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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스 Sep 07. 2022

그 유명한 MBTI

나를 모르기 위한 두 번째 노력

전문 지식 없이 오로지 개인적인 생각으로 써 내려간 글입니다. 




ESFP-A 자유로운 영혼의 연예인

나의 MBTI다. '자유로운 영혼의 연예인'이라는 표현은 좀 당황스러웠지만, 설명을 읽어봤을 때는 꽤나 맞는 결과다. 특히 대체로 '즐거움'이나 '재미'가 중요하고 갈등 상황이나 심각한 문제 해결을 즐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검사 결과가 제대로 나왔다고 생각한다. 


"주저하지 말고 매 순간을 즐겨라."


검사 결과의 가장 위쪽에 나오는 문구다. 20년 동안 유지해 온 나의 좌우명은 '즐기자'이다.  나의 이상형 또한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다. 이 보다 더 완벽한 성격 검사는 없지 않은가.


어디선가 ESFP에 대한 설명을 읽을 때면 '이건 정말 나다'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유튜브에서 봤던, 'ESFP들은 스스로가 ESFP라는 사실을 좋아한다'는 댓글조차 맞다고 생각했다. MBTI로 사람들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했다거나 유형별로 어떤 특징이 있는지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드디어 AB형 이외에 내 성격을 설명하는 재밌는 구분이 또 나왔다고 생각하면 흥미로웠다. ESFP들은 이런 게 부족하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이렇게 해봐라, 하는 조언들도 나도 모르게 마음에 새기고 몇 번 실천해보기도 했다. 


나와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나와 같은 MBTI가 나왔다고 했을 때부터 약간 의심의 눈초리로 다시 한번 각 성향들을 살펴보았다. 


'뭐야 우리 둘이 성격이 같다고..?' 


서로가 '넌 참 대단한 것 같아'라고 말하며 우린 참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같은 성격 유형의 사람이었다니. 자세히 보니 친구는 P와 J의 비율이 거의 비슷했고 나는 상당한 P형 인간이었다. 친구가 높은 S 비율을 자랑하는 한편, 나는 가끔 S가 N으로 바뀌어 나오곤 했다. 같은 선택을 했을 때도 그 이유가 달랐고, 조금씩 다른 이유들이 합쳐져서 완전히 다른 결과를 얻기도 했다. 인간을 16개의 성격으로 구분하다니 말도 안 된다고 불평하는 다른 친구(그는 ISTJ다)의 말처럼, 같은 ESFP라고 해서 성격이 같을 리 없었다. 


이후에 MBTI 결과를 나의 성격에 맞추어 다시 해석해 보았다.   


1. 외향형(E) vs 내향형(I)

나는 어린 시절에 비해 성격이 상당히 바뀌었다. 어릴 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친구에게 인사하는 것도 어려워할 정도로 내성적이었다. 어머니께서 주차하는 동안 먼저 병원에 가서 접수하라고 말씀하시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이 아이가 대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게 될지 걱정이 된 어머니께서는 식당에서 물이나 반찬 리필 등을 나에게 시키셨는데, 식당 아주머니를 부르지 못해 물을 마시지 못한 적도 있다. 


이렇다 할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그리고 성인이 되면서 내 성격은 급격하게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노래를 할 때, 예상했던 것보다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즐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만 쳐다보는 친구들의 눈동자들이 좋았다. 더 많은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도 좋고, 무언가를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게 나와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친구에게 인사를 해도 큰일이 나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받아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도 둘보다는 여럿이 좋고, 누군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일을 내가 할 때 나름대로 쾌감도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을 만나면 에너지가 생기고, 오랜 시간 혼자 있으면 기운이 빠진다. 


하지만 가끔은 나도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난 뒤 주말에는 혼자 누워서 쉬는 것도 좋다. 혼자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보고 싶은 영화들을 보다 보면 그 안에서도 에너지를 많이 얻는다. 연인이나 가족과도 매일매일 붙어서 모든 시간을 함께하면 기운이 빠진다. 나 혼자 있는 나만의 시간을 조금 즐기고 싶다. 놀랍게도 이 정도의 내향성으로는 I 성향이 단 11%밖에 나오지 않나 보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I의 성향도 강하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2. 직관형(N) vs 현실주의형(S)

가장 모호한 영역이다. 시간이 많고 생각이 많을 때, 감명 깊은 영화를 봤거나 책을 읽었을 때는 직관형이 나온다. 평소에는 철학적이거나 추상적인 사안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다소 귀찮아하는 경향이 있다. 가끔 인생의 의미나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도, 지금 이 생각이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이 들면서 더 이상의 탐구를 멈춘다. 하지만 양적 분석을 자주 하는 내 업무에 지칠 때면 숫자로 측정하거나 옳고 그름이 없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그날그날의 상황에 따라 성향이 바뀔 수 있는 거다. 


다만 직관형이 나오는 경우 나의 MBTI는 그 유명한 ENFP가 되는데, 천진난만 대형견 같은 ENFP의 매력이 나에게는 별로 없는 것 같아서 S에 더 맞다는 생각도 든다. 


3. 사고형(T) vs 감정형(F)

나는 내가 완전한 감정형이라고 생각한다. 일의 진행이 빠르고 효율적일지라도 누군가의 감정이 다치는 순간 그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생각 없이 한 말에 상대가 상처받을까 봐 질문을 아끼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이 소중하고, 나도 모르게 지나가버릴까 봐 최대한 느끼고자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땐 어떻게 해야 할지보다는 그 사람 기분이 어떨지에 대해 주로 생각한다. 나와 아주 가까운 (부모님, 남자 친구, 소수의 친구들) 사람들은 내가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인들은 나를 사고형이라 여긴다. 사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는 나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약한 모습이나 감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일 수록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 신경 안 쓰는 척, 괜찮은 척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을 대할 때 나오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성격일 수도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느끼기에 내가 사고형 인간이면 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4. 계획형(J) vs 탐색형(P)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다이어리를 써왔다. 다이어리에는 그날의 기분이나 경험을 담은 일기도 쓰지만 해야 할 일과 스케줄을 계획하여 쓴다. 매일 잠에 들기 전 다음 날을 거의 분 단위로 계획한다. 미리 잡힌 일정들을 중심으로 중간중간 남는 시간에는 어떤 일을 할지 정해둔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즐겁다. 할 일이 너무 많아 혼란스러울 때, 내일 당장 해야 할 일이라도 계획을 세우면 조금 안정이 된다. 


하지만 여지없이 나는 탐색형 인간이기도 하다. 내 딴에 열심히 계획을 한다고 해도 계획형 인간의 눈으로 볼 땐 충동적인 하루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갈 때, 나는 숙소와 비행기만 예약하고 간다. 유명 맛집을 가는 것보다는 길을 걷다가 눈이 마주친 할머니가 하시는 아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다. 덥거나 더럽거나 너무 별로일지언정, 미리 모든 후기를 다 읽는다든지 로드뷰를 확인하고 여행을 가는 등의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여행의 본질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고생을 해도 그 과정이 모두 추억이고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축구경기나 공연 등은 어쩔 수 없이 미리 예약을 하지만.. 


일을 할 때는 J형, 놀 때는 P형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소 충동적이거나 덜렁거리는 성격이기 때문에, 일을 할 때 내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업무를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여러 대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 혼자 쉬거나 놀 수 있을 때에는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기 때문에 굳이 실수할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일이 잘못되어도 그건 내가 감수하면 되는 거니까.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을 때 즉흥과 더 친해지기 때문에 검사에서 P의 비율이 더 높게 나온 것 같다. 

 



사실 mbti 결과는 내가 선택한 그대로 나온다. '나는 외향적이에요'라고 선택했기 때문에 외향형이라고 나오고, '계획보단 즉흥이 좋아요'라고 했기 때문에 계획형보단 탐색형이라고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한 결과라기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혹은 내가 추구하는 나의 성격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거다. 그런데도 나는 ESFP라는 정의 속에 완전히 들어와 버렸다. 스스로 이 유형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 더더욱 스며들고 있다. 하던 일이 잘 마무리가 되지 않으면 '맞아, ESFP들이 쉽게 질리고 끝을 잘 못 낸다던데, 그래서 내가 그런 건가'라는 생각을 한다. '이번 일은 잘 안되었지만 다음엔 잘 마무리하고 장기적인 결과를 내보자!'라고 좋게 마무리할 수도 있는 것을, 내 성격 탓을 하면서 '원래 마무리가 잘 안 되는 사람'으로 나를 정의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지만 혼자만의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을 때도 많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지만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생각하고 탐구하는 것을 즐긴다. 감정을 가장 중시하지만 다른 이들이 볼 땐 사고적인 면이 부각된다. 즉흥과 충동을 즐기고 추구하지만 업무를 수행할 때는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과정을 즐긴다. 즉 총 8개 항목 중 나에게 가장 맞는 4개를 뽑아내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MBTI가 대유행을 하면서 적절하지 않게 MBTI 결과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꽤 봤다. 다른 이들의 말에 공감하지 못하고 무례한 말을 하면서 본인이 'T'형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합리화를 하거나, 주어진 일을 하지 않고 온종일 누워있는 것이 'P'형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MBTI는 나와 주변 사람들의 성향을 이해하기 위한 재미있는 여러 도구들 중 하나일 뿐, 인종이나 성별처럼 정확하게 사람들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나도 모르게 알파벳 4개로 정의된 나의 성격을 깊이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추어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나의 성격을 몇 가지 문항에 대한 답을 통해 정의 내리기보다는, 여러 가능성을 가지고 상황에 알맞게 변화시켜 가면서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나를 모르기 위한 두 번째 노력이다. 



정확히 말하면 제 MBTI는 ESFP-A이지만 마지막 항목에 대해서는 많이들 이야기하지 않고 저 스스로도 잘 모르겠어서 그 부분을 쏙 빼버렸습니다ㅎㅎ


어떤 이는 저의 이러한 글조차 참 ESFP 답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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