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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스 Aug 16. 2022

미국의 경계 넘기

미국과 한국의 경계에서 I


미국인이랑 결혼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야.
 

4년 전 미국으로 유학을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들었던 말이다. 그 당시 나에게 유학은 한국에서 더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학생비자로 유학생활을 막 시작한 단계이기 때문에 비자와 관련된 문제도 없다고 생각했다. 27년 간 한국에 살았고 모든 가족과 친구들이 한국에 있는 나로서는 굳이 미국에 정착할 이유도 없었다. 따라서 미국인이랑 결혼하면 영주권으로 비자 문제를 해결하고 미국에서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을 것이라며 푸념하는 한국인 선배들의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이제는 그 말 뜻이 무엇인지 안다. 같은 학생 신분이어도 미국인과 외국인은 큰 차이가 있다. 여러 장학금들은 자격조건을 미국인으로 한정하고 있으며, 특히 내가 있는 워싱턴 DC 근처에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회들이 많다. 도시이기 때문에 물가가 높은데도 우리 학교에서는 금전적 지원이 아주 적은 편인데, 돈이 부족해도 내가 가진 학생 비자로는 추가로 아르바이트조차 할 수 없다. 좋은 인턴 기회를 얻어도 교수님의 추천서와 회사의 레터를 제출하여 허가를 받아야 한다. 나는 미국 기업이 아닌 국제기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도 허가를 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으이구, 내가 미국인이 아닌 게 잘못이다!


당연한 거다. 나는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느끼지 못했을 뿐, 한국에서 또한 외국인이 유학 와서 쉽게 경제활동을 하거나 직업을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현저히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지치다 보니 짜증이 났다. 내가 미국인이었으면, 혹은 여기가 한국이었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들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도 했다. 어디선가 무슨 방법이 생겨서 모든 비자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말했구나.


저런 말을 한다고 해서 진짜로 영주권을 받기 위해 미국인을 만나 결혼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주변에서 보지는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고, 마침 그 사람이 미국인인데 우리가 미국에 살아야 한다면 비자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니까 좋은 거다. 미국에 취업해서 정착하길 바라는 한국인 부부 입장에서는 둘 중 한 명이 미국인이었으면 우리의 미국 정착이 얼마나 쉽고 편했을까 푸념할 수 있다. 그만큼 외국인으로서 이 나라에 정착하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미국은 외국인이 정착하기 가장 쉬운 나라들 중 하나이다. 처음부터 이민자들이 건국한 나라이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고, 아직까지도 이민자들(혹은 영주권자들)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국인이 미국인과 동일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미국 시민권을 따서 법적으로 미국인이 된다고 해도 몇 세대 이상 미국에 살아온 '기존' 미국인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는 것은 쉽지 않다. 



Where are you from?

나에게는 당연한 질문이다. 나는 실제로 미국 사람이 아니고 '미국인'처럼 보이지 않으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I'm from Korea"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BTS부터 오징어 게임까지 본인이 아는 한국에 대한 모든 것을 나에게 털어놓는다. 나에게 한국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을 수도 있고, 단순히 나와 공통 주제가 없어서 생각나는 것을 말하는 걸 수도. 나도 싫지 않다. 우리나라 문화가 이렇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까지 알려져 있다는 게 조금 뿌듯하기도 하고, 적어도 내가 아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담긴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 것은 교포인 남자 친구를 만난 후부터였다.


D: Where are you from? (어느 나라에서 왔니?)
B: I'm from Virginia. (나 버지니아 출신이야)
D: No, where are you originally from? (아니 원래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B: I'm originally from Florida. (나 원래 플로리다 사람이야)


함께 탄 우버에서 드라이버(D)와 남자 친구(B)가 나눈 대화다. 실제로 남자 친구는 한국인 부모를 둔 2세 교포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뿌리에 자부심이 있고 한국 문화를 자주 접하기 때문에 스타일도 한국인과 유사하다. 하지만 그는 분명 미국인이고, 한국은 태어나서 딱 두 번 방문하여 한 달 정도 여행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미국인인데도 불구하고 늘 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질문을 마주한다. 미국에는 워낙 다양한 이민자들이 있어서 모두가 서로 이런 질문을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아래 링크의 영상이 유색인종 미국인들의 고충을 정말 잘 보여준다. 한 때 유명세를 탔던 Ken Tanaka의 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WynJkN5HbQ

  

물론 위와 같은 영상이나 밈들이 인기를 얻고 인종차별에 대한 이슈가 대두되면서 많은 이들이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예 편견이 없는 사람들도 꽤 많다. 21살 때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왔던 시절, 영어를 정말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보스턴 출신이냐고 물어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국에서는 소수민족(minority)으로 사는 것이 다수(majority)에 속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는 비단 미국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적용된다. 중요한 건 내가 미국에선 절대로 "다수"에 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이방인이다. 미국에 정착한다고 해도 아마 내가 미국 시민권을 획득할 일은 없을 거다. 한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저 영주권이 있는 외국인으로 살 예정이다. 따라서 이방인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미국인처럼 보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그들 구성원들 중 한 명이 되어야 한다. 이방인이지만 미국 사회에 적응을 잘하고 사회활동을 하는 데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은 내가 미국에 정착하는 게 맞는 건지 결정하지 못했다. 유학생이고 졸업이 몇 년 남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다. 남자 친구와도 한국 귀국, 미국 잔류, 제3 국 정착 등 다양하게 논의하고 있고 그도 꽤나 열려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이곳에 정착을 한다면 미국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다. 





사진 출처: KORUS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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