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극단에서 벗어나 프랑스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한 마크롱 대통령
프랑스에 있었을 당시 2019년의 2년 전인 2017년 5월, 프랑스 정치사에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다. 바로 39세에 대통령에 당선된 마크롱 대통령의 등장이었다. 내가 프랑스에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준 사람이기도 하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금 내가 공부하고 있는 파리정치대학 출신이고 그를 따라 마크롱의 정당인 "앙마르슈"를 만들었던 청년들도 파리정치대학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20, 30대 소수의 청년들이었다.
나는 마크롱의 정당인 앙마르슈를 잘 알아보기 위해 파리정치대학 앙마르슈에 가입하였다. 각 대학마다 앙마르슈 정당이 있었고 페이스북으로도 가입하여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때로는 그들의 지역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고 토론회도 나가 그들이 어떤 주제로 토론을 하는지 어떤 활동을 하는지 관찰하였다. 내가 이렇게 관찰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마크롱 대통령과 청년들이 어떻게 정권을 창출하였는지 그 방법을 알아보고 싶었다.
중도 성향의 마크롱은 기존의 전통적 양당이었던 좌파 사회당, 우파 공화당이 계속 집권해온 프랑스의 정치 체제를 뒤집어버렸다. 이러한 프랑스의 정치 상황에서 거대 양당을 제치고 중도 성향의 마크롱이 대통령이 된 것은 프랑스 정치 역사상 충격적 이벤트였다.
마크롱의 등장은 사실 국민들이 좌파 사회당과 우파 공화당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우파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는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로 인한 프랑스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긴축 정책을 시행하였지만 전용기 구매에 3,800억원, 엘리제 궁에서 하루 식비를 약 1,700만원 정도를 사용하는 등 국민들이 보기에 사치를 일삼았다.
실망한 국민들은 그 이후 등장한 좌파 사회당 출신 올랑드 대통령을 선택하였다. 그는 법인세 인상, 부유층에 대한 75% 과세, 동성결혼 합법화, 정부 주도 공공 일자리 창출, 노조 강화, 각종 보조금 등의 정책을 시행하겠다며 표를 얻었다. 문제는 프랑스는 이미 복지에 지출을 많이 하는 국가 중에 하나였고 경제상황이 나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급격한 지출은 포퓰리즘 정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올랑드의 정책은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한다기 보다는 표와 인기를 얻기 위한 보여주기 식 정책이었다. 공공 일자리 또한 급조한 것이라 취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경제 위기로 시장이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인세와 각종 기여금 부과 등 반기업 정책은 경제를 더욱 위축시켰다.
결국 프랑스의 실업률은 높아졌고 청년 실업률은 24%이상 치솟았다. 실업자는 오히려 올랑드 집권 이후 63만명이 더 늘어났다. 법인세의 급격한 인상으로 기업들은 다른 유럽국가로 쉽게 떠났다. 올랑드의 지지율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 초반까지 떨어지자 지지율과 경기 침체를 반전시키기 위해 올랑드 대통령은 자신의 대통령 선거 캠프 당시 경제 참모였던 마크롱을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으로 발탁하여 친기업, 친시장 정책으로 전환한다. 당시 마크롱은 장관직을 맡으면서 올랑드 대통령에게 앞으로 경제정책은 간섭없이 자신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올랑드의 묵인하에 좌파 사회당 정권에서 마크롱은 노조에 치우쳐진 힘을 기업과 맞추었다. 법인세 감면, 각종 규제 철폐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갔다. 특히 프랑스는 일요일 및 심야에 영업이 불가하였는데 파리를 포함한 주요 관광도시 상점들은 일요일 영업 제한을 풀고 심야 영업 또한 가능하게 하였다.
하지만 사회당 내부 및 지지자들이 올랑드 정권을 극렬하게 비판하며 마크롱은 조직의 배신자로 내몰리게 된다. 한때는 아들과 아버지로 불렸던 올랑드와 마크롱은 사이가 급격히 틀어지며 마크롱은 장관직에서 사임했다. 그 후 마크롱은 차기 대통령이 되어 못다 한 프랑스의 경제개혁을 이루기 위해 고향에서 그 유명한 청년들이 중심이 된 앙마르슈를 만들어 대통령에 당선된다.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는 우파 사르코지 정권과 좌파 사회당 정권을 거치면서 사치와 부패, 그리고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프랑스인의 긍지가 무너지고 경제가 만신창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인들은 스스로 2류 국가의 2류 시민이라고 불렀다. 그 와중에 마크롱이 프랑스를 다시 예전처럼 회복하여 유럽 내 리더 국가로서 그리고 다시 경제대국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국민에게 심어주었다. 그리고 마크롱은 좌우에 치우치지 않으며 프랑스의 현실 문제들을 정확히 인식하고 해결책을 국민에게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