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세까지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일하고 싶다.
2003년 네트워크전문가로서, 꿈을 꾸여, 맡은 업무 즉 데이터센터 이전(모든 작업은 각자 맡은 담당자가 수행함)과 새로운 장비, 기가비트 스위치, 인터넷 ADSL 장비, L4 스위치 등 테스트를 하면 밤새는 줄 모르고 일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에 선배님께서 야근 중인 저에게 전화를 주셨다. 현대자동차 CIO조직으로 가서 일해볼 생각이 있는지 물으셨다. 나의 현재 모든 네트워크 전문가의 꿈을 접고, 기획부서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해외 근무기회도 많은 조직 현대자동차 정보기술총괄본부 글로벌 IT 기획팀 인프라 기획 담당자로 제안을 받았고, 퇴근하신 선배님들께 전화로 연락하여 자문을 구하고자 다시 회시로 오셨으면 했는데 전부 다시 회사로 돌아오셨다.
그 시절에는 회사 선후배는 참 인간적인 시절이었다. 그것도 그러한 것이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회사에서 선후배 간에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던 시절이었으니, 선배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며,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여쭈어 보았고 선배님들은 진심으로 후배인 저를 위해서 마음속의 이야기해 주셨다. 넌 기획업무를 더 잘할 거야. 한번 도전해 보렴. 매일 네트워크작업으로 밤샘하던 후배에게 스스로 알고 있지 못한 내 역량을 이야기해 주시니, 괜히 기분도 좋고 부서 이동에 대한 주저하던 결심을 하기에 힘이 많이 되었다. 그날은 선배들과 만취를 했지만,..
그다음 날, 차장선배님께 저의 의사를 말씀드리고, 그동안 내가 하던 업무를 후배들에게 하나 둘 나누어 주고 있었다. 다만, 실무자의 그룹전출은 결정이 났는데, 임원 한 분은 그룹회장님 결재가 있어야 해서 인사발령이 수개월째 연기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노무현대통령 고등학교 동문인 임원을 다시 자동차로 인사발령 내는 것이었다. 기업을 하는 사람과 조직은 정치와 밀첩 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된 시절이었다.
나는 양재사옥에서 근무하면서 회사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고 고민하게 되는 시발점이었음을 ㅎㅎ
현대자동차 CIO스탭부서에서 새로운 꿈을 안고 출근해서 맡은 업무는 인프라 기획업무인데, 이놈의 기획업무는 정해진 업무가 없다. 그 시절 생산, 판매, 연구, 정비, 품질 등 자동차 전체 업무별로 IT기획 담당자가 근무하고 있었고, 옆에 부서에서는 현대기아자동차 IT예산을 관리, 집행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연구소 IT업무는 IT계열사에 이관하지 않고 남양연구소에 IT부서로 근무하는 2실, 1 사업부, 1 본부 조직이었다.
근데, 그 시절이 마침 팀장님이 새로 같이 오셔서 근무할 때인데, 그분이 북미 IT법인 법인장으로 가실 분이라, 특별한 오더가 없는 시절이어서, 매일 선배들에게 투덜 되던 시절이었다. 난 업무에 hungry 한 사람인데, 업무에 대한 지시도 없고, 매일매일 빈둥되는 것 같이 넘 화가 나던 시절이었다.
선배 한분이 기획업무를 위해서 자료하나를 주신다. 그분은 현재 현대차그룹 임원으로 근무하고 계신다. 몇달에 한번씩 얼굴을 보며 지내는 분이기도 하다. SLA/SLM 에 대한 백서였고, 한번 공부해서 현대기아자동차에 적용하는 기획을 해보라고 하셔서, 네트워크만 하던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었고, 인터넷에서 자료도 찾고, 세미나도 다녀오면서 무에서 우를 창조하는 기획업무를 시작한다.
첫 보고서 “SLM 도입방안”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첫 기획보고서는 정보기술총괄본부장님께 보고하고 승인받아 기존에 도입되어 있던 APM툴로 현재 현대차그룹 IT계열사에서 운영 중인 어플리케이선의 응답시간도 조사해 보고하는 추가적인 기획업무를 시작한다.
사실 대리 4년 차에 회사를 옮겨서 과장승진이 목말랐는지 모른다. 성과를 내서 승진도 해야 하는데, 업무는 없고, 지시사항도 없고, 하니 많이 답답한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주변에서 승진에서 탈락한 거 같다고 귀뜸을 해 주셔서 나는 12월 마지막주에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가버렸다. 그시절에 승진에 탈락하는 직원은 연말에 장기 휴가를 내고 섭섭함을 표시는 관례가 있었는데, 나도 그렇게 해본것이다.
제주도 여행을 하던 중, 선배 한 분이 친절하게도 승진소식을 전화로 주셨다. 실망여행이 승진축하여행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팀장님이 바뀌시고 연구소에서 팀장님으로 오시고 그때부터 나의 목표는 매월 1건 이상 CIO 결재를 받는 기획보고를 하는 것이었다. 지시사항이든 자발적인 기획 보고든, 이러한 모습이 과장으로 승진시켜준 회사에 보답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RFID 도입방안, 재해복구시스템 구축방안, 제2데이터센터 도입방안, 자동차 공업협회 협력사 네트워크 개선방안, IT헬프데스크운영방안, 글로벌종합상황실 도입방안, 글로벌 전산망 개선방안, 결재단계 단축방안 등 기획보고 및 집행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서 기획전문가로서의 역량을 하나둘 키워가게 된다. 사실 이러한 나의 업무는 기획부서 담당자로서, 스스로 고민하고 연구하고 결과물로 내어오는 것이 절반은 넘었다. 스스로 찾아서 하는 업무방식은 다시 나를 성장하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과장이 되니, 현대자동차 인사에서 간부사원에 대한 회사에서의 포부와 목표, 가족들 중에서의 주요 인물등을 조사하는 설문지를 배포하였고, 나는 55세까지(그때의 정년)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최선과 최고가 되기 위해서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살아가겠다고 기술한 것으로 기억이 된다. 30대 초반에 정년을 생각한다고 기획파트의 선배들이 키득키득하며 웃던 기억과 함께, 이제는 정년이 60이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54세의 나이에 회사를 떠나기로, 만 28년의 현대차그룹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기로 결심하고 수일 후에 퇴직을 하겠지만, 그 시절에는 정년 근무도 어색한 시절이었다. ( 현재는 퇴직한지 벌써 5개월이 되었다. )
인생은 4 모작이라고 책에서 읽고 55세 이후에 3 모작의 인생을 그려보던 시절이었다. 1 모작( ~ 27세 )은 사회 진출하기 전까지의 배움의 시간, 2 모작( ~ 55세 )은 사회 진출하여 경제생활을 목적으로 나의 역량을 키우며 나의 노동력으로 돈을 벌어 생활하는 시간, 3 모작(~ 80세)은 경제생활이 목적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일을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하는 시간, 4 모작( 80세 ~ )은 건강하지 않은 몸을 잘 유지하면서 삶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하고 살아왔지만, 이제 세상과 건강한 시간이 길어지고 바뀌어서 65~70세까지는 2 모작의 인생을 살아야 할 듯하다. 두 번째의 2 모작 인생을 위해서 새롭게 많은 부분을 되돌아보면서 시도하고 있는 지금이다. 나를 시장에 내놓았을 때, 아직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를 검증하고 있다. 이렇듯 세상과 삶은 예측한 대로 되지 않으며, 미리 고민한다고 준비되지 않는다. 오로시 지금 현재를 열심히 살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진짜 다시 일하고 싶다. 미친듯이...
[사진 9, 현대기아자동차 정보기술총괄본부 울산공장 현판식 ]
사진 속에 계신 분들이 다 나의 상사 선배님들이시다. 그 시절 팽정국본부장님, 박성근 사업부장님, 현대오토에버 김선태사업부장님, 강억식사업부장님, 최상철사업부장님과 최문용실장님, 강한수팀장님, 황준규실장님, 이래연실장님, 김영국실장님, 그리고 많은 부서장님들, 현대기아자동차 전산실의 역사이다. 정말 개인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업무적으로는 신명나게 많이 배우고 일하던 시절이다.