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시험 중에 한 과목은 서로 다른 주 체제를 비교하는 과목이었다. 나는 미얀마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를 하였고 중국의 민주주의 또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민주주의로 주제를 정했다. 다만 3명의 팀을 꾸려야 했기 때문에 나와 가장 친했던 덴마크 친구와 중국 여학생과 팀을 꾸리게 되었다. 그들은 지난 3개월동안 나와 한시 떨어져 지낸적 없는 내 형제같은 친구들이었다. 또한 이 중국 여학생은 중국인이지만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홍콩의 민주주의 시위가 일어났을때 VPN으로 인터넷을 우회하여 넷플릭스에서 하는 홍콩의 민주화 시위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참고로 중국은 자신들의 사상을 지키기 위해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톡, 텔레그램, 왓츠앱, 유튜브 등을 막아놓고 정보를 통제하고 있었다. 당연히 홍콩의 민주주의는 검색이 안되는 금기어이자 어느 곳에서도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다.
신기한 덴마크식 시험
덴마크의 시험의 특성은 리포트를 제출하고 일주일 후에 혼자서 2-3명의 교수 앞에서 리포트에 대하 발표하는 구술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술 시험 전 리포트를 쓸 때 교수님들과 시험 2주 전에 몇번씩 만나 30분간 주제와 내용, 그리고 방향성에 대해 토론을 하며 피드백을 받았다. 나는 처음에는 교수의 피드백에 무조건 Yes라고 답하였으나 같은 팀원이었던 덴마크 친구가 덴마크에서는 교수의 의견에 무조건 Yes라고 하기보다는 정말 자기 생각이 맞다고 생각되면 때로는 No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해야 한다고 하였다.
"아무리 권위있는 교수라고 하더라도 교수의 의견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해"
덴마크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이는 덴마크 특유의 학생과 교수간의 수평적 문화에서 기인한다. 이 수평적 문화는 곧 창의성으로 이어져 아무리 권위 있는 교수의 의견이라도 100% Yes라고 말하지 않고 정말 옳은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덴마크는 자기 생각이 교수와 다르면 정말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문화이다. 그리고 교수도 학생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주장에 귀를 기울여준다.
또한 그룹이 아니더라도 2주의 시험준비 기간 동안 각자 교수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날짜를 공식적으로 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외에 더 논의하고 싶으면 자연스럽게 연락하거나 교수를 찾아가서 주제에 대해 대화하였다. 약속을 잡아도 되지만 보통 교수들은 방문을 활짝 열어 놓아 공부하다가 가서 궁금한 게 있으면 문을 노크하고 시간이 괜찮으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연스럽고 수평적인 문화는 필자가 한국이나 영국에서 공부하면서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학문적 자유스러움이었다. 그리고 그 학문적 자유속에서 필자는 지식의 해방을 느낄 수 있었다.
교수와 맞짱을 뜨다
2주 동안의 시험준비 기간이 끝나고 팀원들과 공들여 작성한 리포트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나는 사실 시험이 끝났다는 기분으로 덴마크 친구에게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 친구는 시험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일주일 후의 발표 시험에서 리포트를 포함한 최종 점수가 정해지니 그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팁을 알려주었다.
“구술시험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쓴 리포트를 분석하여 교수가 말하기 전에 부족했던 부분을 찾고 스스로 비판하고 보완점을 찾아야 해”
만약 리포트를 잘 쓰지 못했더라도 이 시험에서 점수를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리포트의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잘못되었으면 그 부분을 정확하게 5분간 주어지는 발표시간에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보완할 이론이나 데이터가 있으면 그 부분을 찾아서 발표해야 한다. 교수가 먼저 부족한 부분을 비판하게 되면 점수가 깎일 수 있다."
우리는 리포트를 제출한 다음 날부터 다시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우리 논문의 부족한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비판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이때가 리포트를 작성할 때보다 더 힘들었다. 우리는 다른 논문들과 책들을 읽으며 그리고 계속 의견을 나누며 우리의 리포트를 하나하나 분해해 분석하였고 어느 정도 보완할 곳을 찾아내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시험 준비 기간에 교수님은 우리가 쓴 한 문단의 주장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고민은 이 문단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고 다른 대안을 찾느냐 아니면 교수님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의 주장을 더 강화할 것들을 찾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교수님과 맞짱을 뜨기로 하였다. 한국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덴마크 친구의 말에 의하면 구술시험에서는 비판하는 교수님을 설득시키면 더 놓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설득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점수를 깎이게 된다.
리포트를 제출하고 일주일이 지나 구술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우리 팀원은 각자 따로 순서대로 시험장에 들어갔다. 시험장에 들어가니 두 분의 교수가 있었다. 필자는 교수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간단한 요약과 우리 리포트의 부족한 부분들을 말하였고 개선해야 할 점들을 말하였다. 다행히 교수들은 내 주장에 끄덕이면서 그 부분이 이상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한 교수의 의견에서 우리 주장과 맞지 않는 부분이 나오게 되었다. 교수는 중국의 민주화를 불가능으로 보았고 우리는 중국에 언젠가는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것임을 주장하였는데 근거로는 불평등 지수를 보완점으로 내세웠다. 결국 치열한 토론 끝에 교수님을 설득할 수 있었다.
덴마크 구술시험은 시험이 끝나고 바로 점수가 나온다. 그래서 시험이 끝나고 필자는 잠시 방을 나오게 되었고 5분 후 다시 들어가 교수님들의 피드백을 듣게 되었고 점수를 받았다. 점수는 95점부터는 만점인데 96점을 받았다. 이렇게 필자의 새로웠지만 치열했던 덴마크 시험이 끝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