크 교수님께 물어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당시 정말 호기심이 많았다. 바로 직전 미얀마에 있을 때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더 하나라도 배우려는 주경야독하는 미얀마 국회의원들을 보고 저렇게 배움의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교수님께 찾아가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특히 정책이란 그 나라의 사회와 문화와 굉장히 많이 연계되어 있고 그 나라 안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책의 수혜를 받는 입장에서 느끼는 것, 그리고 대화를 하다보면 책에서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알수가 있게 된다.


교수님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며 덴마크 복지에 관해 많은 것들을 배워갔다. 동시에 덴마크 친구들과도 학생들, 청년들의 입장에서 너희 나라의 복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은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같은 것들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덴마크 친구 한명 한명에게 덴마크 청년들은 왜 행복한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적어도 내가 본 덴마크 친구들은 정말 행복해보였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계속 질문하는 것은 그 사회가 가진 철학을 찾기 위해서였다. 정책이란 제도이고 제도는 결국 국가와 시민들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가 발현되는 사회 정치적 산물이었다. 그래서 정책과 제도를 따라 밑으로 들어가면 그 뿌리가 박혀있는 토양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했다. 그걸 나는 국가철학이라고 불렀다. 국가의 철학이 없이는 외국의 무슨 좋은 제도를 가져와도 바위 위에 심는 나무 같은 것 밖에 되지 않는다. 토양이 없으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시들어 죽고 만다.


덴마크 복지가 뿌리내리고 있는 그 근본 토양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중에 어느날 내 뇌리를 스치는 말을 들었다. 그날은 덴마크 친구들과 왜 덴마크가 행복도 세계 1위인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을 때였다.


"덴마크에서는 거지가 되어도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어, 우리는 우리가 실패해도 모든 재산을 잃어도, 아파서 일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인간답게는 살아갈 수 있는 확신이 있어"


그렇다. 덴마크에서는 미혼모가 되어도, 실직되어도, 갑자기 몸을 다쳐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도, 장애가 생겨도 모두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복지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


예전에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이병헌은 자신이 노비였음을 밝히며 김태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귀하가 구하려는 조선에는 누가 사는 거요? 백정은 살 수 있소? 노비는 살 수 있소?”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과연 이 땅에는 누가 살 수 있는 것인가? 미혼모는 살 수 있는 건가? 장애인들과 갑자기 실직된 가장과 그의 가족들은 살 수 있는 건가? 1평짜리 창문 없는 고시원에 사는 청년들, 독거노인들, 청소년 가장들 그리고 가족과 직업, 삶의 희망까지 잃은 노숙인들은 살 수 있는 것인가?


내 대답은 “살 수 없다”이다. 우리나라에서 경쟁력이 없거나 잃은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아갈 수가 없다. 사회적 편견도 그렇고 그들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힘이 없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나라는 일반인들조차 제대로 살기가 힘들다.


그래서 덴마크 친구에게 거지가 되어도, 가진 것을 다 잃어도, 한순간에 실직자가 되거나 장애인이 되어도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인간의 존엄성', 덴마크의 근본 국가 철학


결국 덴마크 복지체제가 뿌리를 두고 있는 국가 철학은 "인간의 존엄성"이었다. 인간이 최소한 인단갑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국가와 국민들의 철학이 있었고 그것이 복지 정책과 제도로 발현된 것이다.


갑자기 모든 것을 잃고 노숙인이 되어도 다시 사회에 기여하는 하나의 일원으로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국가와 사회는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덴마크의 복지 시스템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개개인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배려해준다. 그래서 노인들, 미혼모들, 청소년 가장들 등의 일반적인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이 덴마크 사회에서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다.


이처럼 덴마크의 복지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철학 위에 세워졌다. 또한 덴마크는 이 철학을 모든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다. 즉 국가를 구성하는 원대한 기초이다. 그만큼 한 국가가 가지고 있는 철학은 가장 중요하고 위대하다.


이제 덴마크로 갈 준비를 하다


덴마크 복지 제도와 철학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직접 덴마크로 가서 그 사회를 관찰하고 덴마크 복지 정책의 권위자를 찾아서 심도 있는 연구를 해야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목적은 덴마크식 복지와 철학을 어떻게 한국의 상황에 맞게 만드느냐였다. 덴마크와 한국의 상황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하나 비교하며 분석해나갈 참이었다. 또한 가장 큰 문제는 복지에는 돈이 들기 때문에 세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체제를 그대로 가지고 오는 것 보다는 그 중심이 되는 철학을 가져와 한국에 맞게 살을 붙여나가면 될 것 같았다.


'인간 중심의 한국식 복지제도를 만들고 싶다'


어느 누구도 어떠한 상황이 생겨도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나라가 내가 만들고 싶은 나라였다.


나는 곧바로 나와 친했던 덴마크 교수님을 찾아갔다. 그에게 이번 중국에서 1년의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덴마크로 가서 복지 연구를 하고 그걸로 학위 논문을 내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는 나에게 덴마크의 복지 연구의 저명한 교수님이 운영하는 연구소에 나를 소개시켜 주신다고 하였다. 덴마크의 사회는 약간 폐쇄적이고 현지 인맥이 있지 않으면 이러한 기회를 잡는게 쉽지 않다고 하였다. 나는 다행히 그 교수님의 주선으로 덴마크의 연구기관에 있는 교수님과 연락이 닿았고 2019년 하반기에 덴마크의 연구소에서 그 교수님과 한국-덴마크 복지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기로 확정을 지었다. 덴마크 복지에 권위있는 교수님의 지도를 받는다면 좋은 연구 결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덴마크 복지를 제대로 연구할 수 있겠구나...'


몸이 이상이 생겨오다


모든 것들이 잘 준비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몸에 힘이 쫙 빠졌다. 두통과 함께 갑자기 약한 기침들을 하기 시작했다. 워낙 건강했던 나였기에 처음에는 단순 감이라고 생각하여 방치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환경을 위해 프린트도 안하는 덴마크 친구들 9-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